올해 2분기 자산시장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최근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상승세가 다소 주춤한 반면, 주식시장은 연일 고점을 경신하며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시장과 경제를 짓눌렀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추경 편성이나 주식시장 부양 정책이 상승 재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이나 정책이 표면적인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유동성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최근 발표된 1분기 자금순환동향 통계다. 가계 자금 잉여는 92.9조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기업의 자금 부족 및 정부의 지출을 차감한 민간 전체 자금 잉여 규모도 최고치에 근접해 있다.
우리가 자산 가격 상승의 주요 배경으로 유동성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 자금 잉여가 주요 자산 가격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와 기업의 자금 과부족, 혹은 여기에 정부를 포함한 민간 부문의 자금 과부족과 주가지수 변동률을 비교하면, 자금 잉여는 약 1분기 선행지표로 작용하며 뚜렷한 상관성을 보인다.
부동산의 경우 대표적인 지수인 아파트매매가격지수와 비교해도 자금 잉여가 1~2분기 선행하며 강한 연관성을 나타낸다. 주식시장과의 연동성은 가계와 기업의 자금 흐름이 더 밀접한 반면, 부동산 시장은 여기에 정부의 자금 흐름까지 포함될 때 설명력이 높아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높은 연관성을 고려하면, 1분기에 확인된 막대한 자금 잉여는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제 이슈나 최근 상법 개정 움직임 등 시장의 불씨가 주어질 경우 강하게 발화하는 연료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자금 잉여가 금리와도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자금이 많아질수록 시장금리가 낮아지고, 이는 할인율 하락을 통해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을 합리화하거나 지지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 자금잉여는 어디서 왔을까?
가계 부문의 경우 상여금 등 소득은 증가했지만, 국내외 불확실성으로 소비와 경제활동을 줄이면서 자금 잉여가 확대됐다. 또한 기업 부문에서도 자금 부족 규모가 축소되었는데, 이는 기업 실적 호전보다는 투자 위축에 따른 결과다.
역설적으로 보이겠지만, 2분기 이후 자산 가격 급등은 경기 부진으로 인해 형성된 자금 잉여의 확대가 핵심적인 기저 요인이다. 이는 전형적인 ‘금융장세’로, 실물경기 침체 속에서도 시중 유동성 증가에 따라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 흐름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2분기 이후 자금 잉여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의 급증, 하반기 대규모 추경에 따른 정부부채 확대, 강력한 소비 부양책 등이 모두 가계 자금 잉여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금 잉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주가 등 자산 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려면, 유동성이 투자 확대와 경기 개선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실제 기업 이익과 경제 성과가 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실적장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내 기대감과 달리, 우리 경제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반기에 체감경기나 성장률이 반등할 가능성은 있지만, 올해 예상 성장률이 1%대 후반~2%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여 잠재성장률(약 2.53%)을 하회하는 위축된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내년으로 갈수록 대외 여건 불확실성도 여전해, 하반기 초반의 기대가 후반에는 실망감으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금 잉여는 자산 가격뿐 아니라 변동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주식시장 변동성 지표인 VIX지수(VKOSPI)와 자금 잉여 간에도 높은 상관관계가 관측된다.
결국 ‘유동성과 기대감’이 결합된 금융장세는 강력한 가격 상승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큰 불확실성과 불안 요인도 안고 있는 시기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용택 칼럼] 뜨거운 기대, 차가운 현실… 7월 FOMC의 딜레마
- [정용택 칼럼] 원화 강세 끝자락, 금리가 방향 가른다
- [정용택 칼럼] 일본 장기금리 급등, 회복 신호인가 불균형 경고인가
- [정용택 칼럼] IMF도 1%…경기 둔화 아닌 ‘침체’ 경고등 켜진 韓경제
- [정용택 칼럼] 트럼프발 관세 폭풍…2분기 충격 가능성 주목
- [정용택 칼럼]경제 위기 방정식…‘통화정책x신용불안’
- [정용택 칼럼] 현실화되는 관세 부과…이유 있는 원화 약세
- [정용택 칼럼] 1분기 미국 경제 역성장 가능성, 어떻게 봐야 하나
- [정용택 칼럼] 낮아진 환율만큼 불확실성도 낮아졌나
- [정용택 칼럼] 트럼프발 관세전쟁, 우선 주목해야 할 부담은 ‘환율’
- [정용택 칼럼] ‘탄핵’ 의미부여보다 韓·美 정책 변화에 주시하는 국면
- [정용택 칼럼] ‘트럼프 취임’ 트럼프 리스크의 변곡점
- [정용택 칼럼] 금리 인하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정용택 칼럼] 트럼프 정책과 금리 괴리, 장단기 금리차 확대 신호
- [정용택 칼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소비 심리 개선
- [정용택 칼럼] 주가는 뜨겁고 환율은 차갑다
- [정용택 칼럼] 금리 인하에도 ‘매파적’ 스탠스, 연준이 던진 불확실성
- [정용택 칼럼] 증시 호황의 그늘…소비 위축·수출 둔화 현실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