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불확실성이 경제와 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는 시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변덕으로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급락한 주가나 1500원 선을 눈앞에 뒀던 원·달러 환율 등 시장 지표들은 대외 악재에 대한 불안의 크기를 보여줬다.
대외 여건이 불안해지고 환율이 크게 움직임에 따라 우리 경제에 대한 신용위험을 보여주는 CDS(크레딧디폴트스왑·CreditDefaultSwap)프리미엄에도 투자자의 시선이 쏠리고 있고, 최근 CDS프리미엄도 상승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CDS가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가 부도날 경우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파생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CDS프리미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다는 것은 지금의 혼란스러움이 우리 경제나 금융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갑작스러운 위기로 연결될까?
관세 충격이나 대외 여건 악화가 당연히 경제에 부정적이며 이후 둔화 또는 침체로 유도할 수 있지만, 경기 둔화나 침체가 꼭 경제위기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 악화가 위기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위기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촉매는 통화정책의 긴장과 국내 신용위험이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 흐름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우리나라 부도위험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며 초유의 거리두기와 ‘셧다운’이 발생했던 시기가 아니라 2022년 11월이었다.
이 시기는 대규모 양적완화로 인한 후폭풍으로 미국 물가가 폭등함에 따라 미 연준이 75bp(이른바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글로벌 통화정책의 긴장감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었고, 국내에선 ‘레고랜드 사태’가 발상해 단기 자금시장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던 시기다.
최근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불안이 팽배한 상황인데, 과거 1차 관세전쟁 때를 살펴보면 실제 중국에 관세 부과가 시작되는 시기보다 미 연준의 금리가 2%에 도달하며 통화정책 긴장감이 높아지던 시기에 CDS 프리미엄은 훨씬 높게 형성됐다.
이런 사례를 보면, 트럼프발 관세 압박이 본격화됨으로써 경기 둔화는 본격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우리나라나 미국 모두 금리 인상 국면이 아니라 금리 인하 국면에 있어 통화정책의 긴장은 높지 않은 만큼 돌발적인 위기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쉽게 마음을 놓기 어려운 것은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는 점과, 국내 신용시장에서도 기업 신용시장의 불안감이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점 때문이다.
통화정책 불확실성은 미 연준도 높은 상황이지만, 보다 우려되는 것은 우리나라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내수 부진이 장기화돼 있고 내부적인 돌발 요인도 있었던 만큼 금리 인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환율 우려와 맞물려 정책 결정이 표류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4월 금융통화위원회만 하더라도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고, 회의 직전에 미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 발표가 있는 만큼 금리 인하 결정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환율 보고서 발표가 무역 압박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뤄지고, 우리나라가 다시 환율 관찰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하 가능성은 낮다고도 볼 수 있다.
5월 금통위는 29일 예정되어 있는데, 6월 3일 조기 대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6월 통화정책 회의는 금리 결정이 없는 회의라는 점 등도 금리 결정이 표류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자금시장 지표들은 아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홈플러스 사태나 애경산업 매각 움직임에서 보듯 기업 자금시장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 역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분기마다 발표하는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를 통해서도 이 우려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분기 조사를 보면, 기업 부문은 차주별 신용위험지수도 상승한 상황에서 대출태도지수와 대출수요지수의 갭도 더 확대되는 모습으로 나타나 신용 여건이 계속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대기업 부문의 신용 여건 악화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매우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 자금난은 익숙한 현상이다. 이를 반영해서인지 중소기업 부문에 대한 여신 담당자들의 신용위험지수는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고, 정책 당국이나 시장의 관심도 이 부문에 집중된다. 하지만 대기업 부문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신용위험지수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등해 가계 부문에 대한 우려와 엇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대기업 부문 신용위험지수 시계열만 놓고 비교해 보면, 코로나가 닥친 2020년 상반기와 트럼프 1기 출범하던 2017년 1분기,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대출태도지수와 대출수요지수의 갭도 가파르게 반등하며 신용위험지수 상승에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달 하순에는 올해 2분기 대출행태 서베이가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1분기 불안한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다 꼼꼼한 모니터링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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