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진행된 임시주주총회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진행된 임시주주총회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4개월 이상 고려아연 및 계열사 임직원, 금융투자업계의 이목을 끌어온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를 계기로 해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고려아연은 손자회사를 활용해 주총 전일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묘수를 뒀고, 이에 임시주총을 고려아연 측이 의도하는대로 이끌었다. 

고려아연은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수 상한 설정 등을 비롯해 총 8건에 달하는 정관 일부변경 안건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날 임시주총은 중복 위임장을 근거로 6시간 이상 지연되고, 속행을 반복하는 끝에 이뤄졌다.

이 가운데 집중투표제 도입을 비롯해 ▲이사수 상한 설정 ▲발행주식 액면분할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등 6개 의안이 가결됐다.

다만, MBK·영풍 측이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제안한 집행임원제 도입 안건은 특별결의 요건인 ‘출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2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며 부결됐다.

소수주주 보호 규정을 명문화하는 안건 역시 MBK·영풍 측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가결에 실패했다.

◆집중투표제·이사수 상한제 통과…소수주주보호 및 지배구조 선진화 기틀 다졌다

가장 먼저 통과된 안건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 사항이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 취지에 따라 3%룰이 적용되며, 출석 주식 수 대비 70%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각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로, 소수주주의 권익을 증진하고 이사회 다양성을 확대하는데 일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사 선임 과정에서 지배주주가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고 소수주주가 이사진 구성 과정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에 소액주주연대와 시민단체, 일부 정치권 등에서도 집중투표제 채택을 적극 권장해 왔다.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상한 설정하는 안건도 통과됐다. 이사회 안정성과 효율성이 한층 향상될 전망이다. 글래스루이스와 ISS,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전체가 적정 이사 수 제한을 권고했던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이사회로 거듭나겠다는 의도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안도 출석 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통과했다.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이사회를 총괄함으로써 지배구조 독립성을 한층 강화하는 취지다.

분기배당, 배당기준일 변경 등을 골자로 한 정관 개정도 이뤄졌다. 중간배당뿐 아니라 3월, 6월, 9월 말일을 기준으로 분기배당을 지급함으로써 주주들에게 정기적으로 이익을 환원한다. 투자자들이 배당액을 사전에 확인한 뒤 투자를 결정하도록 배당기준일도 개편했다.

발행주식 액면분할도 중요한 변화다. 주당 액면가를 현재 5000원 대비 10분의 1인 500원으로 조정하는 내용이 골자인데 주당 매입가를 낮추는 대신 유통주식 물량을 증대하는 방식으로 소액주주의 투자 기회가 확대하고, 기존 주주들에겐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성 갖춘 새 이사진 선임...경영 투명성과 다양성 강화

이날 임시주총에서는 이사 선임안에 대한 표결도 이뤄졌다. 앞서 21일 법원이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안건의 상정을 금지해달라는 영풍 측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보통결의 요건에 의거해 이사 수 상한 19인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의 안건으로 진행됐다.

투표 결과 고려아연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7명 전원이 신규 선임됐다.

이상훈 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한국대표를 비롯해 ▲이형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김경원 세종대 경영경제대학 석좌교수 ▲제임스 앤드류 머피(James Andrew Murphy) 올리버 와이만 선임고문 ▲정다미 명지대 경영대학장 ▲이재용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명예교수 ▲최재식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김재철AI대학원 교수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합류했다.

MBK·영풍 측이 추천한 14명의 이사 후보는 모두 과반 득표를 얻지 못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와 국민연금 등 많은 주주들이 국가핵심기술, 국가첨단전략기술 등을 보유한 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이 대한민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해 판단을 내렸다”며 “임시주총을 계기로 고려아연이 많은 주주분들의 지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모든 임직원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진행된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현장에는 노조 단체가 참여해 피켓 시위에 나섰다. 사진=고려아연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진행된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현장에는 노조 단체가 참여해 피켓 시위에 나섰다. 사진=고려아연

◆영풍의 고려아연 보유 주식 의결권 제한, 고려아연 ‘신의 한수’ 통했다

이날 임시주주총회에선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됐다.

주총 전날인 22일 고려아연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은 영풍정밀과 최 씨 일가 등이 보유하던 영풍 주식 일부를 취득했다.

특히, 최 씨 일가로부터 21일 종가 대비 30% 할인된 가격에 영풍 주식을 인수함으로써 SMC는 가격적인 측면에서 이익을 얻은 반면, 최 씨 일가는 매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상당수를 포기했다.

SMC가 새로 취득한 영풍의 주식 수는 영풍 발행주식 총수의 약 10.3%에 해당하는 규모로, 상법 규정(제369조 제3항 및 제342조의2 제3항)에 따라 영풍은 고려아연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또한, 이날 임시주총장에는 고려아연 노동조합원들이 대거 상경해 적대적 M&A를 규탄하고 노조원들이 힘을 합쳐 국가기간산업을 지켜내겠다며, 질서있는 피켓 시위와 함께 주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다만, MBK 측이 법적 대응을 예고해 경영권 분쟁은 3월 정기 주총까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날 주총 후 “MBK파트너스가 명성에 걸맞은 사모펀드로서 고려아연을 위해 상호협력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된다면 국민기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고려아연에 있어 유익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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