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본사 전경. 사진=한미약품.
한미약품 본사 전경. 사진=한미약품.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의 우군인 라데팡스파트너스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이후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의 신약개발 인재가 대거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년 가까이 고 임 회장과 신약개발을 추진했던 인재들인 만큼 50년을 이어온 한미약품의 명맥이 흔들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제약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법무실 출신의 배경태 부회장이 한미사이언스 경영에 참여한 2022년 8월 이후 약 23명의 주요 임원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14명은 박사급 인재들로 조사됐다.

배 부회장은 송영숙 회장에게 경영자문을 해주던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추천한 인물로 지난 2022년 8월 한미약품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전략기획실은 배 부회장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제약산업 전문가 없이 법무와 재무담당자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해 연말 한미약품에선 권세창 신약개발부문 대표이사를 비롯해 백승재 신약임상팀 상무, 임호택 제제지원그룹 이사, 정인기 해외사업팀  이사 등 제약분야 베테랑 임원 9명이 일시에 퇴사했다. 이에 제약업계에선 “1개 프로젝트에 약 10년 이상 인력과 자금이 투자되는 신약개발 특성을 고려할 때 일관성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미사이언스에선 정정희 경영관리본부 전무와 송기호 CFO를 비롯해 특허전략 김윤호 이사 등 6명이 퇴사하면서 고 임성기 회장의 신임을 받아온 15명이 한미약품그룹을 떠났다.

그 다음해에도 인재 유출은 계속됐다. 한미약품에서는 경영관리부문 우종수 대표를 비롯해, 김용일 제제연구팀 상무, 권규찬 글로벌 사업본부 전무 등 6명이, 한미사이언스와 JVM에서는 박준석 대표와 이용희 대표가 각각 자리를 잃었다.

배 부회장 임기동안 떠나보낸 인재는 20명이다. 배 부회장 자리를 한미약품그룹 장녀인 임주현 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이 맡았지만 그 이후에도 세명의 임원이 한미약품그룹을 떠났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주요 인재들이 대거 이탈할 때 ‘고 임성기 회장이 50년간 이끌어온 한미약품그룹의 명맥이 끊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임종윤 한미약품 미래전략 사장은 당시 각종 인사 및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데팡스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에 전략기획실을 만든 이후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 배경태 부회장이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밀실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등 임종윤 사장을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OCI와 한미사이언스의 주식교환 역시 이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임 사장 측의 주장이다. 설상가상으로 임 사장의 임기는 내달 만료된다.

임종윤 사장은 핵심 인재의 유출을 아쉬워하며 권규찬 당시 한미약품 글로벌사업본부장(전무)를 디엑스앤브이엑스(Dx&Vx)대표로 영입하는 등 우수인력을 코리그룹(COREE)과 디엑스앤브이엑스에 배치했다.

코리그룹은 임 사장이 지난 2009년 홍콩에 설립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다. 디엑스앤브이엑스와 함께 한미약품그룹의 계열사로 임 사장이 최대주주인 진단 및 백신 개발 회사다.

한미사이언스가 모녀의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해 경영권 프리미엄조차 챙기지 못한채 OCI에 주식을 넘기기로 한 상황에 인재유출 논란이 겹치자 한미약품의 명맥을 이어갈 인물로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떠오르는 양상이다.

임 사장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약 20년간 정식 경영수업을 받아온 인물이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북경한미약품 경영을 맡아 현재 한미약품 연매출액 28%인 연 3900억원, 영업이익은 44% 점유하는 등 오늘의 북경한미의 성과 기반을 만들었다. 특히 임종윤 사장 경영 시 20여개 제품 임상 육성과 허가 등록 제품이 현 북경 한미 매출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의약품 1품목 허가등록만 5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시장성 있는 품목 20여개 허가는 보건의료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임 사장이 북경한미약품 대표를 맡고 있을 당시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은 분기에 한 번씩 북경에 방문해 임 대표와 밤샘회의를 통해 북경한미와 한미약품의 미래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임 대표가 코리그룹을 설립한 것도 당시 선대 회장이 “한미약품은 현재와 같은 신약개발 기조를 유지하고, 코리그룹은 진단과 신약 등 차세대 바이오신약 연구에 전념해 코리그룹을 ‘제2의 한미’를 지원하는 차세대 먹거리로 키우라”는 뜻을 받들어 설립됐다는 전언이다.

이후에도 임 대표는 2010년부터 선대 회장과 한미사이언스 공동대표 6년을 포함해, 단독대표 4년, 송회장과 각자대표 2년 등 총 12년간 한미사이언스를 이끌었지만, 선대회장 작고 이후 송 회장 뒤에서 자문을 해오던 라데팡스가 한미사이언스를 장악한 이후 임 대표는 경영에서 배제됐다. 이후 한미약품 그룹은 선대회장이 구축해 놓은 신약개발 전문가 24명을 잃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 인재풀이 빈약한 한국에서 30년간 구축해온 인재풀이 해체됐다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제약바이오산업은 연구부터 개발, 허가, 판매, 약가까지 모두 규제를 받는 산업으로 사업에 대한 이해와 오랜 경험과 투자 없이는 성공하기 쉽지 않은 산업인데다 글로벌 시장에서 화학과의 접점이 전혀 없어 OCI가 선대회장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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