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회째 매년 개최…기업 클래식 공연 최장 기록
세계적 연주와 아리랑공모전, 마스터클래스까지
선대회장과 임직원이 함께 만드는 음악 나눔의 장

사진=이건그룹 그래픽=김영재
사진=이건그룹 그래픽=김영재

기업이 문화·예술에 자원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국가 경쟁력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의 총칭인 메세나Mecenat. 그 어원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후원자였던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이 마이케나스에 빗대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인 상생과 후원을 직접 취재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990년 10월, 인천 이건산업 합판 공장에서 아카데미아목관5중주단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아직 메세나의 개념이 생소한 시기. 그러나 고 박영주 이건그룹 선대회장은 과거 한국전쟁 중 미군 부대에서 접한 작은 음악회를 떠올렸다. 어린 그를 위로한 음악의 그 따스함을 가슴 깊이 아로새겼고, 성공한 후에는 이를 사회와 나누고자 했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기업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의 시작이었다.

건축 자재 전문 기업인 이건그룹은 1972년 이래 ‘이로운 건자재’를 공급하며 주거 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다. 더불어 그룹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메세나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이건음악회는 국내 기업이 주최한 클래식 행사에서 그중 가장 역사가 깊은 음악회로 유명하다. 단 한 번의 중단 없이 올해 35회째를 맞으며 메세나 ‘지속성’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특히 음악회는 누구나 쉽게 클래식 음악을 접하도록 전석을 무료 개방하고 있다. 외환 위기와 팬데믹 같은 난관 속에서도 행사는 열렸고, 그 결과 누적 관객수가 30만명을 넘어섰다.

베를린필하모닉이건앙상블이 지난 2019년 7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30회 이건음악회 기자간담회에서 미니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베를린필하모닉이건앙상블이 지난 2019년 7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30회 이건음악회 기자간담회에서 미니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초청 연주자 또한 최정상급으로, 이에 국내 클래식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 중이다. 무료 공연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기획력을 선보이며 클래식 대중화에 이바지했다.

아카펠라 그룹 폴리쉬챔버싱어즈(8회), 고음악 단체 무지카안티쿠아퀼른(13회), 만돌린 연주자 아비 아비탈(27회), 모스크바스레텐스키수도원합창단(28회), 클래식 기타리스트 밀로쉬 카라다글리치(29회) 등 다양한 예술가를 초청, 해외 음악계와의 교류를 촉진했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박 회장의 나눔 철학에 감명받아 베를린필하모닉이건앙상블(30회)을 결성하기도 했다.

2012년 23회 공연부터 열리고 있는 아리랑편곡공모전은 민요 아리랑을 여러 창의적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이건음악회만의 독창적 프로그램이다. 해외 초청 연주자가 최우수작을 피날레곡으로 연주해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을 완성한다.

이건음악회 관계자는 “미래가 촉망되는 국내 음악가의 작품을 세계적 연주자의 무대에서 소개하고, 그들에게 등단의 기회를 제공하는 뜻깊은 자리”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이 국내 신진에 의해 새롭게 편곡됐다. 

볼프람 브란들 베를린슈타츠카펠레현악4중주단 제1바이올리니스트가 지난해 10월 광주 북구 광주광역시 예술의전당에서 제34회 이건음악회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건그룹
볼프람 브란들 베를린슈타츠카펠레현악4중주단 제1바이올리니스트가 지난해 10월 광주 북구 광주광역시 예술의전당에서 제34회 이건음악회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건그룹

이건음악회는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어린 음악 영재에게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2007년 하모닉브라스(18회)가 국립서울맹학교 및 부산소년의집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베를린필하모닉이건앙상블이 인천혜광학교오케스트라를 만났고, 2023년 베를린슈타츠카펠레현악4중주단(34회)이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광주캠퍼스 학생들과 열정의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영재가 초청 연주자에게 실질 교육을 받는 이 프로그램은 전에 없던 국제적 교육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한 학생은 “참여하게 돼 영광이었다. 선생님들께서 당시 시대적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부터 활 사용의 디테일까지 지도해 주셨다”며, “합주를 할 때는 너무 감명 깊은 나머지 그 자리를 떠나기 싫었다”고 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가운데)가 지난 10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5회 이건음악회 기자간담회에서 바로크 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건그룹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가운데)가 지난 10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5회 이건음악회 기자간담회에서 바로크 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건그룹

이번에 이건음악회는 ‘바로크 바이올린의 여왕’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와 ‘세계 최고의 고음악 단체’ 타펠무지크바로크오케스트라를 초청해 관객과 음악적 교감을 나눴다.

197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창단된 타펠무지크바로크오케스트라는 그라모폰에게서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극찬받은 북미 대표 시대 연주 앙상블이다. 협연을 맡은 레이첼 포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영국의 자부심’으로 불린다. 현재 타펠무지크바로크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박 회장은 이건음악회를 단순한 후원이 아닌, 사회와의 진정한 소통 수단으로 기획했다. 바로 이건음악회의 특징인 ‘진정성’이다. 이를 위해 그는 외부 기획사 대신 이건그룹 내부 인력만으로 모든 기획을 추진했고, 사회에 진정한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을 실현해 나갔다.

실제로 음악회 준비 전 단계는 임직원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루어진다. 손수 준비하는 정성이 곧 최고의 진심이라는 생각에 음악가 섭외부터 공연 장소 선정, 관객 모집까지 직접 관리하는 식이다. 공연 당일에는 주황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티켓 발권, 관객 안내, 팸플릿 배포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건음악회는 이같은 진정성에 더해 일체 광고나 기업을 드러내는 일 없이 순수하게 진행되는 ‘순수성’까지 ▲지속성 ▲진정성 ▲순수성이라는 원칙을 초창기부터 이어 오고 있다.

생전 박영주 회장은 “예술 활동은 기업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훌륭한 인재를 키우는 데도 보탬이 된다”며 “기업의 사회 공헌은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것인데, 오늘날 소외된 계층과 지역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이건음악회는 음악을 매개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한국형 메세나의 모범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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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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