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법에 온라인 포함·정산주기·판매대금 의무
규율대상·제재강도 두고 플랫폼-입점사 의견 대립
공정위 “적용 대상 등 구체적 업계 의견, 적극 반영”
정부가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티메프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친다. 규제 대상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확대되고 정산주기와 판매대금 별도 관리 의무까지 부과되는 형태다. 법 개정을 앞두고 열린 공청회에서 온라인 플랫폼 업계와 입점업체간 엇갈린 의견이 개진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청회는 정부가 지난 9일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대규모유통업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업계와 기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열렸다.
현재 공정위는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중점을 두고 제정한 대규모유통업법을 대거 뜯어고쳐 티메프를 비롯한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을 감독 대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의 정산주기를 10~20일 이내로 단축, 판매대금 별도 관리 의무도 부여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정부는 대대적인 법 개정이 이뤄지는 만큼 다양한 업계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개정안의 구체적인 적용안을 복수로 뒀다.
온라인 업체에 대한 규제가 담긴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에 대한 입법 추진도 정치권과 업계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가운데 티메프 사태로 온라인 유통업계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힘을 받으며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공청회에는 정부기관, 학계와 몇몇 기업이 참여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이번 공청회에서는 규제폭과 강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온라인 유통업계, 소상공인, 시민단체,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 학계, 경제단체 등에서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를 대표해 참석한 선중규 공정위 기업협력정책관(국장)은 “현재 법안 개정안에 대해 1안은 연 중개거래수익 100억원 또는 연 중개거래금액 1000억원 이상인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 2안은 연 중개거래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연 중개거래금액 1조원 이상인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으로 복수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선중규 국장에 따르면 제1안은 30~40여개 업체, 제2안은 20여개 업체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온라인 플랫폼 업체에 대해서도 정산주기를 구매확정일로부터 10~20일 이내와 30일 이내 등 2가지 안으로 나누어 검토하고 있다. 다만 다양한 유형의 상품과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거래실태를 개정안에 예외조항으로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티메프 사태에서 판매대금 일부가 유용됐다는 점에서 판매 대금을 별도 관리하는 방안도 개정 방향에 담겼다.
이러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방향에 대해 온라인 플랫폼 업계와 입점업체의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온라인 플랫폼 업계는 생태계의 혁신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규율 강도와 적용 대상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소상공인 위주의 입점업체는 높은 강도의 개정 방향을 요구했다.
온라인 플랫폼 측인 조성현 온라인쇼핑협회 사무총장은 “티메프 사태의 주요 원인은 큐텐의 무리한 경영으로 인한 개별 기업의 일탈과 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의 부실하고 안일한 대응”이라며 “사태와 무관한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구조에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아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산기한이 줄어들게 법 개정이 이뤄지면 정산기한이 긴 중소형 플랫폼에 입점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자금이 풍부한 대형 사업자나 해외 거대 플랫폼만 남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독·과점 형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핸드메이드 제품 쇼핑몰 ‘아이디어스’의 김동환 백패커 대표도 “규제 필요성을 공감하나 대규모유통업법의 모든 규제를 온라인 사업자에게 모두 적용하는 것은 고민해야 한다”며 “매출 100억 또는 1000억 이상이라도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온라인 거래는 중개거래 뿐 아니라 위수탁거래, 직매입 거래 등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제도가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플랫폼 측과는 달리 입점업체 측은 더욱 강화된 규제를 요청했다.
정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박사는 “느슨한 규율이 이번 티메프 사태의 재발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현재 형성된 좋은 거래관행을 퇴보시킬 수 있다”며 불공정행위에 취약한 입점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다 강화된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입점업체 측인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본부장은 “벤처기업의 혁신을 저해한다고 하지만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무 건전성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원리를 정해야 한다”라며 “(이번 개정을 통해) 소상공인과 많은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균형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영화 삼대인천게장 대표는 “머지포인트 사태 때 규제를 강화하고 정보공개를 했더라면 하는 현장의 아쉬움이 크다”며 “중소플랫폼사들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입점업체 보호를 위해 규제가 명확한 1안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온라인 플랫폼 업계와 입점업체간 이견이 뚜렷한 가운데 공정위는 이날 토론을 비롯한 업계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정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선중규 공정위 기업협력정책관 국장은 “대규모유통업법이 시행된지 10년이 넘으면서 적용 대상 사업자 기준, 정산기일 규정, 별도관리 의무 등의 도입이 필요해졌다”며 “티메프 사태를 한 업체만의 일탈 문제로 본다면 진제도 개선이 나오기 쉽지 않다. 최소한의 규율이 필요하다”며 법 개정 의지를 밝혔다.
이어 “각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신속히 수정방안을 마련하고 다음 달부터는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신용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