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전환 시대 맞은 전 세계…손발 묶인 이재용
올해로 9년째 맞은 사법리스크, 경영활동 최대 악재
반도체·스마트폰 세계 1위 내줘, 기업경영 위기
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1심 선고
‘민간외교사’ 이재용, 인맥 기반 대규모 투자 나서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서초동에 묶인 기간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 타이틀과 스마트폰·반도체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D램 점유율도 5% 미만으로 추락했고, HBM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의 ‘삼성그룹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1심 선고가 오늘(5일) 나온다. 이재용 회장이 경영 족쇄를 끊어내고, 삼성전자의 과거 영광을 되찾을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은 2020년 9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외부감사법상 거짓 공시 및 분식회계 혐의도 받고 있다.

◆ 106회 재판 중 95번이나 직접 출석

이 회장은 지난 3년 2개월여간 106회의 재판이 열리는 동안 95차례 법정에 출석했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 법원에 출석하기도 했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2017년 2월 구속기소 된 후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된 뒤 가석방될 때까지 총 565일간 구속돼 있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삼성전자의 대명사 ‘초격차’는 무색해 졌다. 15년 동안 지켜오던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 타이틀을 현대자동차그룹에 내줬으며, 스마트폰 판매량에서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애플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반도체는 2년 만에 인텔에 재역전당했고, 글로벌 AI반도체 삼각편대에는 ‘삼성전자’ 이름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 회장은 IT와 투자 업계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억만장자 사교 클럽’인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2016년을 마지막으로 발길을 끊었다. 지난해 주요 참석자에 이름을 올린 인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이다. 해당 콘퍼런스는 이 회장이 “연간 출장 중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고 밝힐 정도로 각별하게 여기는 행사였다.

◆ 역대급 흥행몰이 중인 갤S24

1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 위치한 SAP센터에서 개최된 ‘갤럭시 언팩 2024(Galacy Unpacked 2024)’ 행사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이 ‘갤럭시 S24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1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 위치한 SAP센터에서 개최된 ‘갤럭시 언팩 2024(Galacy Unpacked 2024)’ 행사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이 ‘갤럭시 S24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현재 삼성전자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먼저 최근 ‘없어서 못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기몰이 중인 ‘갤럭시S24’ 흥행을 이어가야 한다. 지난달 18일 ‘갤럭시 언팩’ 행사 직후 시작된 글로벌 사전 판매에서 ‘갤럭시 S24’ 시리즈는 전작 대비 두 자릿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내 사전 판매의 경우 1주일만에 약 121만대를 팔아 치우며 2010년 ‘갤럭시 S’ 시리즈 출시 이해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2017년 이후 6년 만에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시장 중 하나다. 자국 단말이 없는데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인구 1위에 오르며 성장 가능성도 풍부하다.

삼성전자는 인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갤럭시 S24 시리즈가 제공하는 AI 실시간 통역 기능에 인도 힌디어가 포함됐고, 인도 노이다 소재 삼성전자 생산 공장에서 갤럭시 S24 시리즈 생산을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 자녀들의 결혼식에 국내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 2018년 12월과 2019년 3월 인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인도 최대 통신사인 릴라이언스 지오는 현재 전국 LTE 네트워크에 100% 삼성 기지국을 쓰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선두주자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과제도 있다. AI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HBM의 글로벌 1위는 SK하이닉스다. 점유율은 50% 이상. 삼성전자는 40%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신 제품인 HBM3(4세대)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9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보유 중이다.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한국을 찾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하고 각사 CEO와 면담을 진행했다. 올트먼은 AI 반도체 품귀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독주 체계를 견제하기 위해 양사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 ‘글로벌 인맥왕’ 이재용

이처럼 AI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의 화려한 글로벌 인맥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 회장은 글로벌 ‘인맥왕’으로 불릴 만큼 반도체, 통신, 바이오 분야에서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상무 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이건희 선대 회장의 해외출장에 동행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져왔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월 16일(현지시간)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식에서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월 16일(현지시간)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식에서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UAE 방문 당시 친밀한 모습을 보여준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부총리 겸 대통실경 장관을 비롯해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 크리스티아로 아몬 퀄컴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찰리 에르겐 디시네트워크 회장,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존 커뮤니케이션스 회장, 팻 겔싱어 인텔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히가시하라 토시아키 히타치 회장 등 이 회장의 글로벌 인맥은 셀 수 없이 많다.

글로벌 기업들은 현재 AI 시대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AI를 미래 성장의 주축으로 낙점하고 관련 기술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나 장기적 전략 행보는 여전히 어렵다.

이 회장은 현재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미등기 임원이다. 이 회장은 부회장이던 2016년 10월 임시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는데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으면서 2019년 10월 재선임 없이 임기가 만료돼 지금까지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에서 “아버지의 병환 뒤 3번의 영장 심사와 1년 6개월의 수감생활 등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었다”며 “저의 지분을 늘리려고 다른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한 적 없다”고 했다. 이어 “지금 세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그 한 가운데 있다”며 “저의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덧붙였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법원이 무죄 또는 유죄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이 회장은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나설 수 있다. 반대로 실형이 선고된다면 삼성전자의 성장 동력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AI 대전환 시대에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법리스크가 하루 빨리 해소되어야 한다”며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과 연결되는 만큼 이 회장의 굴레를 벗겨주고 ‘경제살리기’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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