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인공지능(AI)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경제개혁연대가 특정 기업을 겨냥한 맞춤형 특혜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지속적인 요구가 이번 논의의 배경으로 거론되면서, 제도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경제개혁연대는 2일 논평을 통해 “AI 산업 투자라는 명분을 앞세워 금산분리 원칙을 추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SK그룹을 비롯한 일부 재벌의 민원성 요구에 정부가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오픈AI CEO와의 면담에서 “AI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은 독점 폐해 차단과 안전장치 마련을 전제로 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어떤 규제를 풀겠다는 것인지 구체적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 업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발언이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규제 완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원칙적으로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계열사를 직접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다만 2020년 법 개정을 통해 예외적으로 CVC 설립이 허용됐다.

이때도 ‘금산분리 원칙 훼손’이라는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벤처 투자 활성화라는 명분이 우세했다. 개정법에 따라 지주회사는 CVC를 100% 지분으로만 소유할 수 있으며, 부채비율은 200% 이내, 외부 자금 조달은 40% 이내로 제한된다. 해외 투자 역시 총자산의 20%까지만 허용된다.

재계는 이 같은 제한을 풀어달라고 줄곧 요구해왔다. 외부 자금 조달 한도를 40% 이상으로 상향하고, 해외 투자 비중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요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한 인물이 최태원 SK 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연대는 “SK그룹은 정작 지금까지 CVC를 설립한 바도 없다”며 “CVC 활성화 성과는 다른 대기업 집단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지주회사 전환집단 45개 중 10개가 14개 CVC를 운영 중이며, 이들이 운용하는 투자조합은 총 71개에 달한다. 13개 CVC가 121개 기업에 신규 투자했고, 해외 투자도 일부 진행됐다. 그러나 SK그룹은 해당 현황에 포함되지 않았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SK의 과거 투자 성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SK실트론 인수 건은 최 회장의 사업 기회 제공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논란을 야기했고,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연대는 “이 같은 전례를 고려할 때 SK를 위해 규제를 더 완화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한, 현행 법제 안에서도 SK는 충분히 CVC를 설립해 계열사 자금을 모아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제도적 여지를 활용하지 않은 채 규제 완화부터 요구하는 것은 제도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연대의 비판이다.

대통령실이 규제 완화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 데 대해서도 반박이 이어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주사 체제가 아니어서 CVC 규제 적용을 받지 않으며, SK 역시 이미 CVC 설립이 가능하다. 따라서 해외 투자 한도나 외부 자금 조달 한도를 늘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CVC 허용은 원래 대기업의 여유 자금을 벤처 생태계로 흡수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며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 재계는 외부자금 확대, 해외투자 확대 등 애초 취지와 무관한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SK 등 일부 재벌의 민원성 요구를 근거로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면, 금산분리 원칙은 더 훼손되고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제공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파인내셜투데이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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