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 사진=연합뉴스
빗썸 . 사진=연합뉴스

전날(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드림플러스 닥사(디지털자산거래소협의회·DAXA) 컨퍼런스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주재한 가상자산 거래소 CEO(최고경영자) 간담회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두나무(업비트)와 코인원, 고팍스 등 주요 거래소 CEO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지만, 정작 업계 2위인 빗썸은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불참이 아니었다. 금감원이 보낸 공문 최종 명단에서 빗썸은 애초에 빠져 있었다. 이 원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업계와의 소통 자리에서 시장점유율 20%가 넘는 거래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왜 빗썸만 제외했을까? 

◆ ‘법 없는 규제’가 만든 딜레마

앞서 빗썸과 두나무는 지난 7월 ‘코인 대여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용자 거래소에서 코인을 빌려 레버리지(지렛대 효과) 투자를 할 수 있게 한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사실상  ‘코인 공매도’를 가능하게 만든 것으로 현재까지도 이를 금지하는 법은 없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8월 중순 두나무와 빗썸에 신규영업을 중단하란 행정지도 공문을 보냈다. 두나무는 이를 즉각 수용한 반면, 빗썸은 서비스를 축소하되 핵심은 그대로 유지했다.

빗썸은 왜 두나무와 달리 금융위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두나무는 이미 시장 점유율 70%를 확보한 1위 사업자다. 신규 사업을 접어도 경쟁력에 큰 타격이 없다.

반면, 빗썸은 상황이 다르다. 시장 점유율 20%대의 2위 사업자인 빗썸은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 두나무와의 점유율 격차를 줄여야 이 시장에서 생존한다.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서비스를 두나무가 중단했다고 해서 같이 접으라는 것은 경쟁 포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판단에 빗썸은 신규 서비스를 축소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빗썸 관계자는 당시 신규 서비스 중지 권고에 대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들이 다양한 투자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며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대여 한도나 조건을 축소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라고 설명했다. 

◆ 혁신 아닌 ‘눈치보기’가 생존 전략

“과도한 이벤트, 고위험 상품 출시 등 단기 실적에 몰두해선 안된다”

이 원장이 이날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빗썸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으나, 참석자 모두가 누굴 겨냥한 발언인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규제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만약 코인 대여 서비스가 실제로 투자자에게 위험하고 시장을 교란한다면 법으로 금지하면 된다. 하지만 당국은 그런 수고는 하지 않고, 권고란 애매한 수단으로 사업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따르면 경쟁력을 잃고, 안 따르면 보복을 받는 구조다.

더 우려스러운 건 이런 방식이 만드는 선례다. 이제 거래소들은 신규 서비스를 기획할 때마다 투자자와 시장 흐름을 고려하기 보다 ‘당국의 입맛에 맞는지’를 먼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물론 가상자산 시장이 법제화하기 전 너무 빨리 움직이기에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유연함’이 시장에는 불확실성으로 반영된다. ‘허용’과 ‘금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자들은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에서의 가이드라인과 행정지도, 권고 형태의 규제는 언제든 해석이 바뀌거나 강화될 수 있다”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의 사업 확장 속도와 범위를 제한하는 등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가상자산 시장, 투명한 법치 필요

그렇다고 빗썸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빗썸은 코인 대여 서비스 외에도 지난달 초 닥사가 시행한 대여 한도를 제한하는 ‘가상자산 신용공여 업무 가이드 라인’도 위반해 경고 조치를 받았고, 이에 금감원은 8월 말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또한, 간담회 다음날인 1일 금융정보분석원(FIU)은 빗썸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빗썸이 지난달 22일 호주 거래소 ‘스텔라’와 오더북을 공유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국은 빗썸이 특금법상 요구되는 자금세탁방지 절차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빗썸은 “필요한 서류를 모두 제출했고 당국과 합의했다”고 주장하지만, 당국은 “절차 이행이 미흡했다”고 보고 있다.

법 위반 여부는 조사를 거쳐 판단해야 할 문제지만, 타이밍이 절묘하다. 오더북 공유가 시작된 지 10일이 지나도록 별다른 조치 없이 지켜보다가 왜 하필 간담회 패싱 다음날 조사에 착수했을까? 

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배제한 다음날 법적 조사로 압박하는 모양새는 법 집행이 아니라 ‘징벌’처럼 보여진다. 그저 ‘간담회 명단에서 제외’란 비공식적 압박이 그 어떤 공식 제재보다 무거운 이유다. 

빗썸은 현재 IPO(기업공개)를 준비 중이다. 금감원이 IPO 심사도 맡고 있는 만큼 이번 패싱이 향후 상장 심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PO와 관련해 빗썸은 “규제 당국 및 자율 규제 기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업계의 현실적인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당국과의 신뢰는 균열을 드러낸 상태다.

그날 간담회장에 비어 있던 빗썸의 자리와 다음날 시작된 현장조사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불편한 단면을 보여준다.

가상자산 시장은 이제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규제는 불가피하지만,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가이드라인과 제재 기준이 명확해야 사업자들도 안정적인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 시장이 투명한 법치로 나아갈지, 아니면 더 깊은 불신과 갈등으로 치달을지는 빗썸만이 아니라 당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파이낸셜투데이 최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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