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ABC의 장수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가 무기한 방송 중지됐다. 키멜은 최근 방송에서 커크 암살 사건을 두고 “보수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트럼프의 대응을 “성숙한 애도가 아니라 네 살짜리 아이가 금붕어를 잃은 수준”이라고 조롱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이 이번 방송 중단 조치와 관련이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뉴욕 타임즈(NYT)는 이를 두고 “새로운 검열 시대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라고 평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의 언론 통제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NYT와 CNN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국방부 출입 기자들에게 보도 전 사전 승인을 받겠다는 서약서를 받을 계획이라고 한다. 해당 서약서에는 비밀 정보는 물론, 비밀이 아닌 정보까지도 공개 전 적절한 권한을 가진 담당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명을 거부하거나 지침을 따르지 않는 기자들은 출입이 제한될 것이라고 전해진다. 미국 국방부는 19일 국방부 취재 기자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새로운 취재 보도지침을 공지했다.
미국 정부의 이런 상식을 벗어난 행동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진 좌파의 광신적 판사는 탄핵해야 한다”라고 발언했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서류 미비 이민자의 단속 회피를 도왔다는 이유로 판사를 체포한 일도 발생했다.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하원을 제외한 다른 권력기관, 즉 사법부와 언론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통제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현재 미국에서 발생하는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반미 정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역시 명확하다. 영주권을 소지한 우리나라 국민이 공항에서 연행되고, 미국 유학생이 갑작스럽게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미국을 위해 파견된 317명의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미국에서 체포되고 구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로 인해 반미 정서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미’와 ‘반트럼프’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나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인권의 최후 보루 역할을 담당했던 미국의 전통적 이미지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중국’보다 더 위험한 국가가 미합중국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자체가 변했다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트럼프 이전 시기에는 이런 사태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반미주의로 귀결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반미주의가 확산된다면, 미국 대신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미주의는 철저히 경계하되,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점은 없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이라고 판단한다.
우선 이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대통령제의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했다. 이러한 사건과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될 경우,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와 인권은 물론 경제를 포함한 모든 영역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미국이 권력 분산형 구조인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전형적인 중앙집권 국가인 대한민국이 대통령제를 유지할 경우, 대통령에 따라 더욱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4년 중임제 개헌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미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4년 중임제 혹은 연임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결국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 행사 기간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개헌을 논의하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권력구조를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 다른 교훈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부를 공격하고 언론 통제를 시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범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여당이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설사 여당의 주장에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권은 사법부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기초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사태는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요사이 세계 정세는 매우 불안하다. 러시아가 드론으로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공격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3차 세계대전이라는 언급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리라도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근간을 튼튼히 해야 한다. 근간을 ‘정의’라는 명목으로 흔들어댈 시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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