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인간으로 쳐도 결코 장수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출범 70여 년 만에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이 정권 저 정권을 거치면서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이 검찰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정부 형사사법시스템의 핵심 기관이었다.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
정부와 여당은 7일 고위 당·정·대 협의회를 열고, 검찰청을 해체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발표했다. 개편안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검찰청은 1년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9월 완전히 폐지된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처음 만들어진 이후 71년 동안 유지되어온 검찰 중심의 형사사법시스템이 큰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새 정부 정부조직 개편안은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분리, 검찰청 해체,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대통령 이재명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기획위원회가 구상한 원안 대부분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권은 행안부 산하에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소권은 법무부 산하의 공소청으로 이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될 경우 중수청 수사 인력은 검사와 경찰의 수사관으로 보임하면 된다. 공소제기는 공소청 몫이므로 수사 주체의 출신을 따질 일은 없을 것이다.
중수청 소관 부처가 행안부로 결정되면서 법무부 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행안부 권한이 자칫 비대화되거나 수사 효율성 저하 등 현장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내에서는 중수청을 법무부에 둘 경우 수사·기소 분리 등 검찰개혁 취지가 퇴색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안부도 일각의 권력 비대화 우려에 대해 ‘기우’(杞憂)라는 입장이다. 현재도 경찰청이 행안부 산하에 있지만, 사실상 독립적인 기관인 만큼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70여년 동안 이어져온 형사사법체계를 단기간에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일부에서 이를 부풀려 ‘수사·기소 분리’라는 검찰개혁의 근간을 뒤흔드는 주장이 나온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를 요구하는 건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정부는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있는 만큼 각계의 의견들을 두루 수렴해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어울릴 혁신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보완수사요구권 같은 문제도 검찰 직접 수사의 경우 어땠는지 등 다각도로 연구검토해야 한다. 물론 간과해선 안될 점은 검찰이 어떤 형태로든 수사권을 갖고 있으면 언제든지 개혁 이전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검찰은 최근 들어서만도 개혁의 칼을 들이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우선 관봉권 띠지 분실 사건이 그것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건진법사 전성배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5000만원짜리 관봉권 다발을 확보했으나, 관봉 검수일·담당자·부서 등 정보가 적힌 띠지와 스티커를 분실해 출처를 규명하지 못한 채로 사건을 김건희 특검에 넘겼다. 고의 멸실 등의 혐의가 있다면 용서 못 할 일이다.
이와관련, 대통령은 검찰 자체의 감찰·수사가 아닌 상설특검 도입 등의 방안을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민주당 원내대변인 김현정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검찰에 수사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특검 수사가 답”이라며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면 제 식구 감싸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심우정 특수활동비’도 수사결과를 봐야겠지만 검찰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는 좋은 예(例)가 되고 있다.
3일 뉴스타파는 전 검찰총장 심우정이 비상계엄 당일부터 나흘 동안 총장이 집행할 수 있는특활비 3억4200만원을 쓴 사실을 보도했다. 핵심은 나흘 동안 3억4200만 원을 썼다는 게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점. 지난해 심우정이 집행한 총장 몫 특활비의 한 달 평균 금액은 3억3000여 만원이었다. 불과 나흘 만에 한 달 치보다 많은 특활비를 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경태는 “내란 당일부터 4일 동안 집중적으로 살포된 특활비에 대해, 필요하다면 수사 의뢰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검찰의 내란 관여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일에 옳게 쓰라는 특활비의 쓰임새가 범죄행위와 연루됐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법무장관 정성호는 “통상적인 특활비 집행으로 보이진 않는다. 특수활동비가 부적절하게 사용된 게 아니냐, 또는 오남용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집행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검찰총장 심우정은 판사 지귀연이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했을 때 항고를 포기해 윤석열의 ‘탈옥’을 도왔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남용이 12·3 내란을 겪으면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당시 심우정은 지귀연의 구속취소 결정에 대한 즉시 항고를 포기하며 윤석열이 석방되도록 지휘했다. 이로 인해 내란수괴 윤석열은 개선장군 행세를 하며 구치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런 검찰을 어찌 그냥 두고 보아야만 한다는 말인가.
구치소를 빠져나온 윤석열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거리를 활보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고개를 쳐든 내란 수괴 윤석열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검찰이 내란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일반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검찰권 오남용의 피해를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축소사건이나 디올백 사건은 듣는 것만으로도 역겨워하는 이들이 많으니 논외로 치자. 시간이 좀 지났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유우성 사건을 되짚어 보자.
검찰은 여동생을 협박해 얻은 진술로 그에게 간첩 혐의를 씌웠고,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조작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유우성이 무죄를 받자 검찰은 즉시 다른 혐의를 끄집어내 기소했다. 대법원은 2021년 10월, 사법 사상 처음으로 “검사의 공소권 남용”이라고 못 박으며 검찰의 행위를 ‘보복 기소’라고 판결했다.
유우성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검찰에 의해 빼앗겼다고 말한다. “그 검사들의 이름을 들으면 억울하게 당했던 그 시간들, 구치소에 수감됐던 시간들, 버텨야 했던 억울함들이, 너무 뼈져리다”고 절규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검찰을 지금도 원망하고 있다.
검찰 개혁과 관련, 그 자신도 검사였던 조국혁신당 의원 박은정의 얘기가 귀에 들어 온다.
“국민 위의 권력, 통제 받지 않았던 검찰이 지금 수술대에 올라 있다. 검찰 개혁은 하나의 조직 개편이 아니라, 검찰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통제 아래에 되돌려 놓기 위한 조치다”
검찰청 폐지가 확정된 8일 검찰총장 직무대행 노만석은 자책이 담긴 사죄를 했다. “헌법에 명시된 검찰이 법률에 의해서 개명 당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검찰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 수장의 이 발언은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던 대한민국 검찰의 반성문이었다. 그의 탄회(歎悔)처럼 스스로 묘혈을 파고 스스로를 파묻은 건 그 누구도 아닌 검찰 자신이었다. 정의롭지도 못하고 공정하지도 않았으며 사리사욕에만 눈멀었던 권력자에게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했던 후과(後果)였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2026년 9월 25일 이전과 이후로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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