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 사유화를 강압에 의하여 영구화하려던 윤석열 일당의 시도는 좌절됐다. 진보 정권이 들어섰고 권력의 명암은 확연히 갈렸다. 윤석열 주위의 군상들은 구속을 면치 못하고 윤석열 부부는 구금됐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에서 극단적 대치의 한 축에 서있었다. 그래서 더욱 협치와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진보정권임에도 보수성장을 표방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실용적 시장정부를 내세웠다. 실질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들과도 회동했고 지난 정권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도 한국정치의 문법은 그대로다. 당장 검찰·사법·언론 3대 개혁 모두 야당과 대화 자체가 실종됐다.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관계법 2,3조 개정안)과 상법, 방송법 등 어느 하나도 야당과 합의되지 않았다. 한미 관세협상의 결과를 두고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을 비아냥하기 바쁘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3대 특검도 야당은 정치탄압, 독재라고 날을 세운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엔 초강성 지도부가 들어섰다. 더불어민주당엔 일찍이 야당을 내란정당이라며 ‘사과와 반성없는 야당과는 악수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강성 대표가 선출됐다. 윤석열 3년의 극단 대치가 데칼코마니처럼 반복되고 있다.
국정운영의 권한과 자원을 갖고 최종 책임을 지는 집권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협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당위론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이미 여당 대표가 협치의 부재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야당 역시 기다렸다는 듯 강성당원의 성향을 의식한 반탄 대표와 지도부가 선출됐다. 이러한 상황은 당내 강경 지지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한국정치의 일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치가 재구성됨으로써 이 흐름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는 빈사상태로 공직과 사익을 탐닉하는 자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진영으로 나뉘어 흑백이 강하게 충돌하는 이분법적 정치는 상대의 의견은 무조건 묵살한다. 이성과 합리가 숨 쉴 공간은 사라지고 천박한 아부와 위선이 설친다. 윤석열 부부 특검 수사, 조국과 윤미향 사면, 김용 보석, ‘노란봉투법’, 민생회복지원금, 상법과 방송법 등 모든 사안에서 격돌하는 상황의 가장 주된 요인은 자신의 지지층을 향한 정치다.
정치복원이란 진부한 주제가 마냥 진부할 수 없는 이유는 정치부재는 결국 투쟁과 대립만 낳게 되고 공동체의 건강한 공론이 질식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겸허하게 탄핵을 수용하고 보편적 민심에 다가가야 한다. 지지층만 의식하는 3류 정치는 결국 보수의 소멸을 불러오게 된다. 우선 보수정당이 보수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민주권에 의해 파면된 윤석열의 무도한 ‘내란’에 대해 국민과 엇나가는 퇴행을 버려야 한다. 파면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서의 진정한 사과가 새로운 지도부에 의해 이루어지고 보수의 재탄생을 국민앞에 엄숙하게 선언하면서 보수쇄신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대표 경선에서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한 강성 행보는 버려야 한다. 지난 5월 친윤과 한덕수의 무리한 후보 교체를 막아낸건 국민의힘의 집단지성이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보수정당의 정통성과 위상을 세우고 여당과의 대화에 나서서 비판과 견제를 통해 국정의 당당한 한 축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내란정당의 불명예를 안고 시대착오적 광대의 정당 놀음에 안주할 것인가.
여당은 야당을 인정하고 내란정당이란 오명으로 상대를 자극시킬 이유가 없다. 위헌 정당 해산이란 정치적 레토릭도 실익이 없다. 위헌 정당 해산이 현실적으로 쉬운 상황도 아닐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구성원 모두가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민주당의 이러한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국민의힘이 퇴행과 극우적 행태로 일관한다면 정당 해체의 길을 밟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방선거가 바로 내년 6월이다.
여당은 대통령과 수평적 당정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대통령의 협치와 통합을 적극 엄호함으로써 여권내부의 상생을 가져와야 한다. 중도적 실용과 통합의 정치 없이 국내외적 난관과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없다. 예컨대 미국의 방위비 분담과 국방비 증액 요구 등의 대외적 위기에 대해서 여권이 야당을 적극 동참시키는 적극적 해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야당을 국정의 한 축으로 참여시킬 때 통합이 실질적인 성과를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국민의힘은 전면적 쇄신을 통해 국민에 다가가는 환골탈태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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