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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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감옥에 갇히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됐는가. 실로 민망하기 그지없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 부부는 그동안 욕먹을 짓들만 골라 했다.

지난 7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출정과장실. 수의를 입은 전 대통령 윤석열이 바퀴 달린 의자에 주저앉았다.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간 김건희 특검팀 앞에서 “조사받으러 가지 않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 그러자 구치소 기동순찰팀 등 10여 명이 특검의 지휘에 따라 윤석열이 앉아 있는 의자를 들어 바깥으로 데려가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이 바닥에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 1일 수의도 입지 않은 채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체포를 완강하게 거부하기도 했다.

속옷 차림으로 저항하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 모습은 그대로 외신을 탔다. 우리 국민들과 나라를 정말 ‘쪽 팔리게’ 했다.

AP와 로이터 등 세계 유력 통신사와 홍콩, 프랑스, 스웨덴 언론 등이 ‘수의를 벗었다’(take off uniform), ‘속옷 차림’(lying in underwear) 등의 표현을 제목에 사용하며 체포를 거부하는 전직 대통령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한 대학 교수는 외신 인터뷰에서 “범죄자가 법치주의를 이렇게 부끄러운 방식으로 무시한 적이 없다”며 전직 지도자가 반성 없이 자신을 정치적 박해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 한국, 한겨레 같은 주요 내신도 사설을 통해 전 대통령 윤석열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직 대통령이 보여준 이런 구차스럽고 오만한 행태에 국민들은 또 한번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외신까지 보도했으니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재직 때는 경호처를 앞세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관저 진입을 막으려 했고, 재구속 후에는 내란 특검의 인치에 불응하고 내란 혐의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

“명색이 전직 대통령이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잡범처럼 굴고 있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뒀던 국민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김건희도 이른바 모르쇠로 일관한 ‘거짓말 대찬치’ 끝에 12일 밤 결국 구속, 수감됐다. 민망하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함께 구속된 첫 사례다. 특검팀은 김건희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윤석열의 아내로 한때 영부인이었던 김건희는 이에 앞서 6일 오전 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역시 ‘영민한’ 대국민 가스라이팅을 시도했다. 포토라인에 선 그의 첫 마디.

“국민 여러분께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표현한 김건희. 겸손일까 전략일까. 법조계에서는 그의 이날 멘트를 재판부나 일반 국민에 대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으로 보고 있다. 자신의 신분이 우선 법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는, 그래서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무죄주장 빌드업’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공천에 개입할 수도 없고, 뇌물을 받을 자격도 없으며 공직자를 임명할 권한도 없는 일개 ‘개인’의 신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외국 정상들이 제공하는 영빈관에 머물며 문무백관들의 인사를 받을 수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은 각종 선거의 공천이나 공직자 인사에 개입할 수 없고 권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선물도 못받는다. 그게 바로 보통인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김건희가 생각해 낸 자신의 생존 방법은 어찌 보면 매정하기 그지 없다. 특검이 문제삼고 있는 16가지의 혐의가 모두 남편인 윤석열의 책임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죄판결 받을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떠넘기겠다는 계산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자신은 이기고 돌아왔다는 남편이나 이제 와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내나 보기에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2017년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 때 수사팀장인 윤석열이 구치소 수감 중 특검 출석을 거부하던 최순실씨를 강제로 구인한 적이 있다. 당시 최씨가 끌려오면서 “여기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특검 사무실이 있던 건물 청소 노동자가 지나가다 이 장면을 보고 외쳤다.

“염병하네”

염병? 원래 역병이나 장티푸스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확대돼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몹시 못마땅하다는 것을 이르는 욕이다. 평범한 일반 국민의 눈에 비친 최순실의 모습이었다.

최순실은 2016년에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일으킨 공범이다. 박근혜 정부의 숨겨진 비선 실세로 지목받을 만큼 베일 뒤에 숨어서 아무런 통제와 감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렀다는 의혹을 받았고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이걸 어쩌랴.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2020년 6월 대법원 판결로 징역 18년, 벌금 200억 원이 최종 확정되었다. 그런 그가 특검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단말마의 외침으로 쏟아낸 말이 “염병하네”의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게 최순실에게만 해당하는 일반의 시각일까?

동식물은 물론 물건에도 나름의 품격(品格)이 있다고 한다. 가구가 그렇고 꽃이 그렇고 사자나 호랑이도 그렇다. 특히 사람의 경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품격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TV 드라마 속 사약을 받는 죄인들의 반응이 떠오른다. 발버둥치며 저항하는 죄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임금을 향해 절까지 하며 순응하는 죄인도 보게 된다. 죄인에게, 사형수에게서 격을 찾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시청자-국민 입장에서는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다.

윤석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의 저서 <명상록>에서 한 말이다.

“현명한 자는 현실을 바꾸려 하기보다, 먼저 자기를 바꾼다“

윤석열은 더 이상 국민들을 민망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진실로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바꾸지만, 비겁하고 겁 많은 사람은 사실을 바꾼다. 인간으로서 품격이 있다면, 스스로 장부라고 자부한다면 얼굴 들기 민망한 행동은 이제 그만하길 바란다. 그게 자신과 나라의 격(格)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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