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요즘 국민의힘은 유난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이목을 끄는 경우는, 대개 긍정적 이슈가 아니라 부정적 이슈가 많을 때다. 지금 국민의힘이 직면한 가장 부정적인 평가는 당내 주류가 과거 주류인지, 현 주류인지조차 헷갈린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친윤’으로 불리던 구(舊)주류가 아직도 실세인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이번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에서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송언석 의원은 결선 과정에서 스스로가 친윤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다수 언론은 송 의원이 친윤이 아니더라도 친윤계의 지원을 받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제 ‘친윤’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영남 정치권이 국민의힘의 주류라는 분석을 제기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퇴장한 뒤 친윤이라는 명칭 자체가 무의미해졌고, 대신 친윤의 상당수를 이뤘던 영남권 의원들이 여전히 당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결국 친윤이 친영(친영남)으로 간판만 바뀌었을 뿐, 주류의 얼굴이 거의 그대로라는 점에서 ‘거기서 거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류가 누구이든, 정당 내부에는 주류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계파의 존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즉, 주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는 말이다.
필자가 계파의 존재를 나쁘다고만 보지 않는 이유는, 계파가 오히려 민주주의 유지를 위한 견제 장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의 사례가 그렇다. 영국은 양당제 아래 내각제를 운영하는데, 입법·행정 권력이 융합되는 내각제가 양당제와 결합하면 자칫 독재적 운영으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 독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동일 정당 안에도 다양한 계파가 존재해 서로 견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파가 있으면 권력이 독점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계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일본, 미국 등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에도 계파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계파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주류가 기득권을 절대 내려놓지 않으려 할 때다.
현재 국민의힘 주류가 친윤이든 영남권이든, 불법·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주도한 윤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대선 패배 책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이 여전히 주류 행세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6월 30일 자로 물러날 듯하지만, 그가 제안한 ‘5대 개혁안’은 사실상 거부된 상태를 보면 그런 느낌을 안 가질 수 없다. 이들은 대신 혁신위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5대 개혁안은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현 국민의힘 주류는 ‘혁신’을 ‘현상 유지(Status Quo)’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현상 유지를 고집하다가는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여론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조금만 인식한다면, ‘혁신’을 표방하면서 현상만 유지하려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행태는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행태를 보이는 것을 보면, 국민의힘 주류가 여론에 둔감하거나, 심지어 여론을 스스로 ‘계몽’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인식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부르는 황당한 발언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국민의힘의 지지층으로는 TK 정도만 남게 될 것이다. 영남 자민련이 아니라 TK 자민련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현 주류는 곧 열릴 전당대회에서도 자신들 계파 인사를 당 대표로 세우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에게서 희망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는 스스로 정치생명을 끊어버리는 결과가 되고,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견제 세력이 사라지면 권력은 쉽게 독주로 기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책임은 견제 기능을 스스로 포기한 국민의힘일까, 아니면 견제를 받지 않는 데 힘입어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일까?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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