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총선은 회고적 투표이고, 대선은 전망적 투표라는 진부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21대 대선은 회고적 투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불법계엄과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관세 협상, 안보 위기, 인플레이션 등 대내외적 위기 대처와 미래지향적 가치에 어느 정치세력이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느냐는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정권교체론이 정권창출론보다 높은 여론조사 수치가 이번 선거가 윤석열 정권과 위헌적 계엄에 대한 심판선거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내란종식’ 프레임이 과장된 선거 캠페인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결코 과한 구호가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이 전한길 강사 등과 함께 지난 21일 부정선거 관련 다큐 영화를 관람했다. 전 강사는 “선거국면이기 때문에 부정선거 실체를 알리기에 딱 맞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누구라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해명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 후보가 극우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아직도 절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은 기묘한 법원의 논리와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석방됐다. 그는 내란 수괴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신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나름의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지난 주말(31일)에도 ‘김문수지지’를 역설했다.

윤 전 대통령과 극우세력의 논리 중의 하나가 부정선거를 밝히기 위해서 비상계엄을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시스템과 서버 등을 조사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이 ‘계몽령’이라는 희대의 억지 논리가 극단세력이 계엄을 정당화하는 근거인데 이의 논거 중 하나가 부정선거의 실상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는 논리다. 따라서 윤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 영화 관람은 선거 국면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비상계엄을 정당화함으로써 재판에 영향을 끼치고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목적 등의 다목적 포석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내란종식 프레임이 과장이 아닌 이유이다.

극우세력의 준동이 잦아들었지만 대선 이후에 이들은 또 다시 자신들의 극단적 주장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뿌리는 깊고도 넓다. 이는 단지 부정선거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편향된 색깔론과 반공 논리 등 수구세력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한국사회의 극우를 형성하는 논리들은 뉴 라이트와 연계되어 있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반역사적 사고의 연장에 있다. 나아가 식민지근대화론이나 반일종족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정치적 공간을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이들이 비상계엄과 직접적인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없겠지만 보수를 참칭하여 극우의 본체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냉전과 반공의 덫에 갇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 자들, 그들이 바로 지난 해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윤석열 탄핵을 집요하게 반대했던 세력의 일단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 김 후보가 그래도 지난 27일의 마지막 정치 토론회에서 극적인 반전을 시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계엄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입장은 밝혔지만 이는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에 불과하고,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태도는 끝내 적극적으로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탄핵에 대한 생각은 변치않는 소신으로 보인다. 정치인이 자신의 소신에 대해 책임지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것이 선거다. 대선 승패와 관계없이 김 후보는 대선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이며, 보수가 재편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권의 향배는 예단할 수 없다. 김 후보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김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힘의 주류는 극우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정지역 등에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복무하는 구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진영 갈등은 임기 초반부터 임계점을 향해 질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가 이러한 갈등 국면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기는커녕 대치·대결의 심화로 이어진다면 선거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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