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지난 1일의 대법원의 이재명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은 사법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사건이 회부된 이후 9일만에 판결이 내려졌고, 판결 다음 날인 2일, 사건기록이 서울고법으로 환송됐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형사 7부에 사건이 배당되고 담당재판부는 배당 받자마자 15일을 첫 공판기일로 지정했다. 기록 송부와 재판부 배당, 공판기일 지정이 같은 날 이뤄진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례적’임은 물론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심 역시 합리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대선이 목전이다.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에 대한 최종심은 선거일까지 이뤄지지 않을 걸로 보는 게 상식이었다. 대선판을 결정적으로 흔들 수 있는 대형변수를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돌출시킬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신속한 사건 처리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명분이 있다면 일응 순응할 수 있다. 그러나 고등법원이 신속히 재판을 하더라도 대법원이 선거일까지 재상고심을 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대선 전에 최종 유무죄 판단은 안 내려지는 것이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을 대법원이 자초해서 만든 형국이다.
‘정치의 사법화’니 ‘사법의 정치화’니 하는 상투적 용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보완, 갈등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기호이다. 한국정치에서 사법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정치 역시 사법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거하려는 수법을 많이 사용해 왔다. 사법의 판단이 정치의 판도를 바꾸곤 한다. 일상 시민사회도 사법은 한 인간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따라서 법치주의에 기반한다면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정치인이라도 범법행위가 있다면 법 앞의 평등이란 측면에서 단죄를 받아야 한다. 이게 ‘헌정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정은 대선을 의식하여 서둘렀다는 의심과 음모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법관의 양심과 법리에 따라 심판해야 하지만 판결이 사회에 끼칠 파장과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전례없는 ‘과속 진행’이 사법부 신뢰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협의 수사 당시 사법부가 구속일자를 ‘날(일)’이 아닌 시간으로 했어야 한다며 윤 전 대통령을 석방한 경우나, 검찰이 이에 대해 ‘즉시항고’를 하지 않은 것 역시 모두 ‘이례적’이고 법조계 상식과 관행에 반한다는 게 일반 다수설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진보 진영에서 일련의 비관행적 절차들에 대해 음모론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법원은 속도를 조정하는 신중함을 보여야 한다.
민주당은 총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론은 일단 보류했지만 실제 행동에 옮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법관의 줄탄핵을 통하여 아예 사법부를 무력화시키자는 발상도 나온다고 한다. 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 소원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도 구상하는 상황이다. 사법의 과속을 법으로 제어하겠다는 발상이고 대선 전 돌발할 수 있는 결정적 사법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자제되어야 한다. 과잉금지의 법칙(principle of proportion)은 법치주의에서 가장 기본적 원칙이다. 법조계에서도 대선 전 확정 판결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이 구상하고 있는 일련의 입법 구상들은 ‘사법 불복’ 프레임을 키울 수 있다. 게다가 사법부 자제를 무력화시켜서 원천적으로 확정 판결을 막겠다는 생각은 입법만증주의를 넘어 삼권분립을 입법권력으로 무력화 시키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선거전략의 관점에서는 중도층에게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대법 판결의 문제를 차분히 파악한 후 대응 수위를 정하는 게 순ㄹ다.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를 여하이 잘 조절하고 운영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의 역량이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의 충돌을 넘어서, 입법권력과 사법권력의 갈등까지 중첩적으로 작용하는 지금의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이를 인식하고 사법부나 민주당 양자는 자제와 절제의 덕목을 발휘해야 한다. 상식과 관행에 입각하면 된다. 과하면 탈이 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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