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예상과 달리 늦어지고 있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변론 종결 이후 각각 14일, 11일 뒤 파면 여부가 결정됐다. 그런데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 절차가 종결되었지만 3주가 지난 상황이다.

법원이 지난 3월 7일 윤석열 대통령 구속을 취소했다. 법원은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구속 취소 결정을 하는 것이 상당하다”면서 “이런 논란을 그대로 두고 재판을 하면 향후 파기 사유나 재심 사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헌재 판결이 늦어지는 이유가 법원이 ‘수사 적법성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고 심리를 진행해 온 헌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헌법재판소법은 진행 중인 수사·재판 기록은 요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헌재는 검찰과 경찰,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기록을 탄핵 심판 증거로 채택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헌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둘러싸고 재판관 사이에 이견이 있어 선고가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헌재의 결론을 두고도 인용, 기각, 각하 등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인용을 주장하는 측은 “비상계엄 선포는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 헌법과 계엄법에 위배 된다. 특히 국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장악하려 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파면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각을 예상하는 측은 “비상계엄은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위법성이 중대하지 않고, 증인과 증거 조사도 부실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각하를 주장하는 측은 그 이유로 “국회 측이 탄핵 소추 이유에 내란죄를 철회하는 것은 탄핵 심판의 사실관계 대부분을 지우는 것이고, 국회의원들의 표결권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향후 정국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및 이재명 대표 선거법 2심 판결(3월26일) 결과에 따라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 위반의 ‘중대성’ 부분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대통령을 파면시킬 정도로 중대한 위반이 있었는가, 그리고 대통령 직책을 계속 수행하는 경우와 그러지 않는 경우를 비교하면 어떤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본다.

헌재 탄핵 심판 인용 또는 기각과 이재명 재판 결과 대선 출마 불가 또는 출마 가능에 따라 크게 4개 시나리오 가능하다.

제1 시나리오는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최종심에서 피선거권 박탈 선고를 받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경우다. 결과적으로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이 이뤄지는 경우다. 이낙연 전 총리는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이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제2 시나리오는 윤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이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에 출마하는 경우다. 무엇보다 이 대표가 2심에서도 피선거권 박탈 선고를 받고도 출마할 경우 민주당 대선 경선이나 본선 과정에서 혼란 상황이 올 수 있다. 김부겸 전 총리 등 비명계 대권 후보들이 이 대표에게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라고 압박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이 분열될 수도 있다.

제3 시나리오는 윤 대통령 탄핵은 기각되고 이 대표는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 ‘질서 있는 퇴진’과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다. 윤 대통령도 헌재 최후 변론에서 ”87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 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라고도 했다.

제4 시나리오는 윤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고 이재명 대표도 선거법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대선에 나올 수 있는 경우다. 윤석열과 이재명은 그동안 ‘적대적 공생 관계’로 얽혀 왔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이 상호 대립을 통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고 기득권을 연장하면서 공생하는 관계로 전개돼 왔다. 죽일 듯 서로를 공격하고 대립하지만 서로를 살리는 ‘역설의 정치’가 펼쳐졌다. 계엄과 탄핵 정국 이전에 고착화된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가 다시 재연될 수 있다.

헌재 탄핵 심판 결과에 관계 없이 조기 대선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 최후 변론에서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언론에선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이제 국민의 관심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서 어떤 자질을 갖춘 대통령을 뽑아야 하느냐로 바뀌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통상 대선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비전을 갖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이다. 시대정신이란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이다. 비전이 중요한 것은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비전이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할 수 있는 힘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리더의 권력 행사하는 방안으로 강압이나 대가 없이 상대의 마음을 얻는 소프트파워를 강조한다. 그는 이런 소프트파워를 구성하는 중요 기술 중의 하나로 비전을 제시했다. 비전이란 ”타인에게 의미가 있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미래 세상“을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전이 없는 지도자는 공허하며 결코 미래를 혁신할 수 없다.

둘째, 공공성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사익보다 국익에 충실할 대통령, 공조직 중심의 비선 없는 투명한 대통령, 행정 독재적 사고에 빠지지 않고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민주적 소망을 갖춘 대통령이 필요하다. 윤여준 전 장관도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에서 ‘공공성에 기반한 공인의식’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기본 자질로 지적했다. 그는 “공공성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가 부족해지면 권력에 대한 사유 의식이 초래된다”고 경고했다.

셋째,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 올 수 ‘변혁적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변혁적 리더십은 주어진 맥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맥락 자체를 바꿔 버린다. 강한 도덕성, 예리한 역사의식, 저항하기 어려운 설득력, 누구나 희구하는 미래의 비전,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상징성 등을 갖고 있어야 변혁적 리더십을 구사해 국민의 에너지를 최대한 결집시킬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동·서 냉전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산업화라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불균형 성장 전략과 수출 주도 전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의 기반 속에서 하나회 척결, 금융 실명제, 역사 바로세우기 등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뤄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경제 위기 속에서 정보화 정책을 통해 한국을 IT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인공지능 등의 디지털 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는 1700년대의 산업 혁명 이후 4차 산업 혁명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통찰력과 글로벌 경제에 대한 식견으로 4차 산업 혁명 선도 국가의 길을 닦을 수 있는 변혁적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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