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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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구속 취소로 석방된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 8일 한남동 관저로 복귀했다. 그는 구치소 정문 앞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거나 주먹을 들어 올리며 호기를 보였다. 윤석열은 관저 도착 후 반갑게 꼬리치는 ‘개들’을 하나하나 껴안아 줬다고 한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속이 터진 건 탄핵 지지, 윤석열 파면을 외쳐온 국민들.

탄핵 반대 집회에선 윤석열의 웃음 섞인 ‘석방 인사’를 보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반면, 탄핵 찬성 집회에선 단식투쟁 결의가 나왔다.

전광훈이 이끄는 자유통일당 서울 광화문 광장의 발언자들은 “빨갱이는 죽여도 돼”를 연신 외쳤고 지지자들도 이를 따라 같은 구호를 반복했다.

한 지지자는 연단에 올라 “거짓말을 갖고 윤석열 대통령을 구속한 오동운 공수처장을 처단하자”, “부정부패 비리의 온상 선관위원장 노태악을 끌어내서 처단하자”, “정치 재판을 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문형배를 끌어내서 처단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슷한 시각 촛불행동,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등이 주도한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인근 탄핵 촉구 집회 현장에선 분노 가득한 정반대 반응이 터져 나왔다.

비상행동 집회 발언대에 올라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 최새얀은 “방금 윤석열이 석방됐다는 소식에, 우리나라 최고 수사기구가 내란에 스스로 동조하는 모습까지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며 “절망이 불쑥 다가오는 요즘이다. 윤석열은 여전히 파면되고 처벌받아야 할 국가 폭력, 헌법 파괴 범죄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은 윤석열 파면 시까지 무기한 철야 단식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상행동 공동의장 김민문정은 “좀 전에 내란수괴 윤석열이 서울구치소를 걸어 나왔다. 검찰은 석방 지휘를 하면서 결국 권력자에게 부역하는 길을 선택했다”며 “내란 수괴를 석방하는 나라가 정말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작년 12월 3일 밤 국회에 달려왔던 그 마음으로, 여의도에 모였던 그 결기로 다시 한번 헌법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움을 시작하고자 한다”며 “윤석열이 파면되는 그때까지 경복궁역 인근에서 무기한 철야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탄핵 찬성 측의 촛불행동 공동대표 김지선은 “대국민 학살을 기획했고 실행하려 했던 자를 풀어놓으면 어쩌자는 것이냐”라며 “검찰도 내란공범인 것이 확실해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피고인은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데, 그의 명령을 따른 부하들은 구속 상태로 재판받는 것이 정상이냐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양 진영의 이 같은 갈등은 석방된 윤석열의 향후 행보에 따라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윤석열은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관저에서 버틸 때도, 구속돼 구치소에 있을 때도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내며 지지자 결집에 주력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공개된 석방 메시지도 계엄 혼란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사실상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로 채워졌다. 윤석열은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국민들, 그리고 우리 미래세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공수처는 검찰이 즉시항고를 포기하고 윤석열 석방을 지휘한 데 대해 “체포와 구속을 담당했던 수사기관으로서 구속기간 산정 문제 등과 관련해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지 못하게 됐다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민감한 시점인 만큼 윤석열의 행보에 따라 탄핵 찬반 양측의 갈등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경찰은 분신 시도, 폭동 사태 등의 상황에 대비해 탄핵 심판 선고 당일 인력 총동원령인 갑호비상 발령과 경찰특공대 투입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반성은 없고 옹고집만 있는 ‘계몽론자들’ 때문에 나라가 무법천지, 무정부 상태로 가고 있다. 광화문과 안국동 헌재 앞은 매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문형배 헌재소장 직무대행이 사는 동네 역시 테러 수준의 난장판이 연출되고 있다.

희한한 여론조사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 대한 신뢰도 조사가 그것인데 조사 대상자의 54%가 ‘신뢰한다’고 한 반면, 40%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1~20%라면 몰라도 40%라는 숫자가 기막히다. 엠브레인퍼블릭과 한국리서치 등이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다.

공연한 기관이자 잘 있는 기관을 여론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민-형사 소송 판사를 여론으로 재단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헌재는 사법기관이지 정치집단이 아니다. 구성 자체가 균형을 이루도록 돼있다. 입법, 행정, 사법 3권분립 정신도 보장돼 있다. 매일 데모하고 욕하고 모함해서, 정보가 부족한 순진한 국민들을 ‘가스라이팅’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느 한 사람이라도 헌재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람 붙잡고 물어볼 경우, 선동에 오염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지지 세력과 그 아류들의 헌재 공격이 도를 넘었다.

국민의힘 의원 서천호.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 때려 부숴야 합니다, 쳐부수자”에 이어, 내란 혐의로 구속된 전 국방장관 김용현은 헌법재판관들을 처단하자고 옥중 편지를 보냈다. “불법 탄핵 재판을 주도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을 즉각 처단하자, 처단하자”

소위 ‘쌍전’이 외치는 “탄핵을 인용해서 파면시킨다면, 헌법재판소는 가루가 돼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도 소름 끼치기는 마찬가지다. 어디 교회 목사라는 전광훈을 뺨치는, 갑자기 나타난 국사 강사라는 전한길은 특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 실력으로, 그런 역사관으로, 그런 사리 판단으로 어떻게 일타강사가 됐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잘못들이 있다해서 다 때려 부숴야 한다면, 용산도 한남동도 대법원도 국회도 남아날 게 있겠는가. 경찰서 검찰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권성동, 권영세 ‘쌍권’도 얼굴값을 해야 한다. 윤석열 옹호, 이래서 될 일인가. 나라를 무법천지, 무정부 상태로 만들어도 좋다는 것인가. 실로 놀랍다 못해 경악스럽다. 명색이 정치권의 지도급 인사들이 아니던가.

이런 와중에 최상목은 헌재가 ‘부작위(不作爲)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는데도 재판관 마은혁의 임명을 유보하고 있다. 마이동풍이다. 정무적 판단이라니 그 짓이 왜 필요한가? 그냥 법대로, 판결대로 하면 될 일, 최고 권력자가 법을 무시하면서 헌재를 능멸하고 있다. 스스로 정치적 판단의 노예가 돼 정치권에 휘둘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비겁한 직무유기다. 당당하지 못하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로 평가받는 헌법재판소를 이렇게 무시하고 압박하는 게 계속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거라는 게 헌법학자들의 진단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헌재 재판관들이 일체 외부 압력에 반응하지 않고 뚜벅뚜벅 판관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는 점이다. 헌재는 곧 평의와 평결을 통해 집단지성이 이끌어 내는 최고의 판결을 내놓을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나 국민 모두 기각이든, 인용이든 헌재 판결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게 우리를,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다. 루소가 얘기한 ‘사회계약’이 바로 그것이다.

윤석열은 관저에 복귀한 날 부인 김건희, 비서실장 정진석, 부속실장 강의구, 경호처장 김성훈 등과 김치찌개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평화롭고 안락한 일상의 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러셨어요?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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