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거리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계속되고 있고, 최근에는 서울서부지법에 대한 공격까지 있었다. 지금의 혼란스러움은 근래에 보기 힘든 정도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지금 유독 혼란스러운 이유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조용히 있었던 보수 세력들이, 지금은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 중의 하나인 피치사가 지난 2월 6일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유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피치사는 앞으로의 전망도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말 다행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은, 정국은 혼란스럽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도 기업들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기관들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도록 노력했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공수처가 자신들의 수사권을 주장하며 사건 이첩을 요구해 사건을 가져갔지만, 수사도 제대로 못 한 상태에서 이를 검찰이나 경찰에 재이첩하는 촌극은 없었어야 했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 역시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권이 헌법재판관들의 이념 편향성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공격하는 것도 한몫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의혹 제기가 가능하도록 만든 소재를 헌법재판관들이 제공하지는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사건들에 대한 재판의 우선순위를 합리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인상을 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도 문제다. 이 점은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과 관련한 선고 연기가 그런 사례 중의 하나다.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과 관련한 선고는 2월 3일 예정돼 있었다. 헌재는 1월 22일 첫 변론 기일을 열고 1시간 20분 만에 종결했는데, 종결 이틀 뒤에 선고일을 2월 3일이라고 정했다. 이런 속전속결에 대해 최상목 권한 대행 측이 “졸속 선고가 우려된다”라며 변론 재개를 요청했었는데, 해당 요청 3시간 뒤에 헌재는 이를 기각했다.
그런 와중에 헌법재판소는 1월 31일 최상목 권한 대행 측에, ‘여야의 재판관 추천서 제출 경위’를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그마저도 31일 당일에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까 최상목 권한대행 측은 변론 재개를 다시 신청했고, 이를 헌재가 선고 당일인 2월 3일에 받아준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갑자기 선고를 연기한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과정을 볼 때, 헌법재판소가 마은혁 헌법재판소 후보자 임명 관련 사안을 서둘러 처리하려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헌법재판관이 8명 있는 상황인데도, 마은혁 후보자에 대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다른 사건 심리보다 우선적으로 서둘러 처리하려는 이유와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국가 차원에서 보자면, 오히려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기형적인 상황’부터 해소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 요건이 150석인지 아니면 200석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가려줘야 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민주당이 다시금 최상목 권한대행에 대해 탄핵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요건을 헌재가 분명히 해 줘야, 민주당의 탄핵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아니면 탄핵 남발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안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헌재가 합리적으로 일 처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줄 수 있고, 이를 통해 국민적 신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서둘러 해결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리가 그것이다. 현재 윤 대통령의 심리 과정을 보면, 말을 바꾸는 증인들도 있고, 증언을 아예 거부하는 증인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증언의 사실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듯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신중을 기해야만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했을 때, 국민적 반발을 누그러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논란이 됐다가는,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현재 헌법재판소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모든 사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서둘러 결정해야 하는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을 구분해, 국민적 신뢰를 쌓아가는 것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헌법재판소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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