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12·3 비상계엄, 12·14 윤석열 탄핵소추 가결, 12·31 체포영장 발부, 1·15 체포영장 집행, 1·17 구속영장 청구, 1·19 구속 및 폭도 법원 난입, 1·26 구속 기소.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의 숨가빴던 수사와 사법 일정들이다. 이 과정에서 숱한 법리 논쟁과 사법 논란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과 그의 대리인단은 부단하게 절차상 흠결을 야기시켰고, 급기야 지난 25일 변호인단의 윤갑근 변호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 법원이 거대 야당의 지휘하에 대통령에 대한 내란 몰이에 나선 것이 작금의 혼란을 불러온 실질적인 내란 행위”라며 “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는 그 자체로 완벽한 내란 행위”라고 했다.

검찰이 구속기소 했으니 검찰 마저 내란의 주체라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국민의힘은 검찰을 공수처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그의 무리들은 내란의 주체를 피고인이자 탄핵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아니라 사법기관으로 호도하면서 프레임의 전환을 통해 극우의 시대착오적 그룹은 물론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시키기로 작정한 걸로 보인다. 이른바 억지와 거짓, 혹세무민과 견강부회를 무기로 헌재를 압박하는 여론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관되게 계엄은 정당했고, 유혈사태가 아니었으므로 내란도 아니라는 논리를 유지하는 것과 맥락이 닿아있다. 이런 전략이 주효했는지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의 격차도 계엄 직후에 비해 좁혀졌다. 두 달 가까이 끊임없이 제기한 그들의 사법 논쟁과 절차의 문제가 보수층과 특히 강성우파들에 의해 과대 대표되면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이 논쟁의 중심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탄핵이 인용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도 지난해 22대 총선 이전의 수준으로 거의 회복됐다. 비록 별 의미가 없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현저히 높아졌다. 여러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

윤 대통령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리라고 보고 이미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분리해서 보고 있다고 추리할 수 있다. 이미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양대 진영 간의 대결 구도가 강화되는 형국이다. 물론 앞으로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대선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무의미하다.

어쩌면 대선 결과 예측보다 탄핵 정국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한국 사회의 대립 구도의 심각성이 생각보다 훨씬 강도가 세다는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 보수층의 과대 표집만 가지고는 보수층의 결집을 설명하기 어렵다. 성별, 세대별, 지역별로 편차가 크지만 현직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그만큼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하는 현상과 여전히 보수층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8년 전의 박근혜 탄핵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과 박 전 대통령 탄핵에서 얻은 학습효과라는 진부한 분석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사회의 증오와 분열 지수는 임계점을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장한 병력이 국회를 범하고 이에 고무된 폭도들이 법원을 침탈해도 이에 대해 십자군의 성전 운운하는 여권 일각의 극언도 있다. 정치의 사익화에 최적화된 무리들이 보수층의 지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애써 정치적 분석을 내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엄은 내란이 아니라는 주장과 공수처 등 사법기관이 내란의 주체라는 주장 따위들은 정치적 수사로 치부하기에 선을 넘어도 많이 넘었다.

이는 프레임 전환과 역공이 일정 부분 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 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색깔론은 사법 논쟁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고, 좀비와 같은 극우 유튜버들의 발호 역시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윤 대통령과 그를 감싸는 무리들은 역사를 두려워할지 모른다. 역사의 반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동 국면은 제압되고 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여곡절에도 차분하게 영장이 집행되고 기소되지 않았는가.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집단들은 법적인 논란과 사법절차에 대한 시비로 지지층 결집을 꾀하고 이를 통해 반전을 도모하는 역사의 역류를 멈춰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의 ‘성공한 쿠데타’도 결국은 처벌받았고, 역사의 역류가 성공한 예는 동서고금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기에 이 상황이 정리되고 사필귀정의 역사가 다시 순행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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