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엘리베이터·뷔페·댄스홀 등 마련
올해 개관 111주년 맞은 웨스틴 조선 서울
국내 현존하는 호텔 중 가장 오래된 곳이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웨스틴 조선 서울은 1996년 기네스 협회로부터 최고(最古)호텔로 인정받으며 올해 개관 111주년을 맞이한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1914년 10월 10일 독일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George de Lalande)’의 설계로 탄생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총 5개층 규모로, 당시 60여개 객실을 보유한 국내 첫 근대식 호텔이다. 현재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지상 18층까지 규모를 확대하고 객실 수도 462개로 늘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조선철도호텔’로 시작됐다. 조선총독부 관할로 해방 후에는 교통부, 국제관광공사 등으로 운영권이 이양됐다. 이후 1981년 웨스틴 호텔과 제휴하면서 ‘웨스틴 조선 호텔’로 개칭하고, 국내 지분은 1983년 삼성그룹이 인수했다가 1991년 신세계백화점이 재인수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아르누보 양식에 바로크 지붕과 화강석으로 기단을 둘러 동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 당시 국내외 고객들의 선진문화를 향유했던 곳으로 다양한 ‘최초’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고객용 엘리베이터와 문화 교류의 장이었던 최초의 댄스홀이 있다. 1924년에는 국내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 코트(Palm Court)’가 문을 열면서 호텔 식음료 사업의 토대가 됐다.
1970년대에 오픈한 최초의 뷔페 ‘갤럭시(Galaxy)’ 레스토랑은 현재 웨스틴 조선 서울의 뷔페 ‘아리아(Aria)’의 전신이 된 곳이다. 이후 뷔페는 조선호텔을 필두로 다른 호텔도 뷔페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식음료뿐만 아니라 음악과 영화, 패션 등 문화 행사들이 최초로 이뤄진 공간이기도 하다. 1920~30년대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 미샤 엘먼 등 해외 유명 클래식 연주가의 공연이 이곳에서 열렸다.
오래된 역사만큼 이곳을 방문한 유명 인사도 여럿이다. 대표적으로는 개화운동의 지도자이자 독립신문 발행인이었던 서재필 박사, 하지(John R. Hodge) 육군 중장, 이승만 전 대통령 그리고 201호의 마지막 VIP 고객이었던 휴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 미국 부통령 등이다.
201호는 당시 최상급 스위트 객실로 국내외 귀빈을 맞이하는 곳이다. 해방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들이 이 귀빈실을 거쳐 갔다.
웨스틴 조선 서울이 위치한 부지도 역사가 깊다. 이곳에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이 있었다. 고종은 1897년 황제로 즉위하면서 제국의 예법에 맞춘 환구단을 지었다.
환구단은 제사를 지내는 3층의 원형 제단과 하늘신의 위패를 모시는 3층 팔각 건물 황궁우, 돌로 만든 북과 문 등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913년 일제강점기 시기에 조선총독부가 황궁우, 돌로 만든 북, 삼문, 협문 등을 제외한 환구단을 철거하고 이 자리에 조선철도호텔(현 웨스틴 조선 서울)을 지었다. 현재 황궁우는 웨스틴 조선 서울 경내에 남아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1970년 대대적인 재건축을 거쳐 현재 웨스틴 조선 서울의 모습으로 재개관과 동시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됐다”며 “특히 최초의 럭셔리 호텔의 역사를 지닌 만큼 최초의 호텔 뷔페를 오픈하는 등 식음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허서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