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 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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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안이 표결 처리됐을 때다. 국민의힘 의원 김재섭이 같은 당 선배 의원 윤상현에게 물었다. “형, 나 지역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했다고) 엄청나게 욕먹는데 어떻게 해야 돼?” 그러자 윤상현이 답했다. “재섭아, 나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앞장서서 반대해서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뒤에는 다 ‘윤상현 의리 있어 좋다’면서 그다음에 무소속 가도 다 찍어주더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야당이 일제히 윤상현의 발언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언주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소리 아닌가”라며 “웃기지 말라”고 말했다. 같은 당 원내대변인 노종면도 “‘전두환의 사위’였던 윤상현이 ‘전두환의 변종’ 윤석열을 옹위하는 게 당연해 보이긴 해도 자신의 불의(不義)한 처세가 무슨 자랑이라고 후배에게 전수까지 하나"라고 비판했다.

2016년 대통령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윤상현은 2020년 총선 당시 지역구인 인천 무슨 지역이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돼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그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트랙터 시위’를 두고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시민의 안전과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면서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난동 세력에게는 몽둥이가 답”이라고 공개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윤상현과 김재섭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윤상현은 분명 야당의 표현대로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의식 세계가 실로 가소롭다. 정말 역사가 무섭지 아니한가? 또 후배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하나?

문제는 정치판 ‘인간’들이다. 항상 누구나 강조하는 바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 국민들의 선택이다. 진영 논리나 지역주의에 빠져, 더 이상 영혼이 없는 모리배들을 국민대표로 뽑으면 안 된다. 윤석열의 체포를 둘러싸고 벌이는 저 ‘잘난 사람들’의 궤변과 억지를 보라. 정말 털이 날 수 없는 후안(厚顔)들이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이라고도 한다. 우리 사회 ‘엘리트’ 층의 한 부류로 보는 것이다. ‘엘리트’(Élite)란 말은 ‘뽑는다’,‘가려내다’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한 불어 단어다. 영단어 ‘엘리트’(elite)와 일렉트(elect)도 어원이 같다. ‘엘리트’의 발음은 엘리트도 되고 일리트도 된다. 특정 분야에서 타인에 비해 우수한 능력이나 자질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 그대로 뛰어난 사람들, 국회의원, 교수 법조인 언론인 등등. 군대에서 특별히 선발되어 별도의 부대 조직을 갖춘 기동대나 공수부대 같은, 정예 병력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엘리트’를 비아냥대는 말로는 한국말 ‘이리떼’가 있다. 지배계급 혹은 기득권 세력을 겨냥한 말로 발음을 한국말처럼 비튼 것이다.

그런데 이 ‘엘리트’가 문제가 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국무총리 한덕수 얘기부터 해보자. 그는 윤석열이 탄핵 의결되면서 대통령권한대행이 됐다. 사실상 대한민국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가 한 행동들이 기가 막힌다. 그는 국회에서 넘어온 법안들에 대해 대거 거부권을 행사했고 여야가 일찍이 합의해 추천된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보류했다. 헌재를 ‘완전체’로 만들어야 하는 당위(Sollen)를 외면했다. 그의 우유부단과 무책임이 부른 악수가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에겐 거취를 정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비행’(卑行)을 저질렀다. 그가 엘리트인가?

왜 그랬을까? 그의 기대 밖 행동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진정한 애국심?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반란 동조자였거나 아니면 평소 소신이 ‘저급사고’였거나, 둘 중의 하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가 여야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그의 권한을 의연하게 행사했다면 어찌 됐을까. 난세의 영웅까지는 몰라도 역사에 남을 총리가 돼 두고두고 국민적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수치스럽게 그 스스로 탄핵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한덕수는 “나라의 다음 세대를 위해 안타깝다”고 했다. 웃기다 못해 서글프다. 혹여 후세들이 한덕수류의 공직자세를 본받을까 봐 걱정이다. 생계형 공직자로 일해 온 사람들은 기회주의적인 좌고우면과 안일무사형 사고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소신을 갖고 의연하게 할 일하는 모습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장고 끝에 보인 자가당착은 힘없는 노인에게서 볼 수 있는 처연함까지 느끼게 했다. 유감이다.

새로 대통령권한대행이 된 최상목은 한덕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단단히 마음먹고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총기가 뛰어나 보이는 그다. 수재 소리도 들었다. 여야 정치권을 의식하지 말고 의연하게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 외롭고 힘든 결정이라도 할 수 없다. 해야 할 일이라면 소신을 갖고 밀어붙여야 한다. 그런데 그에게서는 지금 여(與)를 보다가 야(野)를 보고, 다시 야를 보다 여를 보는 식의 갈지자 행보가 감지된다. 더 이상 어정쩡한 ‘부작위’(不作爲)의 비겁함을 연출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싸고 사병(私兵) 집단이 된 경호처의 불법에 대해 나 몰라라 방치한 예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어쨌든 ‘최상목의 시간’이다. 주어진 대통령 권한을 들고, 오바마가 얘기했듯 “담대하게 전진해야 한다”. 그도 눈치는 볼 만큼 봤다. 장차관을 비롯한 공직 인사도 과감히 하고 예산 집행과 각종 정책 추진도 소신껏 해야 한다. 지금 나라가 어떤 상황인가. 성찰과 분발이 있기를 기대한다.

야권으로부터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의짐’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는 집권 여당 원내대표 권성동과 비대위원장 권영세도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고시, 검사 출신의 엘리트 국회의원, 그들에게서 국민들은 바른 것, 정의로운 행동, 맑은 영혼 같은 것들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번 윤석열의 쿠데타와 재판 과정을 보면서, 백일(白日)하에 드러난 그들의 민낯을 보면서 민망함을 금할 수 없다. 뭘 주장하고 뭘 잘했다고 우기는 것인가. 정말 국민들을 개-돼지로 아는가. “그쯤 해 먹었으면 이제 ‘애국심’과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가질 때가 됐다.

만고풍상을 겪은 정치 풍운아 김종필의 진단이 정확했다는 것을 거듭거듭 확인하게 된다. “정치는 허업(虛業)이고 정치인은 인간 말자(末子)들이다”

하는 짓들이 똑같다. 윤상현, 권성동, 권영세, 나모, 이모 등등. ‘윤석열 내란옹호 기억연대’ 같은 시민단체라도 생겨 그들을 심판하고 나선다면 어떡할 것인가. 다음 선거에서도 또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달라고 표를 호소하고 얼굴을 내밀 수 있을까.

유수한 대학을 나오고 나름 ‘불의 고리’를 통과해 공-관직에 몸담고 사회 엘리트로 자처해 온 사람들이 60-70을 넘은 나이에 무얼 더 파먹겠다고 양심을 팔고 불의를 옹호하는지, 그들의 피폐해진, 불쌍한 영혼이 보는 이들을 절망시키고 있다.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다. 돈 많고 여유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다. 소신을 갖고 ‘바른’ 소리, ‘옳은’ 행동을 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던가. 한 국가의 엘리트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개돼지는 이제 국민이 아니라 떵떵거리는 정치인 나부랭이 자신들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공과 사, 의와 불의를 엄격히 구분하고 개인이나 가문의 명예를 목숨처럼 여겼던 옛 선비들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주나라 무왕의 은나라 침탈을 비판하며 산속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먹고 살다 죽었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더 이상 없는 것인가.

궤변에, 아전인수에, 곡학에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 쳐들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혀를 차게한다. “개돼지들은 내가, 우리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는 것인가? 양심이 있다면, 우선 자식들, 손주들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은 정말 상대 못할 인간들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라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국가의 근간으로, 진영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어떤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행동인가?”를 고민하고 고민할 때다. 그리고 의연하게 ‘정도’를 택해야 한다. 바르게, 옳게 가는 길에 있는 작은 걸림돌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영삼이 그토록 외쳤던 ‘대도무문’(大道無門)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국회는 ‘엘리트’들의 전당이 돼야 한다. 다음 총선에서는 영혼(에스프리) 없는 ‘이리떼’가 민의의 전당에 들끓지 않도록 국민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국회에 ‘백골단’까지 끌어들이는 국회의원들의 진상 짓, 이건 정말 아니다. 역사에 남을 또 다른 ‘내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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