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 담화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0년 이후 45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로 국회가 잇단 탄핵 시도와 예산 삭감 행위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했다. 국회가 190명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자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에 해제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선언하면서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윤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압도적 과반 의석(192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왜 정치적 자해에 가까운 비상계엄을 무리하게 선포했는지 의문이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무엇을 위한 비상계엄이었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킬 것”이라며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은)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야당의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 감액 예산안 일방 상정 등 헌정 사상 초유의 폭주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심야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반헌법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한변협이 “지금의 상황이 헌법이 말하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인지 말로서 대통령을 반박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지금이 계엄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상황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태다.
둘째, 계엄의 요건은 갖추었는가?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계엄법 제2조 제2항에선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명시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통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쳤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약 국무회의를 열지 않고 계엄을 선포했다면 계엄 선포의 법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셋째, 계엄의 정치적 파장은?
민주당은 4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사퇴하지 않으면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대통령의 탈당과 국무위원 전원 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체 없는 해임을 윤 대통령에게 요구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상태다.
윤 대통령의 정상적인 대통령직 수행이 불가능할 거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향후 한국 정치는 대혼돈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 하야, 탈당 등을 둘러싼 엄청난 극단과 대결의 정치가 엄습할 것이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을 향한 ‘탄핵 열차’ 가동은 이제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의 이례적인 (계엄) 선포는 많은 한국 국민을 분노하게 했으며, 1980년대 후반 한국이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전에 한국에서의 군사적 통치 방식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명령은 겨우 6시간 정도 지속됐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민주주의로 알려진 한국에서 이것은 광범위한 파장(wide-reaching ramifications)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소중한 동맹국 중 하나(한국)에서 정치적 혼란을 초래했으며, 평화적인 반대를 억압하고 경찰국가를 만들었던 전후 독재정권(dictatorial regime)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면서 “그러나 윤 대통령의 책략(ploy)은 긴박한 밤사이에 역효과를 낳았다”고 전했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국내에서 (정치적) 생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며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한 대통령에 대한 거리 시위 확산이 윤 대통령의 종말(demise)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 현재의 정치적 혼란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국 민주당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은 “이번 계엄령 선포 방식은 국민의 통치라는 근본적 기반을 약화하고 국민이 안보와 안정을 누려야 할 시기에 한국의 취약성을 극적으로 증가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주의에는 항상 도전이 발생한다”며 “그러나 이는 반드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주는 큰 울림이다.
미국에선 계엄 사태로 한미 동맹이 시험대에 올랐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전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예상치 못한 도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미국 CSIS가 지적한 것처럼 “북한이 대한민국의 혼란을 악용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도발 가능성을 예상했다. 싸우고 투쟁하더라도 국가 안보엔 여야가 없어야 한다.
계엄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경제 관련 부처는 실물 경제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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