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억 공모 CB 납입일 7일→14일→29일 두 차례 연기
사채발행 결정으로 주가 20만5000원→15만7400원 급락
청약참여시 즉각 평가손실 33%...“매도물량 해소 못 해...지금도 거품”
“전환가 하향 발행시 전환물량 더 늘어”...주가희석·오버행 부담 급증

엔켐의 2500억원 규모 14회차 공모 전환사채(CB) 발행 일정이 지속 연기되고 있다. 막대한 규모의 사채발행 소식에 오버행(잠재적으로 매도가능성이 높은 주식물량의 급증)을 우려하는 기존 주주들의 이탈로 주가가 급락하면서다. 엔켐의 현 주가가 CB의 전환가를 하회함에 따라 공모 청약시 평가손실이 확실시 되는 만큼, 기존 전환가로 공모일정을 강행하기 어려워진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당장 시장의 반응이 사채 발행에 부정적인 가운데, 회사가 전환가를 하향 조정하기도 쉽지 않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환가를 낮춰 같은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려면 훨씬 많은 잠재적 전환물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엔켐은 권면 2500억원 규모 14회차 CB의 발행일을 기존 11월 14일에서 11월 29일로 연기했다. 이는 앞서 이달 7일에서 14일로 한차례 납입일정을 연기한 이후 두번째 일정 조정에 해당한다.

막대한 규모의 사채발행 소식에 회사의 주가가 지속 하락하면서, 일반 투자자들의 청약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회차 CB발행 소식이 최초로 공시된 지난 10월 14일 회사 주가는 20만5000원 수준이었으나, 이후 지속 하락해 이날 종가 기준 무려 33.2%나 떨어진 15만74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처럼 CB발행 결정 이후 주가가 급락한 데에는 오버행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반영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매도차익 실현에 적극적인 일반투자자들이 막대한 규모의 사채를 손에 쥐는 만큼, 향후 쏟아질 매도물량에 의한 주가부담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엔켐은 기발행 11~13회차 CB의 미전환 물량 규모가 권면 758억원에 달한다. 신규 사채 2500억원이 추가로 발행될 경우 권면 3258억원의 전환대기 물량이 누적되는 셈이다. 주식전환시 2078만6924주(총주식수 대비 11.13%)가 발생할 수 있으며, 리픽싱(시가하락을 반영한 전환가액 조정)이 이뤄질 경우 전환물량 규모가 급증할 수도 있다.

아울러 기존 11~13회차 CB의 전환가액이 6만~7만원대 수준으로 막대한 차익이 예상되는 만큼, 재무적투자자(FI)의 차익실현시 단기간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업계에서는 엔켐이 막대한 차익실현물량을 쌓여두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외부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 일반공모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엔켐의 현 주가는 매도대기물량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거품이 끼어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가보다 높은 전환가로 CB 공모에 참여할 경우 납입일부터 즉각적인 평가손실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주가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되는 2년 후까지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없어 돈을 물리게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회사의 시가는 발행예정 CB의 전환가 20만4500원대비 33%가량 낮은 상태다. 현재 시가 기준 투자 즉시 상응하는 33% 수준의 평가손실을 보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당장 엔켐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가운데, 전환가액을 조정해 발행을 강행할 경우 시가에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환가액을 낮추는 만큼 전환에 따라 발생하는 주식수가 증가하는데, 이는 주가희석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버행 부담도 증가시키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엔켐의 자금조달 전략이 성공하기 어려워졌다”며 "CB는 기본적으로 주가상승에 베팅하는 투자 방식인데, 주가 전망이 그만큼 비관적이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차라리 높은 수준의 금리수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채발행에 나섰다면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2년간 저금리로 돈을 빌려줄 소위 ‘호랑이 입에 머리를 집어넣을’ 투자자가 운좋게 걸려들기를 바라야하는 양상이 됐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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