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후 지주사·계열사 주식 지속 매입
사망 6개월 전까지 매입, 의절한 아들에 대한 배려일 수도
효성그룹의 고 조석래 명예회장이 유언장을 통해 형제간의 화해를 당부했다. 조 명예회장은 지난해 대형 로펌 변호사의 입회하에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에는 “부모 형제의 인연은 천륜”이라며 “형은 형이고 동생은 동생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형제간 우애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에게 유류분을 웃도는 재산을 물려주도록 했다.
그러나 세 아들의 화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유언장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확인과 검토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상속문제를 통해 형제들과 법정 공방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효성가(家) 3형제는 2014년, 2017년에 이어 세 번째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된다. 소위 ‘3차 형제의 난’이 되는 셈이다.
◆ 효성가(家) 차남 2014년 이후 10년 동안 의절
2014년 조 전 부사장이 자신의 형인 조현준 회장과 주요 임원들을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하면서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과의 부자간 사이가 틀어졌다. 이때가 1차 형제의 난이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이 아버지를 문전박대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조 전 부사장은 문전박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2014년 7월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와 50분간 대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밝힌 대화 내용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는 아니었다. 조 전 부사장은 아버지가 불법·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진실을 알고 있는 자신을 겁박해 입막음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조 명예회장과 차남 조 전 부사장은 10년 가까이 의절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죽음을 앞에 두고 형제간의 우애를 걱정했고, 집안 전체를 상대로 분란을 일으킨 차남에게 재산상의 배려도 잊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와 의절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었다.
재계에서는 조 명예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에 차남을 배려했던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의절한 아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명예회장의 재산 상황을 보면 그런 의중이 읽힌다는 것이다.
조 명예회장은 2022년부터 계열사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지주사 ㈜효성은 물론 효성중공업과 효성티앤씨, 효성첨단소재, 효성화학 등 주요 계열사의 주식을 매입했다. 죽음을 불과 6개월 앞둔 작년 10월까지 주식 매입을 그치지 않았다. 2022년 이후 사들인 주식이 130억원에 이른다.
당시 주가 부양을 위한 것이라거나, 혹시 첫째와 셋째 아들 간에 경영권 분쟁이 생기면 조정자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또 일부에서는 비록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줬지만, 완전히 손을 뗀 건 아니라는 신호를 그룹 안팎에 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 주식으로 재산 확실히…차남에 대한 배려 일수도
그러나 조 명예회장의 유언장 내용이 알려지면서 차남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주식을 매입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재벌의 사후, 상속 재산을 숨기는 것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고 또 조 명예회장이 주식 매입에 사용한 돈, 130억원은 전체 상속가액(7000억원으로 추정)에 비하면 그리 큰돈은 아니다. 따라서 사망 전 주식 매입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효성가(家)는 경우가 다르다. 차남이 집안 전체와 반목했던 만큼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주도적으로 밝히는 것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주식으로 남긴 재산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의절했던 차남이지만 반목하는 형제 사이에서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또 조금이라도 확실한 재산을 더 남겨서 차남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추측은 소설일 수도 있다. 진심은 조 명예회장과 함께 묻혔을 것이다. 다만 10년을 의절한 아들을 걱정하는 유언장을 보면 부정(父情)의 애틋함은 재벌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