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영업실적에서 라면 업계 1위 달성
배고픔 벗어나기 위해 시작된 라면
이제는 영혼의 고픔 달래주는 ‘소울 푸드’

삼양식품 본사 전경.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 본사 전경. 사진=삼양식품

한국 라면의 나이는 지금이 환갑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우리 식탁에 삼양라면이 등장한 것이 1963년 9월 15일이었다.

‘국민이 배를 곯는 일을 없애야 한다’ ‘경제를 일으켜 보자’는 일념에서 기업인과 선한 일본인, 그리고 당시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것이 라면이다. 그러나 이후 삼양라면은 부침을 겪으며 망하기 일보 직전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 삼양라면이 환갑을 맞아, 라면 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삼양식품 1분기 영업실적이 증권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스프라이즈’를 기록했다. 17일에는 증권시장이 열리자마자 상한가로 직행했다. 몇 일째 엎치락뒤치락하던 농심과의 ‘라면 기업 시가 총액 1위’ 자리도 여유롭게 따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 전중윤·오쿠이 기스요미·김종필, 라면을 있게 한 사람들

우리나라에 라면을 들여온 사람은 삼양식품의 창업주 고 전중윤 회장이다. 동방생명(현재 삼성생명), 제일생명 사장을 지내며 보험업계에서 잘 나가던 전 회장은 1961년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군이 먹고 남긴 잔반으로 끓인 꿀꿀이 죽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는 일본 출장에서 맛봤던 라면을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후일 회고했다.

전 회장은 일본에서 기술과 기계를 들여오려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창시한 안도 모모후쿠가 운영하는 닛신식품을 비롯해 여러 회사를 찾아가 기술판매를 제의했으나 모두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리고 낙담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닛신식품의 라이벌이었던 묘조식품(明星)이다.

묘조식품의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은 라면 사업을 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전 회장은 꿀꿀이 죽을 먹는 동포들이 배를 곯지 않게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오쿠이 사장은 일본이 6.25 전쟁으로 일어섰다면서 이를 갚기 위해서라도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기술 전수에 대한 수수료나 로열티도 없었고 오직 제면기와 튀김기 등 기계만 실비에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재를 털어 마련한 자금으로 일본에서 기계를 구입하려면 달러로 바꿔야만 했지만, 당시 그런 거금을 달러로 바꿀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당대의 최고 실세였던 김종필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다. 국민이 배를 곯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해 마침내 5만 달러의 거금을 확보하고 기계 장비를 들여와, 라면 생산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무게 100g, 가격 10원의 라면이 우리 식탁에 등장한 것이다. 커피가 35원, 담배가 25원이던 시절, 끓이기 쉽고 국물도 넉넉한 10원짜리 라면이 우리 국민의 식생활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경제는 매년 300석 이상의 쌀이 부족했고 정부가 혼식, 분식을 장려했다. 이후 다른 라면 업체들이 등장했지만, 삼양라면은 시장 점유율 70%에 육박하는 ‘라면 대장’이었다.

◆ 농심의 등장, 그리고 ‘공업용 소기름 파동’이라는 청천벽력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삼양라면의 위세가 불안해진 것은 1975년 농심라면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농심라면이 광고를 쏟아부으며 따라붙었다.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을 앞세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농심의 CM송 TV광고도 그때 등장했다. 그 결과 80년대 들어서는 농심이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삼양라면은 원조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삼양라면이 결정타를 맞고 추락한 계기가 된 것이 1989년 불거진 ‘공업용 소기름 파동’이다. 1989년 11월 검찰에 한 장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삼양라면이 사용하는 소기름이 ‘공업용 소기름’이라는 게 골자였다. 수사가 시작됐고 삼양라면은 끝없는 추락을 맞게 된다. 삼양라면이 사용하던 소기름은 해외에서도 문제없이 사용하는 정제된 소기름이라는 진실은 묻혀버렸다.

당시 100억원어치에 달하는 라면이 폐기됐고, 전체 직원의 4분의 1에 달하는 10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 5년 넘게 끈 재판은 1995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이미 허물어진 영업 기반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여기에다가 뒤이어 닥친 외환위기도 삼양라면에 치명타를 안겨줬다.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1998년부터 7년간 화의 절차를 밟기도 했다.

◆ 행운도 따랐고, 설비도 적기에 늘려 실적 호전 달성

이렇게 잊혀질 것 같던 삼양라면이 반전의 기회를 잡게 한 것이 바로 2012년에 출시된 ‘불닭볶음면’이다. 출시 당시 매운맛으로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짧게 유행하고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불닭볶음면. 사진=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사진=삼양식품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행운이 뒤따랐다. 2014년 ‘영국남자’라는 유튜버가 ‘불닭볶음면’을 먹는 챌린지를 유튜브에 올린 것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다가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라이브 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을 공개한 것이 관심을 폭발시켰다. 또 최근에는 유명 래퍼 카디비가 자신의 SNS 계정에 ‘불닭볶음면을 사기 위해 30분이나 운전했다“는 동영상을 올린 것도 행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행운만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2400억원을 투입해 경남 밀양에 새 공장을 건설한 것이 불닭볶음면의 인기에 올라타 실적을 호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해외 수요에 맞춰 충분히 물량을 공급하면서 1분기에만 해외 매출로 2889억 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작년 1분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운(運)7기(技)3’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만드는 사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라면 얘기는 차고 넘친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먹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라면은 어떻게 조리하는지 등등 또 캠핑장 라면, 운동장 라면 등 개인적인 경험까지 보태면 라면 얘기로도 밤을 새울 수가 있을 정도다.

그 가운데 백미는 ‘라면 먹고 갈래?’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고백하는 매개체로 등장한 라면. 한국인이 아니라면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라면은 우리 생황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게 분명하다.

길지 않은 해외여행이라도 귀국 비행기에서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라면이라는 얘기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라면이 영혼의 고픔도 해결하는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삼양라면의 화려한 복귀를 계기로 우리 라면 업계의 경쟁이 더욱 활성화해 맛있고 좋은 라면이 쏟아지길 기대해 본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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