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노사갈등, 외부 사법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한 것?
‘삼성 위기’의 진원지는 ‘리더십의 문제’ 가능성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의 주 6일 근무가 확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내 일부 임원들이 해왔던 주 6일 근무에 삼성전기, 삼성 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다른 계열사 임원들도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임원의 주말 근무를 굳이 공론화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임원들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을 폄훼할 이유는 없지만, 삼성 위기의 진짜 원인과는 동떨어진 해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 임원의 주6일 근무는 새로울 것 없는 일상
기업의 임원은 월급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대기업 신입사원 100명 가운데 1명만이 도달할 수 있는 ‘꿈의 자리’이고 직장인의 ‘별’에 해당한다. 임원이 되면 신분 상승을 느낄 만큼 월급에서부터 차량, 법인카드, 건강검진, 출장 시 비행기 좌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바뀐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우선 주 52시간 근무는 아예 적용대상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것은 물론 휴일 관련 규정도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잘리더라도 하소연조차 못 한다. 그래서 임원은 ‘임시직원’이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회사실적이 악화하거나 맡은 부서의 성과가 좋지 않으면 주 6일이 아니라 주 7일 근무도 불사해야 한다. 삼성만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러니 ‘초격차’, ‘1등 주의’를 부르짖던 삼성이 HBM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사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영업이익이 2022년 43조원에서 2023년 6조5000억원으로 쪼그라든 상황에서 경각심을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다. 임원의 주 6일 근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하고, 또 이미 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공론화된 것에 의아해하는 시각이 있다.
◆ 임원 주6일 근무 공론화, 내우외환의 원군(援軍)을 얻기 위한 포석?
삼성전자는 실적 악화 이외에도 내우외환에 처해 있다. 안으로는 삼성전자 노조가 지난 17일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경기화성사업장에서 노조원 약 2000명이 참석해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쟁점은 임금인상률이다. 사측은 노조와 별개로 노사협의회에서 임금조정 협의를 통해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을 5.1%로 정했으나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6.5% 인상률을 요구하고 있다.
1969년 삼성전자 창사 이후 쟁의행위가 벌어진 적은 없었다. 2022년과 2023년에도 임금교섭이 결렬되자 노조가 조정신청을 거쳐 쟁의권을 확보했으나 실행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노조는 다음 달 24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쟁의행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 밖으로는 이재용 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다음 달 27일 시작된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당한 합병과 회계 부정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은 1심에서는 19개 혐의 모두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당시 3년 5개월이나 끌었던 1심 판결이 무죄로 결론 나자, 일부에서는 엄중한 글로벌경제의 현실을 감안해서라도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임원의 주 6일 근무를 공론화한 것도 글로벌경제는 물론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삼성전자가 어려운 상황임을 강조해서 사태 진전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얻고자 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 경쟁 판도 바꿀 M&A는 감감 무소식
삼성 임원의 주 6일 근무를 바라보는 시각이 우호적이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위기의 본질’에서 벗어난 해법이기 때문이다. 삼성 위기의 진원지는 반도체다. 그런데 삼성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는 경기 부침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 보통이다. 수십조 원의 이익을 냈다가도 적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따라서 단순한 실적 악화가 삼성 위기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의 위기는 파운드리 부문에서 대만 TSMC를 따라잡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메모리 부문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의 선두를 경쟁사에 빼앗긴 데 있다. 이는 미래 사업에 대한 통찰력의 상실, 리더십의 부재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경쟁 판도를 일거에 바꿀 수 있는 대형 M&A는 감감무소식이다. 또 HBM 반도체도 추월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아직은 말에 그치고 있다. 이것 모두 리더십과 관련된 부문들이다.
그래서 삼성의 안팎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전면에 나서야 하고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조직을 만들어 이 회장을 보좌해야 한다는 충고가 나오고 있지만,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이제라도 이재용 회장은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삼성을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 이병철 창업 회장이나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했던 것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이재용 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임원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