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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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분쟁이 대한민국 게임업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개중에서도 특히 국내 주요 게임사를 일컫는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중 두 곳인 넥슨·엔씨소프트가 신흥 게임사 2K(카카오게임즈·크래프톤)와 직간접적인 대립각을 세운 양상이다.

2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최근 카카오게임즈와 레드랩게임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협력한 신작 ‘롬(ROM)’이 자사 ‘리니지W’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는 이유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MMORPG 장르가 갖는 공통적·일반적 특성을 벗어나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엔씨소프트의 지식재산권(IP)을 무단 도용하고 표절한 것이라 판단했다”라면서 “이번 법적 대응은 엔씨소프트가 소유한 IP 보호를 넘어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일자 개발사인 레드랩게임즈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신현근 레드랩게임즈 대표는 “엔씨소프트가 주장하는 저작권 침해 부분은 오랫동안 전 세계 게임에서 사용해온 통상적 게임의 디자인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라면서 “롬의 부분적 이미지들을 짜깁기해 전체적으로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 대표는 오는 27일로 예정된 ‘롬’ 정식 출시를 앞두고 엔씨소프트가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정식 서비스를 방해하고 이용자들의 심리적 위축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에서 진행된 행위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엄중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맞불을 놓았다.

엔씨소프트는 레드랩게임즈 ‘롬’의 게임 콘셉트, 주요 콘텐츠, 아트, UI, 연출 등에서 ‘리니지W’의 종합적 시스템을 무단 도용한 것을 확인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왼쪽이 엔씨소프트 ‘리니지W,’ 오른쪽은 레드랩게임즈 ‘롬’. 사진=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레드랩게임즈 ‘롬’의 게임 콘셉트, 주요 콘텐츠, 아트, UI, 연출 등에서 ‘리니지W’의 종합적 시스템을 무단 도용한 것을 확인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왼쪽이 엔씨소프트 ‘리니지W,’ 오른쪽은 레드랩게임즈 ‘롬’. 사진=엔씨소프트
반면 레드랩게임즈는  논란이 되는 요소들은 유사 장르 게임들에서 통용돼온 대중적인 시스템일 뿐, 특정 타이틀을 모방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사진=레드랩게임즈
반면 레드랩게임즈는 논란이 되는 요소들은 유사 장르 게임들에서 통용돼온 대중적인 시스템일 뿐, 특정 타이틀을 모방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사진=레드랩게임즈

빨라지는 엔씨소프트의 법적 대응
카카오게임즈와의 소송戰 2라운드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의 소송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엔씨소프트는 작년 4월에도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한 ‘아키에이지 워’에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자사 게임 ‘리니지2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다수 모방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는 “엔씨소프트의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 주장은 동종 장르의 게임에 일반적으로 사용돼온 게임 내 요소 및 배치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레드랩게임즈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는 요소들은 유사 장르 게임들에서 통용돼온 대중적인 시스템일 뿐이지 특정 타이틀을 모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키에이지 워’와 비교할 때 이번 ‘롬’의 경우에서 엔씨소프트의 행보는 훨씬 빨라졌다. ‘아키에이지 워’에 대해서는 출시 다음 달 소송을 제기했으나, ‘롬’의 경우 정식 출시되기 이전부터 베타 테스트 등에서 사전 공개된 정보들을 근거 삼아 민사소송을 걸고 나선 것이다. 

소위 ‘리니지라이크’ 중에서도 특히 유사성이 심한 게임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 엔씨소프트의 원칙. 업계에서는 동종 장르 게임들이 잇따라 출시되며 ‘리니지’ IP의 생명력도 타격을 입자, 엔씨소프트의 보폭도 한층 빨라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거나 출시를 앞둔 MMORPG들이 유사 정도에 따라 줄소송 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작년 8월 전해진 1심 승소 소식은 엔씨소프트의 이 같은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엔씨소프트는 웹젠 ‘R2M’이 자사 ‘리니지M’을 표절했다며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는데, 당시 재판부는 “이와 같은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게임업계에서 굳이 힘들여 새로운 게임 규칙의 조합 등을 고안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스타 2023 참관객들이 크래프톤 부스에서 다크앤다커 모바일을 시연하고 있다.
지스타 2023 참관객들이 크래프톤 부스에서 다크앤다커 모바일을 시연하고 있다.

넥슨-아이언메이스 법적 분쟁
크래프톤이 발을 담근 이유는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처럼 서로 칼을 맞대고 있진 않지만, 그에 필적할 정도로 불편한 관계에 놓인 두 게임사가 있다. 바로 넥슨과 크래프톤이다. 양사 사이에는 아이언메이스가 개발한 게임 ‘다크 앤 다커’가 있다.

중세 판타지 배경의 ‘다크 앤 다커’는 배틀로얄의 생존과 던전 크롤러의 탐험 요소를 살린 PC 익스트랙션 RPG다. 작년 2월 진행된 테스트 기간 스팀 동시 접속자 10만명을 돌파하는 등 글로벌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아이언메이스에 소속된 넥슨 전 직원들이 ‘넥슨의 미출시 프로젝트 애셋을 반출·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넥슨은 아이언메이스 관계자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현재 관련 법적 공방이 진행 중인 가운데, 넥슨과 아이언메이스가 상호 제기한 가처분은 지난 1월 쌍방 기각됐다.

업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해당 사안에 기름을 부은 건 크래프톤의 가세였다. 크래프톤은 작년 8월 ‘다크 앤 다커’ IP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산하 독립 스튜디오인 블루홀스튜디오가 자체 개발 중인 신규 모바일 게임에 ‘다크 앤 다커’ IP를 입히기로 한 것. 그렇게 개발된 ‘다크 앤 다커 모바일’은 올 상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크래프톤 측은 “국내외 유사한 게임들에 자리를 내어 줄 수 있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원작 IP의 활용과 확장에 대한 협의를 추진했다”라고 밝혔다. ‘다크 앤 다커’ 유사 게임들이 범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산 IP의 생명력을 불어주겠다는 게 크래프톤의 취지다. 다만 이 같은 크래프톤의 주장은 넥슨을 포함한 업계 전반의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기엔 불충분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창립자, 박용현 넥슨게임즈 대표. 사진=엔씨소프트 및 각사 유튜브 채널 캡처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창립자, 박용현 넥슨게임즈 대표. 사진=엔씨소프트 및 각사 유튜브 채널 캡처

게임업계에 뿌리내린 2N의 사람들
이렇게 재회할 줄 그들은 알았을까

‘터줏대감’ 2N을 거친 인재들이 오늘날 게임업계 곳곳에 뿌리내린 만큼, 해당 사안들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히고설키는 모양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됐다’라는 다소 뻔한 레퍼토리지만, 일련의 법적 분쟁에 보다 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키에이지 워’ 개발사이자 카카오게임즈 자회사인 엑스엘게임즈의 송재경 창립자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함께 ‘리니지’를 개발하며 ‘리니지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피조물인 ‘리니지’를 모방했다는 이유로 옛 동료와 법원에서 다투게 됐다. ‘롬’을 개발한 신현근 레드랩게임즈 대표 역시 한때 엔씨소프트 자회사였던 엔트리브소프트에 재직했다.

박용현 넥슨게임즈(넥슨의 개발 자회사) 대표는 해당 사태에 있어서 제3자의 입장이지만, 업계의 법적 분쟁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복합적인 위치에 놓여있는 인물이다. 넥슨-아이언메이스 소송전과 ‘닮은 꼴’이라고 평가받는 엔씨소프트와 블루홀스튜디오(크래프톤의 전신) 소송전의 중심에 있었던 게 바로 박용현 대표였기 때문이다.

2007년 ‘리니지3’ 개발을 이끌던 박용현 당시 엔씨소프트 개발실장은 퇴사 후 장병규 현 크래프톤 의장 등과 블루홀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되는데, 엔씨소프트는 이 과정에서 ‘리니지3 영업 기밀이 유출됐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시작된 양사 간의 법적 다툼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나 2014년이 돼서야 매듭이 지어졌다.

블루홀스튜디오를 떠난 박 대표는 넥슨게임즈의 전신인 넷게임즈를 설립했으며, 회사는 ‘블루 아카이브’ 등 유수의 게임들을 흥행시키며 오늘날 넥슨 그룹의 핵심 개발사로 자리 잡았다. 박 대표 입장에선 과거 본인 사례에서 정반대 입장에 모회사(넥슨)가 처해있으며, 당시 그가 속했던 블루홀스튜디오(현 크래프톤)는 상대방(아이언메이스)의 우군으로 선 셈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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