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복인 사장 임기 내 선임된 사추위 지적
도전 기회 부여했다지만 넘어야할 문턱 높아
“사추위 쇄신하고 선임 과정 투명하게 공개해야”

KT&G가 9년 만에 새로운 대표 선출을 앞둔 가운데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KT&G 본관 건물. 사진=연합뉴스.
KT&G가 9년 만에 새로운 대표 선출을 앞둔 가운데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KT&G 본관 건물. 사진=연합뉴스.

올해 KT&G 사장 인선 절차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사장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외부에도 부여했고, 실제로 1차 숏리스트 8명에 절반이 사외 후보로 채워졌다. 하지만 ‘척’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후보를 판단하는 사추위가 ‘절대권력’을 누렸던 백복인의 사람들인데다, 외부에 문을 개방했다고 하지만, 그 문턱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KT&G 지배구조위원회는 지난달 말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1차 숏리스트) 8명을 확정해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 추천했다. 사내 후보자 4명, 사외 후보자 4명 등이다.

사추위는 이들 8인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심사를 진행해 이달 중순 후보자를 3~4명 안팎으로 압축한 2차 숏리스트를 확정하고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최종 후보자는 2월 말 확정될 것으로 보이며, 사장 선임은 3월 말 정기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KT&G 사장 후보에 ‘외부’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15년 사장 후보 공모 이후 9년만이다. 2015년 공채 출신의 백복인 사장이 수장에 오른 이후 KT&G는 사실상 내부 인사들에게만 도전 기회를 부여해왔다.

실제로 KT&G는 2018년 1월 말 사장 공모 서류 접수를 단 이틀 동안 진행, 하루 만에 심사를 마치고, 하루 면접을 통해 백복인 사장을 단독 후보로 추대했다. 2연임에 성공한 백복인 사장은 2021년 더 간소해진 사장 인선 절차를 통해 3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사추위는 모집공고 자체를 없앴다. 백 사장을 단독 후보로 추대하며 ‘레드카펫’을 깔았다. 외부 비판에 대해서는 “기관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청취 절차와, 철저한 서류심사,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외부 공모 방식을 선택하며, KT&G 출신이 아닌 인사들도 사장에 도전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현재 KT&G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KT&G는 백 사장 용퇴 결정 이후 각종 논란이 터지면서 전례없이 흔들리고 있다. 사외이사의 외유성 출장 논란을 비롯해 규제 무마를 위한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독립성이 약한 거버넌스(관리체계) 등 이사진 관련 논란이 대표적이다.

KT&G 사외이사들은 2012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일주일 가량 일정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이들에게 비즈니스석 항공권과 고급 호텔 숙박료를 지원하고 별도 식대·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하루 500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외이사 중 일부가 출장지에서 업무와 무관한 유람선 관광을 하거나 배우자를 데려가는 등 외유성 일정을 소화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KT&G가 2017년에 일부 직원들을 동원해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당시 정치권에서 담배 관련 규제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KT&G가 선제적으로 조치에 나선 것이다. 게다가 KT&G가 조직적으로 쪼개기 후원에 나서면서 직원들에게 지시한 메시지, 후원금 내역 등이 담긴 내부 문건 등이 폭로되기도 했다.

문제는 KT&G 사추위가 사외이사 6인 전원이 참여해 이들만으로 꾸려졌다는 점이다.

KT&G 사외이사는 임민규 전 SK머티리얼즈 사장(이사회 의장), 김명철 스페이스 엔터테인먼트 엔터프라이즈(SEE) 고문, 백종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고윤성 한국외대 경영대학 교수, 손관수 한국자동차경주협회장, 이지희 더블유캠프 대표 등 6인이다. 이들 모두 백 사장 재임 기간인 2018~2021년 선임됐다. 용퇴 의사를 밝힌 백 사장의 영향력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KT&G의 지분 약 1%를 소유한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도 사장 선임 절차와 이사진의 감시 감독이 소홀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FCP는 “지배구조위원회-사장후보추천위원회-이사회가 백 사장 임기 내 선임된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실상 동일한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사장 지원 자격 또한 내부 인사에 유리한 구조다. KT&G가 요구한 자격은 ‘담배 또는 소비재 산업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영 전문성’이다.

국내 담배사업자는 KT&G를 비롯해 필립모리스, BAT코리아, JTI코리아 등이다. 경쟁사 출신이 KT&G 사장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를 충족하는 인사는 사실상 KT&G 내부 인사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담배 산업에 이해도가 전혀 없는, 오로지 백복인 사장 거수기 역할만을 해온 사외이사진이 차기 후보를 선정하고 있다”며 “외부에 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놓은 보여주기식 절차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번에도 내부 후보가 사장 자리에 오른다면 세습 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공정성 논란이 있는 사추위 인사들을 쇄신하고 사장 선임의 모든 과정을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KT&G 관계자는 “일부 주주의 ‘사외이사 전원 백복인 사장 임기 내 선임’ 지적은 사외이사의 최대 재직기간(6년, 계열사 포함 9년) 제한에 따른 결과로, 모든 상장회사의 공통되며 일반적인 현상이다”라며, “일각의 주장과 같이 사장의 임기와 사외이사의 선임시기가 겹친다는 것만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문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차기 후보 선정과 관련해서는 “주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사장후보에 도전할 수 있도록 ‘완전 개방형 공모제’를 도입했으며, 더욱 공정한 자격 심사를 위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선 자문단’의 객관적 의견을 반영한 선정절차를 진행중이다”고 전하며, “주주 이익과 회사 미래가치를 극대화한다는 원칙하에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장 지원 자격과 관련해서는 “공개모집의 지원자격은 담배 또는 소비재 산업에서 종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기업의 대표이사 또는 이에 준하는 사업부의 손익관리에 종사한 사람으로, 자격요건을 담배 산업 종사자로만 제한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이에 다양한 배경의 사외 후보자들이 공개모집에 지원했으며, 공개모집 응모자 8명 전원을 롱리스트에 포함해 내‧외부 차별없는 공정한 심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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