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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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안을 놓고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이것이 막히면 이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까지 할 예정이다. 이에 대통령실은 민주당에 대해 “국정조사 의지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즉각 반발했다. 국민의힘도 이 장관을 파면하라는 요구에 반발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보이콧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이야 장관 임명 주체이자 원활한 국정운영을 명분으로 야당 공세에 반대를 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은 예산안 처리 등을 앞두고 집권여당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냥 윤석열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요즘 돌아가는 국민의힘을 보고 있으면 공당의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 역대 최악의 무능한 집권여당인 것 같다. 무엇보다 ‘윤석열’이라는 최고 권력 앞에서 115명의 의원들이 하나같이 납작 엎드려서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점이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의 ‘성격’이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당에 쫙 퍼져 있는 상태라 ‘한번 찍히면 죽는다’는 두려움이 의원들을 지배하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웬만한 충격과 압력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의원들은 ‘반항해봤자’ 못 이길 것 같으니 그들 나름대로 ‘권력 적응기’에 들어간 것이다. 더구나 2024년 총선까지 아직 먼 시간이 남아 있지만 그 전에 밉보여 좋을 게 없다는 ‘보신주의’도 팽배해 있다.

이렇게 여당 의원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것은 윤 대통령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통해 당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군림하려는 권위주의적 권력 운용에 자기들도 모르게 지배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에는 엄연히 지도부가 존재하고 그들이 대표자로서 대통령실과 소통하고 당을 이끈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공당 운영 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최근 하태경 의원은 1일 윤석열 대통령이 당 지도부에 앞서 권성동 장제원 의원 등 ‘윤핵관’들을 먼저 관저에 초대해 만찬을 한 데 대해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특히 하 의원은 “당을 공당으로 생각하고 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지도부를) 뒤에 불렀던 것은 당을 약간”이라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당 지도부를 ‘패싱’하고 자신과 ‘라면의 정’을 쌓은 일부 핵심 측근들과 관저에서 만남을 가지는 것은 당 전체에 ‘대통령의 사적 통로’가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당의 전략이 의총에서 의원들의 중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술자리에서 나온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유튜브 보수 스피커들의 말초적인 ‘아무말 대잔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알려지면 의원들도 모두 ‘윤핵관’이 되려고 안달복달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이런 ‘갈라치기 정치’는 당의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 시키고 의원들의 충성경쟁만 부추기게 된다. 지금 국민의힘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개인의 의견들이 밑에서 올라가 당 지도부가 그것을 취합해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윤핵관’과 일부 비선들에 의해 즉흥적이고, 다분히 윤 대통령의 ‘그날 기분’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당 지도부 ‘패싱’과 ‘윤핵관’ 관저 만찬이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초심자로서 바깥에서 그 비효율성을 누구보다 잘 지켜봐 왔다. 115명 모두를 설득하고 통합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무한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그런 노력과 수고를 하지 않으려 하거나 그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편한 사람 몇 명 불러서 오더를 내리고 그 소수가 의원들을 ‘무조건’ 끌고 가는 수직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당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파탄으로 끝이 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윤 대통령 못지 않게 이정현 전 의원 등 ‘박핵관’들을 앞세워 당을 좌지우지 하려 했지만 결과는 탄핵이었다. 무엇보다 토론과 타협으로 정당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고 그것이 대통령 국정운영에 반영되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함에도 윤 대통령의 현재 국정운영 통치행태를 보면 이는 요원한 과제다.

이렇게 공당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무너지다 보니 국회의원들은 ‘권력의 핵’을 향해 본능적으로 부나방의 날갯짓을 감행하게 된다.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지금’ 가장 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탐문하고 찾아내고 접근해서 ‘주종의 끈’으로 묶으려고 한다. 복종은 필수고 아부는 선택이다. 윤 대통령이 정치신인이면서 ‘라면의 정’을 나누는 기분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은 혹시나 윤 대통령이 술자리 도중에 자신에게 전화라도 걸어오면 허리를 숙여 받을 정도로 기뻐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렇게 국민의힘은 현재 ‘윤석열’이라는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공당의 존재가치는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통해 유능한 정치인을 발굴해내고 정책개발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국민의힘은 자기혁신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렸다. 그 단초는 윤석열 대통령에서부터 비롯됐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을 역임하면서 정치의 기본 시스템을 경험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의회정치를 연마해나가다 보면 대권에까지 도전하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9일 대선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었다. 이를 목도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한 명의 유능하고 리더십이 있는 대권주자를 키우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로또’ 하나만 잘 긁으면 된다는 ‘요행심’만 생겨났다. 하지만 그렇게 선택된 대통령이 집권 6개월만에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는 국민들이 지금 목도하고 있는 그대로다.

한번 ‘시행착오’를 겪어가고 있음에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그 관성과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흘러나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 ‘당 대표 차출설’은 국민의힘이 자기혁신을 통해 정치인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운’과 ‘인기투표’에 의해 또 다른 로또를 긁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3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전당대회 차출 가능성에 대해 “이르지만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장관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충돌하면서 안정감, 명쾌한 논리, 이러다 보니까 무게를 가지는 것 같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1위까지 나오는 수준”이라며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차기 총선 (출마)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덧붙였다.

물론 한동훈 장관이 여론조사 지표 상 여권 내 대권주자 선두권에 속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역대 장관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전투력이 강하다는 평가도 있다. 한동훈 장관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더탐사’를 박정희 군부정권 시절의 ‘정치 깡패’로 소환한 점을 두고 김재원 의원은 ‘정치를 잘한다’고 칭찬을 할 정도다. 강남 8학군 출신 모범생에 술 한잔 입에 대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범법자들을 경멸하는 ‘정의의 투사’ 이미지에 유려한 언변까지 더해져 일부에서 ‘한동훈 신드롬’이 퍼져나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인상비평’만으로 한동훈 장관에게 대표 자리마저 떠안기려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존심도 배짱도 책임감도 없는 것일까.

물론 ‘비 여의도 출신’인 한동훈 장관도 당연히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될 수 있고 또 차기 대권주자도 될 수 있다. 한동훈 장관의 ‘가능성’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동훈 장관이 보여준 ‘정치적 퍼포먼스’를 보면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그는 ‘적’을 때려잡는 데 최적화 되어 있는 ‘엘리트 순사’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 말싸움에서는 절대 지지 않겠지만 그 ‘호승심’은 상대에게 굴욕감과 적개심만 끓어오르게 할 뿐이다. 지금 정치에서 그런 인물은 한 명이면 족하다. 무엇보다 상대를 인정하고 설득하고 타협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그 지난한 과정을 ‘정치’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물이 리더가 돼야 한다. 국민의힘도 ‘윤석열의 왕놀이’가 아니라 의원들의 공론을 통해, 말이 아니라 ‘철학’이 반듯한 사람을 대표로 내세워야 한다. 한동훈은 과연 그 답에 적합한 인물일까.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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