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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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 최측근들의 잇따른 구속으로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대응 선택지는 두 가지로 모아진다. 당력을 전부 결집해 장외투쟁을 불사한 총력전을 벌이느냐, 아니면 투쟁과 민생 챙기기를 병행하는 투 트랙 ‘우회 전략’으로 대응하느냐다. 일단 이 대표는 ‘간접 대응’으로 기조를 잡았다.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이 대표가 일일이 지적하다 보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더 부각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당내 기류와 중도층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당내에서는 ‘단일 대오’ 공감대가 형성돼 있긴 하지만 그 ‘결착력’이 이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에서 77.77%로 당선되었을 당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소환과 구속영장 청구, 그리고 체포동의안 처리를 일사천리로 밀어붙일 경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추진 등으로 조성된 정국 주도권이 한 순간에 여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당 일각에서 ‘당 전체가 떠내려가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지속적으로 분출된다면 이 대표도 무조건 당을 방패막이 삼을 수도 없게 된다.

또한 당내에서는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대표의 운신의 폭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아직까지는 “비명계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당의 혼란을 자신들의 계파 확장 기회로 악용한다면 당심의 큰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비판적 기류가 대세이긴 하지만 중도층 지지율이 빠지는 등 여론이 악화 되면 ‘이재명 사수’ 분위기에도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낙연 복귀’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 설훈, 윤영찬 의원 등이 다음달 말께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낙연 전 대표를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그 시기와 ‘방문 이유’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설훈 의원은 지난 8월 당 대표 경선 당시 “이재명 대표가 당권을 쥘 경우 당 전체가 ‘사법 리스크’에 휘말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대표의 당권 도전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런 설 의원이 미국에 있는 이낙연 전 대표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재명 낙마’를 전제로 한 ‘이낙연 조기 복귀설’이 퍼져나갔다.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설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최소 3월 이후, 그때 지나야 올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낙연 전 대표의 복귀설은 아직은 설익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이재명 대표의 당내 입지가 불안정해져 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징표로 읽힌다. 이 대표에 대한 직접 소환이 예상되는 연말까지는 ‘검찰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에 대한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검찰에 의해 ‘중계방송식’으로 하나씩 언론을 통해 흘러 나올 경우 당의 ‘이재명 지키기’ 응집력도 점차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존재’는 이재명 대표에게로 ‘올인’하려는 당의 구심력과 결속력을 떨어뜨리는 위협 요소로서 상존하게 된다. 지금은 ‘포스트 이재명’이 일종의 터부로 인식되지만 최악의 상황이 점차 현실화 되면 당내 시선도 ‘차선책’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궐위’시 ‘대타’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먼저 대장동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편파성을 벗어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절차에 의해 이재명 대표의 유죄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현재 검찰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를 진척시키고 있고 이에 따른 편파성 시비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대장동 사건의 또 다른 축인 ‘50억 클럽 수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또한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수사 당시, 주임검사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박영수 전 특검을 통해 사건을 무마했다는 김만배의 2021년 육성 발언이 공개되는 등 또 다른 의혹도 제기됐지만 검찰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수사팀은 “인적, 물적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모든 걸 한꺼번에 똑같이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하며 피해가고 있다.

이렇듯 대장동 사건을 둘러싼 편파성 시비가 완전히 불식되지 않는 이상(윤석열 정권 하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법적으로는 영어의 몸이 돼도 정치적으로는 살아 있는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개딸’ 등의 열혈 지지층들도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저항할 경우 민주당은 더욱 이재명 대표 체제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이낙연 전 대표 세력이 조급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재명 대안’을 자임하며 대장동 사건 정국에 끼어들 경우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이용해 당권을 차지하려 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낙연 전 대표로서는 이재명 대표가 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이상 사법 리스크의 반사이익 뒷공간을 치고 들어가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검찰이 편파성 시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력’을 총동원하여 ‘이재명 대표 잡기’에 올인하고 있는 형국이 지속되는 한 이낙연 전 대표도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낙연 전 대표측으로서는 이재명 대표의 완전한 소멸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당 수습을 명분으로 전격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다. ‘개딸’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친명’ 지지층이 건재하고 그들은 윤석열 정권 하의 검찰 수사 자체를 불신하기 때문에 끝까지 이재명 대표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려고 한다. 이재명의 포기는 곧 민주당의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대표가 설령 사법처리돼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옥중투쟁을 포함한 옥쇄작전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친명 세력은 강경 일변도로 나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정치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때 중도층이 친명 지지층과 결별하려는 움직임이 여론조사 지표 등으로 드러나게 되면 이낙연 전 대표도 더 이상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사멸을 기다리지 않고 전격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민주당 분당설이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는 한 방송에 출연해 “지금 미국에 있는 이낙연 전 대표가 귀국하고 (이재명) 손절 기류가 본격화하는 시기가 오면 민주당은 분당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도 문재인 전 대통령 진영과 이 대표 측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 구도가 분명히 있는데, 그 때가 되면 양쪽이 더 이상 공존하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당이 된다면 (이 대표의 반대편은)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호남 인맥과 그 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상왕으로 있는 그런 체제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내다봤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의 직접 진술이 없어도 결재서류 등의 ‘자료 증거’만으로도 이 대표를 최소한 배임 혐의로 ‘엮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제 민주당은 이 대표의 ‘구속’을 상수로 놓고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존재감이 부각되겠지만, 당의 혼란을 틈탄 ‘기회주의자’의 숙명적 한계를 뛰어넘을 만한 희생과 사즉생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이낙연의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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