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집권여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매가리 없이’ 끌려다니고만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 의총에서 ‘윤석열 정부 뒷받침도 장관도 지켜주지 못하는’ 당이 ‘흐리멍덩하다’는 뉘앙스로 발언해도 누구 한 명 나서서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한 채 비겁하게 입을 닫고 있는 것이 현 집권여당의 지리멸렬 상황이다. 이태원 참사 책임을 놓고 애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 의사가 알려진 후 그 이야기는 쏙 들어가 버렸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에게 찍히면 죽는다’는 망령이 115명 국민의힘 의원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당에 가장 빚이 없는 정치인이다. 전직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리고 8개월여만에 대통령이 됐다. 이 드라마틱한 과정에서 그가 국민의힘에 빚을 진 것이라곤 당명과 선거자금 사용 정도가 될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청년층 소구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의 어퍼컷 세리머니와 유창한 웅변 실력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믿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수시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전화해 ‘지시’를 가하거나 ‘문자’로 ‘체리따봉’을 날리며 그들을 은연중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개인기로 부채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이런 심리적인 ‘주종관계’가 자리잡은 데다가 가까이는 당무감사 멀리는 총선마저 다가오니 여당 의원들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이긴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작금의 국민의힘 상황은 역대 집권여당 사상 최악이자 최약체 집단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세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의 ‘뒷구멍 정치’다. ‘정치신인’ 윤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여당 상황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더 깊숙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 몇몇에게 전화를 걸어 이태원 참사 대처에 대한 당의 ‘어리숙한’ 대응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권성동 의원과 텔레그램을 주고 받다 들통이 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가장 기분 좋을 때만 준다는 ‘체리따봉’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알려지지 않지만 윤 대통령이 수시로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뒤에서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통령의 ‘성은’을 받은 의원들은 큰 비밀인 것처럼 숨기고 대통령실에 대한 견제나 비판은 일체 하지 않는다. 이는 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국민의힘과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태연스럽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사건건 ‘당무’에 개입하고 있는 정황들로 해석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의 ‘정무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뜬금없이 비례대표 초선이 나서서 대놓고 비난을 해도 선배의원들은 꼬리만 내리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예산안 정국에서 최고의 원내 사령탑이지만 ‘두 수석 퇴장’ 조치로 윤 대통령에게 밉보여 곤욕을 치르고 난 뒤 대통령실 ‘오더’에 민감하고 반응하면서 바짝 엎드려 있다. 윤 대통령 앞에서 집권여당 전체가 이렇게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으니 이태원 참사로 조각조각 난 민심을 제대로 치유할 당의 주축은 없는 셈이다.

윤 대통령도 당원이기 때문에 당의 상황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집권여당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야만 국정운영 동력이 확보되기 때문에 누구보다 대통령이 여당의 정치동향에 민감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일부 의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전화를 하거나 따로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당과 대통령실의 소통을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의 ‘정치’에는 자기절제와 참모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여당에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정무수석이나 당 대표 등 공식채널을 통해 공개적이고 투명한 소통 시스템 하에 이뤄져야 한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듣고 발끈해서 대통령이 일일이 전화해서 ‘각개격파’ 식으로 난삽하게 대응해버리면 당과 대통령실의 소통 시스템은 무력화 되고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고 눈치를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된다. 윤 대통령이 정무수석이나 원내대표에게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과거 ‘수행팀장’을 통해 당 전체를 나무라는 미숙하고 권위적인 정치 스타일로는 집권여당을 휘어잡을 수도 없고, 여당은 여당대로 무책임하게 손 놓고 대통령 심기 살피기에만 빠져 있게 된다.

윤 대통령의 ‘돌발 정치’ 개입이 당 운영에 혼란을 가져다 주는데 ‘윤핵관’마저 그 행태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윤핵관은 윤 대통령을 대선에서 승리하게 한 1등공신이지만 이제는 그들의 역할은 끝났다. 계파를 초월해 인재를 두루 등용해 통합의 여당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윤핵관은 어두운 ‘실세 그림자’를 당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최근 ‘메모(기록) 논란’을 일으킨 대통령실 수석들을 퇴장시킨 주호영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당의 갈등을 다시 부추겼다. 오로지 윤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다 보니 원내 사령탑인 주호영 원내대표마저 비판의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당의 소통과 통합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주 원내대표는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윤핵관이 사실상 당을 좌지우지 하게 되고 그것은 한명 한명이 헌법기관인 의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더욱이 윤핵관이 정치적 비전이나 정책으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윤석열 충성파’ 중심으로 결성되다 보니 당에 내홍이 발생하면 오로지 무력 강경진압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잊을 만하면 튀어 나와 당의 공식적인 운영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파편적이고 단속적인 위력개입으로 국민의힘을 오합지졸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호영 원내대표의 역할이다. 주 원내대표는 5선의 대선주자급 정치인이다. 하지만 ‘공천이 당선’이라는 대구에서만 5선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 경쟁력이나 당내 조직은 별로 없다. 좋은 말로 하면 화합형이지만 소신과 정치철학보다 시류에 영합하고 권력의 편에 본능적으로 가까이 하려는 성향을 보여준다. 이번 두 수석 퇴장 해프닝도 국회 운영위원장으로서 최소한의 소신을 보여준 것이지만 윤핵관의 강경진압에 수모를 당하고 난 뒤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윤핵관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윤심’으로 원내대표가 된 주호영 의원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는 115석의 집권여당이 대통령실을 올바르게 견제하고 민심을 추동해내는 실질적인 원내 리더가 돼야 한다. 국민의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집권여당의 역할과 위상을 위해 대통령실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도록 판을 주도해야 한다. 윤 대통령 눈치 보며 또 다음 총선 공천 한번 더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 대표까지 노리고 있다면 더욱 주호영의 색깔을 확실히 내세워 정치적 독립을 해야 한다. 지금이 주 원내대표에게는 자기정치를 할 마지막 기회다”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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