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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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자신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된 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모양 빠진’ 사과를 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김 의원의 사과로 끝나지 않고 제1야당인 민주당의 신뢰성에도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법사위 종합감사에서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발언순서까지 처음으로 배정받으면서 윤석열 정권을 향한 ‘야심찬’ 폭로를 터뜨렸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실세이고 거기에 김앤장이라는 한국 최대의 법조권력이 함께 했다는 그럴 듯한 ‘괴담’은 삽시간에 시중에 퍼져 온갖 음모론들이 판을 쳤다. 그리고 한달여 만에 이 흥미진진한 ‘괴담’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한 첼리스트는 경찰에 출석해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관련자들의 휴대폰 포렌식 등으로 언급된 인물들이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폭로 한달여만에 ‘청담동 술자리’는 ‘없던 일’이 돼 가고 있지만 경찰은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을 소환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한동훈 장관도 이번 가짜 뉴스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법적 조치를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김의겸 의원은 한동훈 장관으로부터 모멸에 가까운 조롱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일단 비만 피하자’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김 의원의 ‘철면피 대응’은 민주당 전체를 불신과 조롱의 대상으로 내몰고 있다.

김의겸 의원은 한겨레 기자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까지 지낸 인물이다. 하지만 청와대 재임 시절 흑석동 상가 투기 의혹으로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이던 문재인 정권에 심대한 도덕적 타격을 주었다. 그 후에도 그는 흑석동 상가를 처분해 10억 이상의 차익을 남겨 기부를 하는 등의 논란을 이어갔다. 청와대의 ‘내로남불’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연고지’ 군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를 하려다 투기 논란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지 못할 뻔했으나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주도한 열린민주당에 우회로를 뚫어 비례대표를 신청, ‘낯 두꺼운’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 후 김진애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로 ‘운 좋게’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보여준 ‘30년 기자 경력과 청와대 대변인’의 퍼포먼스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조용조용하고’ 합리적인 의원들의 ‘임팩트’ 없는 투쟁방식보다 지지층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한방 있는 검투사를 원했기 때문에 김의겸의 ‘오버 연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국감에서도 그가 ‘한 방’을 준비한다고 하자 당에서 질의순서까지 앞당겨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국회의원들은 매일 수많은 의혹과 제보를 받는다. 이에 대한 경중을 따지고 팩트를 검증하며, 사안을 장기적으로 임팩트 있게 끌고 가는 것은 의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의정활동에 두각을 나타내는 의원들은 대부분 제보발굴과 팩트체크에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상위 1% 보좌관’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의원의 몫이기 때문에 의원의 판단력과 검증능력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는 그 과정이 수준 이하였다. 먼저 사실 확인이 너무도 미흡했다. 김 의원은 ‘대충 한방 터뜨려 하는 행동마다 얄미운 한동훈을 국감에서 한번 물을 먹여보자’는 얄팍한 파이팅에 취해 있었는지 크로스체크같은 기본적인 과정마저 잊은 듯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그리고 최고의 법조권력 집단 변호사 30여명이 ‘움직인’ 사건이라면 최소한 현장 확인과 주변인물 스크린은 필수검증 요소다.

하지만 김 의원은 ‘와인 바’가 대략이라도 어느 곳에 있었는지 특정하지 못했고 최소한 김앤장 변호사 30여명에 대한 주변인물 취재도 없었다. 그냥 한 첼리스트의 ‘제보 녹음 파일’을 틀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팩트 체크 전 과정을 건너뛴 것이다. 이는 수습기자도 하지 않을 실수다. 김 의원은 이 과정을 몰라서 안했다기보다 사실 확인보다 ‘한동훈 면피주기’에 눈이 멀어 몸보다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또 하나 무능력한 점은 통상 이런 대형사건을 폭로할 때는 제보로 확보한 70% 정도의 사실만 공개하고 상대의 반응과 팩트 여부 등을 파악한 뒤 다음 대응책을 마련한다. 상대가 강하게 부인하거나 다시 담을 수 없는 ‘거짓말’을 했을 때 나머지 30%의 ‘확고한 팩트’로 상대의 거짓대응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의겸 의원은 한동훈 장관이 술자리가 사실이라고 해도 일단 강하게 부인할 것을 예상하고 그 다음 카드를 꺼내 한 장관의 진술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녹음 파일을 트는 것 외에 준비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민주당에 김의겸 의원 같은 무능력한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며 투쟁을 하는 분위기는 최근의 달라진 여의도 정치문화와 관련이 있다. 민주당 국민의힘 공히 토론과 타협을 하려는 정치인보다 상대에 대한 선명한 공격과 지지층이 좋아할 만한 격정적인 ‘감언이설’을 쏟아내는 의원들을 선호하다 보니 ‘선동정치인’들만 득세하는 세상이 됐다. 방송인 김어준은 진보진영의 ‘매운 맛’ 스피커를 자임하며 특정한 사안에 대해 선명한 갈라치기와 이분법적인 선택만을 강요해 충성도 높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김어준의 기준에 벗어나는 지지층은 ‘수박’으로 치부돼 조리돌림의 대상이 된다. 김의겸이 최소한의 팩트 확인과 제보 폭로 전략도 갖추지 않고 ‘묻지마 폭로’한 것은 ‘분명히 틀렸지만 맞다’고 믿어주는 왜곡된 팬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을 오래 경험해왔지만 김의겸 의원같이 무능하고 뻔뻔한 정치인은 그리 보지 못했다. 흑석동 상가 투기 의혹은 부인과 관련돼 있다 해도 사회지도층 엘리트들의 도덕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개인 사생활도 도덕성이 결여돼 있지만 공적인 일에도 ‘직업윤리’가 의심스럽다. 김의겸 의원은 지난 8일 이재명 대표와 페르난데스 EU 대사 회동 뒤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EU 대사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긴장이 고조돼도 대화 채널이 있어 교류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가, EU 대사가 과거 정부와 현재 정부를 비교한 적 없다는 항의를 받아 사과한 바 있다. 이 또한 민주당의 신뢰성에 먹칠을 하는 아둔하고 무책임한 ‘곡언아세’(曲言阿世)였다.

김의겸 의원은 국감에서 ‘청담동 술자리’를 폭로한 이후 이렇다 할 ‘카운트 펀치’를 준비하지 못해 한동훈 장관으로부터 온갖 모욕적인 언사와 비난을 계속 들었지만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일개’ 장관으로부터 모멸에 가까운 욕을 듣는 것은 민주당에게도 수치스러운 장면이다.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정국으로 당 전체에 대한 불신도 깊어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개별 의원들이 책임 있는 자세와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김 의원은 ‘심심한 유감’ 한마디로 민주당에게 쏠려 있는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를 뻔뻔함으로 깔아뭉개고 있다.

김의겸 의원이 거취를 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다. 하지만 김 의원의 터무니없고 무책임한 의혹 제기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여론조사 ‘해석’ 결과가 최근 발표될 정도로 김의겸의 실수는 단순히 ‘심심한 유감’ 표명 정도에 그칠 분위기가 아니다. 무능하더라도 양심은 있고 최소한 부끄러워할 줄은 아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 김의겸 의원이 저지른 폭로 헛방에 민주당 전체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이제라도 ‘무책임한 폭로’에 대해 국민들에게 겸허하게 사과하고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만이 진보진영 지지층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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