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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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과 언론 간의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MBC의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보도로 촉발된 윤 대통령과 언론의 긴장 관계는 동남아순방 전용기 MBC 기자 배제로 한층 감정적인 대결이 격해졌다. 급기야 18일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 과정에서 기자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고성을 주고받는 사태로까지 비화됐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들이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적은 거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윤석열-MBC간의 소규모 ‘전투’가 아니라 정권과 언론 간의 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윤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특정 언론사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18일 도어스테핑에서 동남아시아 순방 중 MBC를 전용기 탑승 대상에서 배제한 데 대해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 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써 부득이한 조치”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답변은 원론적인 수준이지만 MBC와의 비속어 보도 논란을 정치적으로 과대 해석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이 MBC의 비속어 논란을 가짜 뉴스로 규정한다면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해 충분히 그 갈등을 ‘정치적으로 조정’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이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역대 정권에서 이런 해프닝성 문제가 불거졌다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그 갈등을 해소하고 넘어가는데 윤 대통령이 이 문제를 강하게 드라이브 걸면서 그 이면에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의 미디어 대응 전략이 특정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한 ‘수습’과 국정의 원활한 운영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특정인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의해 감정적으로 좌지우지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과거 청와대에 근무할 때 이런 류의 갈등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분리 대응을 했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참모들이 특정 언론사와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언론과의 싸움은 정권으로서는 실익이 별로 없다. 그래서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 대응은 역대 정권의 미디어 대응 전략과 그 결이 다른 것 같다. 대통령 한 마디에 전용기 탑승이 배제되는 등 언론 대응 전략이 상식적이지 않다. 공식 채널이 아닌 누군가가 윤 대통령 곁에서 감정적이고 적대적인 조언을 하며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대통령실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가면서 특정 언론사와 감정싸움을 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18일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에서는 또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이날 MBC 기자는 도어스테핑이 끝난 후 발걸음을 옮기는 윤 대통령에게 “MBC가 무엇을 악의적으로 했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윤 대통령은 아무런 답변 없이 집무실로 향했다. 이를 두고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가는 분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면 예의가 아니지”라고 하자, MBC 기자가 “질문도 못 하느냐”며 맞받아치면서 2분가량 양측간의 고성과 설전이 오갔다.

윤 대통령과 특정 언론사가 비속어 논란으로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날은 참모들까지 이 전투에 가세한 꼴이 됐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비서관이 대통령이나 다른 특정인사에게 ‘나 열심히 합니다’ 하고 공개적인 아부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실 참모가 공개적으로 특정 언론사와 설전을 벌인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고 카메라도 켜져 있어 설전이 그대로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참모라면 가장 피해야 할 ‘장면’이다. 그럼에도 이기정 비서관은 무려 2분여 동안 MBC 기자와 고성을 주고받으며 말싸움을 이어갔다.

이를 두고 ‘이기진 비서관의 과잉충성’이라는 지적이 즉각 나왔다.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전 YTN 기자)은 임명 당시 과거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과 문화예술단체 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 드러나 ‘정실 인사’라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 비서관은 YTN 국장으로 있던 2021년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무용제 조직위원회는 이 비서관을 비롯해 14명의 위원들로 구성됐다. 조직위원 중에는 강신업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와 김량영 충남대 무용학과 겸임교수(코바나컨텐츠 전무) 등과 함께 이기정 비서관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비서관과 조직위원으로 함께 이름을 올린 강신업 변호사와 김량영 교수도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윤 대통령은 연일 ‘하나’의 언론사와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언론을 상대로 긴장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에 참모들도 이 ‘언론과의 전쟁’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MBC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배제에 경향과 한겨레가 가세하고 다른 언론사들도 대통령실의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해 대부분 공동보조를 취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불필요한 정치적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선지 윤 대통령이 비속어 논란 해프닝을 ‘가짜 뉴스와의 전쟁’으로 과대해석하고 아래 참모들까지 감정적으로 언론에 대응하면서 국정운영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기정 비서관과 MBC 기자가 설전을 벌인 18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소폭 하락해 다시 20%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날이었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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