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씨 표류기'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김씨 표류기'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 대중은 때때로 명작의 진가를 인지하지 못하고 외면한다. 개봉 시기가 블록버스터와 겹쳐 외면받은 영화, 대중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었으나 작품성을 뒤늦게 인정받은 영화 등 사연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중은 ‘재평가’를 통해 명작의 참모습을 확인한다. 대중의 눈과 귀에서 잊히지 않고 훗날 재평가된 영화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막대한 제작비…손익분기점 돌파 실패

‘김씨 표류기’는 흥행몰이에 실패한 영화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전국 누적 관객은 73만명으로 집계됐다.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면서 손익분기점은 전국 200만명 수준이었고, 극도로 저조한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막대한 제작비를 메울 수 없었다. 이해준 감독은 2006년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에 이어 또다시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했다.

서울 한강 밤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서울 한강 밤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남자 김씨는 밤섬에서 극단적 선택을 다시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남자 김씨는 밤섬에서 극단적 선택을 다시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 참신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소재

업계에서는 흥행 실패 요인으로 2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영화 분위기와 맞지 않는 포스터이며, 다른 하나는 ‘흔하지 않은 소재’다.

포스터에서 남자 김씨(정재영 분)와 여자 김씨(정려원 분)가 미소를 짓는 모습은 막연하게 코미디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관객은 중간중간 해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지만, 김씨 표류기는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라 포스터의 해맑은 모습은 소재와 괴리감이 있다. 특히 남자 김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본의 아니게 서울 밤섬에 표류한 상황이다.

3년째 외출을 피하면서 방에서만 지내는 여자 김씨.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3년째 외출을 피하면서 방에서만 지내는 여자 김씨.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 때문에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빚에 시달리던 남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목숨을 부지한 채 서울 한강에 있는 밤섬에 표류하고, 멀리서 그를 목격하는 대인기피증 환자(은둔형 외톨이)와 펜팔로 교류한다. 남자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살아보기로 하고, 은둔형 외톨이는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연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다. 대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스토리다.

21세기 들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는 심각한 이슈였다. 이해준 감독(각본‧감독 겸임)은 영화를 이끄는 캐릭터로 히키코모리를 택했다. 여자 김씨는 3년째 자신의 방에서만 생활하는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였지만, 남자 김씨와 교류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바깥으로 나선다.

대중성과 별개로 영화의 주제는 뚜렷하다. 이해준 감독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남자 김씨가 짜장면을 직접 만들어 먹는 과정을 보여준다. 심지어 여자 김씨가 짜장면을 배달해줬지만, 남자 김씨는 자신이 만든 짜장면을 먹기 위해 배달 음식을 거부한다. 희망은 먼 곳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본인이 가꿔가기 마련이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남자 김씨는 옥수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남자 김씨는 옥수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자신의 힘으로 만든 짜장면을 먹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남자 김씨.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자신의 힘으로 만든 짜장면을 먹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남자 김씨.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 해외에서도 ‘호평 일색’

결국 김씨 표류기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작품성을 바탕으로 재평가를 받는 다소 뻔한 절차에 합류했다.

다만,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화 정보 사이트인 IMDb(Internet Movie Database) 회원들의 반응은 대부분 우호적이다. 참신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만족하는 관객이 많았다.

한 유저는 “김씨 표류기의 영어 제목은 ‘Castaway on the Moon’이지만, 톰 행크스 주연 표류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0)’를 기대하지 말라”면서 “아름다운 영화”라고 칭찬했다.

또 다른 유저는 “인간 사이의 현실을 설명하는 독특한 방법(This is a unique take on explaining the realities among humans)”이라고 평가했다.

정재영이 짜장면을 먹는 장면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화제가 됐다. 한 유저는 “남자 김씨가 면을 만드는 과정이 나를 배고프게 했다(The way he eats the noodles made me hungry)”면서 “한편으로는 나를 울게 했다(Made me cry)”고 언급했다.

호평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리메이크도 결정됐다. CJ LA지사에서 시네마서비스(김씨표류기 제작사)와 리메이크 판권 계약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흥행은 실패했지만, 작품성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두 김씨는 버스에서 극적으로 만난다.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두 김씨는 버스에서 극적으로 만난다. 사진=김씨 표류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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