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DVD. 사진=양지훈 기자
파이트 클럽 DVD. 사진=양지훈 기자

# 대중은 때때로 명작의 진가를 인지하지 못하고 외면한다. 개봉 시기가 블록버스터와 겹쳐 외면받은 영화, 대중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었으나 작품성을 뒤늦게 인정받은 영화 등 사연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중은 ‘재평가’를 통해 명작의 참모습을 확인한다. 대중의 눈과 귀에서 잊히지 않고 훗날 재평가된 영화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주인공(에드워드 노튼 분)과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 분)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주인공(에드워드 노튼 분)과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 분)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 평단의 혹평과 북미 시장 흥행 실패

‘파이트 클럽’은 ‘세븐’, ‘조디악’과 함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거장의 반열에 등극하게 한 영화다. 하지만 평단의 호불호가 갈리고, 북미 시장에서 흥행에 실패하는 등 개봉 당시 갖은 고난을 겪은 작품이기도 하다. DVD 시장을 통해 비교적 재평가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명작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1999년 개봉 당시 많은 평론가는 영화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영화 작가이자 평론가인 로저 이버트(Roger Ebert)는 파이트 클럽을 ‘폭력의 찬양(a celebration of violence)’, ‘폭력적인 남성의 포르노(They beat up themselves. It's macho porn)’라고 묘사하며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평점은 4점 만점에 2점을 매겼다.

LA타임즈 영화 평론가인 케네스 튜란(Kenneth Turan)은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유치한 철학과 뼈를 부수는 폭력(infantile philosophizing and bone-crunching violence)”이라고 꼬집었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영화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행위자 중 하나(one of cinema's premier brutalizers)”라고 표현했다.

주인공(에드워드 노튼 분)의 본업은 보험사 리콜 조사원이며, 그의 또 다른 자아는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 분)이다. 타일러 더든은 말라(헬레나 본햄 카터 분)의 호감을 사기 위해 창조한 이상적인 자아였다. 주인공은 타일러 더든의 인격으로 말라와 성관계를 맺고 나서도 기존 인격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라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주인공이 파이트 클럽을 조직하고 집단의 규모를 키워 도시 초토화를 계획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폭력성과 남성성이 느껴진다. 몇몇 평론가가 파이트 클럽을 ‘남근주의적 영화’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런 과정 때문으로 추정된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이 싸우는 순간.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파이트 클럽 회원들이 싸우는 순간.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타일러 더든.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타일러 더든.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유명 평론가들의 혹평이 난무했지만, 모든 평론가가 영화를 깎아내린 것은 아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파이트 클럽에 5점 만점을 매겼다.

이 평론가는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이라는 콘텐츠에서 “파이트 클럽의 가장 큰 특징은 블랙 코미디”라고 평했다. 그는 “남녀 주인공이 ‘고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모임에서 만난다는 점이 영화를 블랙 코미디로 분류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며 “고환암에 걸려 고환을 잃었거나 잃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모임에 여자가 참석하고, 남녀 주인공이 만나게 된다는 줄거리는 영화가 어떤 블랙 코미디적인 특징을 보유했는지 느끼게 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평단의 반응과 별개로 북미 시장 흥행도 시원치 않았다. 박스오피스 통계 사이트 넘버스(the numbers)에 따르면 파이트 클럽의 제작비는 6500만달러였으나, 북미 시장(domestic box office)에서 3703만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흥행 부진의 여파는 배급사였던 20세기 폭스 사장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 흥행은 1억달러를 넘었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주인공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말라.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주인공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말라.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주인공이 도시 초토화 계획을 실행한 순간.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주인공이 도시 초토화 계획을 실행한 순간. 사진=파이트 클럽 캡처

◆ 빠른 재평가, 평단과 대중의 극명한 온도 차

일부 평론가의 싸늘한 반응과 달리 관객들은 점차 우호적인 시선을 보냈다.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DVD를 비롯한 2차 시장에서 호응을 얻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를 묘사한 풍자(블랙 코미디) 영화를 연출하고 싶었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 관객이 늘었고, 재평가가 꾸준히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평단과 관객의 반응이 갈리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평론가들의 평점과 관객들(혹은 게임 유저들)의 평점 평균을 매기는 ‘메타크리틱’과 ‘로튼 토마토’의 통계를 보면 평론가와 관객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평단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66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저들은 10점 만점에 9점을 매겼다. 로튼토마토의 신선도는 79%였지만, 관객 평가는 96%로 17%p 차이를 보였다.

한편, 2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데이비드 핀처와 주연 배우들은 평단의 혹평을 잊지 않고 있었다. 2020년 데이비드 핀처, 에드워드 노튼, 브래드 피트가 시상식에서 한자리에 모여 파이트 클럽을 혹평했던 평론가들의 리뷰를 하나씩 읊어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감독과 두 배우가 번갈아 가면서 유명 평론가들의 혹평 코멘트를 읽는 방식이었다. 노골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고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평론가가 깎아내린다고 반드시 수준 미달 영화가 아니며, 평론가가 치켜세운다고 반드시 명작도 아니다. 대중은 평론가의 평점을 맹신할 필요가 없으며, 참고자료로 삼으면 된다. 파이트 클럽에 대한 평가도 각자의 몫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