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비스' 포스터. 사진=IMDB
영화 '어비스' 포스터. 사진=IMDB

# 대중은 때때로 명작의 진가를 인지하지 못하고 외면한다. 개봉 시기가 블록버스터와 겹쳐 외면받은 영화, 대중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었으나 작품성을 뒤늦게 인정받은 영화 등 사연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중은 ‘재평가’를 통해 명작의 참모습을 확인한다. 대중의 눈과 귀에서 잊히지 않고 훗날 재평가된 영화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외계 생명체와 마주하는 린지 브리그먼 박사. 사진=어비스 캡처
외계 생명체와 마주하는 린지 브리그먼 박사. 사진=어비스 캡처

◆ 제임스 캐머런의 유일한 ‘흥행 참패’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28억4590만달러로 세계 영화 흥행 역대 1위에 등극한 ‘아바타’의 감독도 실패를 피할 수는 없었다. ‘어비스(The Abyss)’는 제임스 캐머런이 1980년대 메이저 무대에 데뷔한 후 처음으로 흥행 실패를 맛본 작품이다.

20세기 폭스사는 ‘터미네이터(1984)’와 ‘에일리언 2(1986)’의 성공으로 주가를 한창 끌어올렸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스오피스 통계 사이트 넘버스(the numbers)에 따르면 어비스의 예산은 7000만달러였으나,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표는 5424만달러에 그쳤다.

1980년대 제작비 7000만달러는 영화계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캐머런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20세기 폭스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실패했다.

주인공 일행과 대립하는 커피 중위. 사진=어비스 캡처
주인공 일행과 대립하는 커피 중위. 사진=어비스 캡처

◆ 아류작이 발목을 잡다

어비스보다 먼저 공개된 아류작들이 어비스의 흥행 실패 원인으로 지적됐다. 바다를 배경으로 미지의 생물과 조우한다는 어비스의 내용이 유출되면서 오히려 ‘딥 식스(DeepStar Six)’, ‘레비아탄(Leviathan)’ 등 심해 소재 유사 영화가 어비스보다 먼저 개봉했고, 이른바 ‘김 빼기’ 작전을 펼쳤다. 두 작품 모두 어비스 제작 소식을 듣고 급하게 만든 해저 괴수 영화였다.

이외에도 어비스가 극장에서 공개된 1989년에는 ‘심해 에이리언(Lords of the Deep)’, ‘해저의 암살자(The Evil Below), 마의 해역(The Rift) 등 심해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줄줄이 개봉했다. 정작 어비스는 호러 영화가 아니라 심해 SF 영화였는데, 아류작은 인류가 심해 외계 생물체와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아류작들은 어비스의 흥행을 저해하는 요소였고, 제임스 캐머런 감독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목숨을 건 도전으로 사랑을 재확인한 브리그먼 부부. 사진=어비스 캡처
목숨을 건 도전으로 사랑을 재확인한 브리그먼 부부. 사진=어비스 캡처
희생을 택한 버질 브리그먼의 여정과 마지막 메시지. 사진=어비스 캡처
희생을 택한 버질 브리그먼의 여정과 마지막 메시지. 사진=어비스 캡처

◆ 제임스 캐머런식 SF를 정립한 작품

극장 흥행은 실패했지만, 어비스는 재평가받을 이유가 다분한 작품이었다. 아울러, 제임스 캐머런의 경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

특히 물을 의인화해 사람 형태를 만들어낸 ’몰핑(morphing)‘ 기법이 호평을 받았다. 린지 브리그먼 박사(메리 엘리자베스 매스트란토니오 분)가 외계인과 대면하고 손으로 직접 만져보는 순간은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이러한 연출은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Academy Award for Best Visual Effects) 수상으로 이어졌다.

어비스에서 쓰인 특수효과는 차기작 ’터미네이터 2(1991)‘에서도 십분 활용됐다. 로버트 패트릭이 연기한 ‘액체 금속 인간(T-1000)’의 CG 처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흥행 실패와 무관하게 어비스는 탄탄한 차기작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셈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 영화의 기본적인 골격을 완성한 작품도 어비스였다. 사실상 파경이나 다름없던 부부가 심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사랑을 확인하고 화해한다.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은 ‘희생’을 택한다. 어비스는 ‘희생을 통한 인류 구원’이라는 서사를 정립한 작품이며, 이러한 전개는 아바타 등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다에 관한 깊은 관심을 어비스와 ‘타이타닉(1997)’으로 드러냈던 제임스 캐머런은 오는 12월 공개될 ‘아바타: 웨이 오브 워터’에서도 바다를 주 무대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 흥행은 실패했지만, 어비스 연출을 통해 제임스 캐머런이 쌓은 경험이 좋은 구실을 하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파이낸셜투데이 양지훈 기자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와 만나는 버질 브리그먼. 사진=어비스 캡처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와 만나는 버질 브리그먼. 사진=어비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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