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도 먹고 알도 먹고

 [파이낸셜투데이 김진아 기자]롯데그룹이 계열사를 부당지원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최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롯데의 현금인출기(ATM) 판매 계열사인 롯데피에스넷이 ATM기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그룹 계열사인 롯데알미늄을 끌어들였기 때문. 롯데알미늄이 굳이 사업에 참여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단계에 끼어 넣어 수수료를 챙겨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롯데피에스넷의 2대 주주인 케이아이비넷은 롯데그룹의 임직원 4명을 검찰과 공정위에 고발하고 나섰다. 롯데알미늄에게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줘 롯데피에스넷에 손해를 입혔다는 판단에서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피에스넷 2대주주, 롯데그룹 임직원 검찰 고발…“부당지원했다” 주장
롯데 계열사 편입 후 대표이사 해임·롯데알미늄 제조 참여…의구심 증폭 


롯데그룹이 ATM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 롯데피에스넷(대표 김선국)를 이용, 롯데알미늄(대표 유원태)에 부당지원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롯데피에스넷의 2대 주주인 ‘케이아이비넷(대표 장영환)’은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국제실장과 임종현 전 롯데알미늄 사장을 비롯한 계열사 임직원 4명을 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으며, 공정위에는 부당지원 혐의로 신고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2월 말 방문조사를 벌였고, 검찰 역시 조만간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 케이아이비넷 사옥이 있는 여의도 한국화재보험 빌딩


롯데의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

케이아이비넷 측은 롯데그룹이 롯데피에스넷의 ATM 구매 과정에서 중간 거래상으로 계열사 롯데알미늄을 끼워 넣고 과도한 수수료를 챙겼다고 주장했다.

케이아이비넷은 고발장에서 “실제 단가가 대당 1449만원인 ATM 기종을 롯데알미늄으로 1570만원에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해 대당 121만원의 중간수수료를 롯데알미늄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런 식으로 롯데알미늄을 거래 중간에 끼워 넣고 롯데피에스넷으로부터 편취한 중간 수수료가 2010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32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검찰 고발에 나선 케이아이비넷은 본래 롯데피에스넷의 전신이었다. 2006년 12월 케이아이비넷 금융 VAN 사업부에서 지금의 롯데피에스넷인 ‘케이아이뱅크’가 분사됐다. 2008년 10월 롯데닷컴과 롯데정보통신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총 25억원을 들여 지분 46.04%를 인수했다. 후에 이전 최대주주인 케이아이비넷으로부터 50만주씩을 추가로 인수해 각각 27.62%씩 총 55.24%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렇게 롯데 계열사로 편입된 롯데피에스넷은 얼마 동안은 기존 대표이사였던 케이아이비넷 장영환 대표가 이끌어 왔으나 2010년 8월 돌연 해임됐다. 그 뒤로 부당지원 의혹이 촉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롯데알미늄이 ATM제조·개발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

케이아이비넷은 롯데그룹이 경영권을 갖게 된 이후로 ATM판매 단계나 관행상 존재하지 않던 중간매매 형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롯데그룹이 경영권을 갖기 전에는 구매 비용을 낮추기 위해 ATM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거래가 이뤄졌으나 경영권 이전 후 롯데 그룹 계열사 임원들이 롯데알미늄을 거래 단계에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느닷없는 롯데알미늄 등장, 왜?

롯데알미늄이 ATM 구매 중간 단계에 참여할 즈음 롯데피에스넷은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시장 점유율이 ATM업체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었으며 공격적 영업으로 인해 부채비율이 급격히 치솟아 롯데 측은 유상증자를 실시, 추가 자금 수혈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존에 ATM을 구매해오던 제조사와의 거래를 끊고 일부러 중간 단계를 늘린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제조·유통 단계가 늘어날수록 매입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의 임직원들이 롯데알미늄을 구매단계에 끼워 넣도록 압력을 가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롯데알미늄의 이사에는 롯데그룹 오너 일가가 대거 포진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이 이사로 등재되어 있고 신 이사장은 롯데알미늄의 지분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롯데알미늄의 재정을 늘리고자 롯데피에스넷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롯데 측은 ‘케이아이비넷이 검찰과 공정위에 고발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고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롯데피에스넷이 하드웨어 제조 및 개발에 관한 경험이 없어 자판기 등 제조·개발 경험을 가진 롯데알미늄을 참여시켰다는 것이다.

롯데피에스넷 홍보팀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1차 계약 때는 롯데알미늄이 ATM제작을 맡은 네오아이씨피에 개발선급금을 지급하고 금형을 제작해 제공했으며 2차 계약시에는 현금흐름이 좋지 않던 네오아이씨피를 대신해 핵심부품인 BRM모듈을 직수입해 제품을 생산하도록 했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1차 계약 때는 장영환 대표가 직접 승인했던 사안이고 2차 계약 때에도 2대주주의 합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롯데 측은 ATM 가격 산정의 비교기준이 되는 거래를 예로 들며 롯데알미늄이 과다한 마진을 챙긴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1차 계약의 경우 금형제작, 자금투입 등의 비용에 비추어 기기당 85만원의 마진을 취득한 것은 부당지원 행위라고 보기 어려우며 2차 계약의 경우 훼미리뱅크가 FKM 으로부터 1천 600만원에 매입한 것에 비하면 케이아이뱅크가 1천 570만원에 매수한 것은 롯데알미늄을 지원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케이아이비넷 측의 답변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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