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둘일 순 없다

[파이낸셜투데이 성현 기자] 신영자(70) 롯데쇼핑 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롯데가 황녀’로 불리던 신 사장은 최근 단행된 임원인사에서 그룹의 사회복지재단을 총괄하는 자리로 이동했다. 지난해 초 신동빈호가 공식 출범한 만큼 신 사장의 이번 퇴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복남매인 신 사장과 신 회장의 경영권 분쟁설이 간간히 흘러나왔고 신 사장이 지금의 롯데를 일군 ‘개국공신’이라는 점에 계열 분리설도 일정부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에 재계 일각에서는 신 사장이 하루아침에 재야로 떠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며 이번 인사의 배경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

'개국공신' 신 사장과 '새로운 태양' 신동빈 회장과의 미묘한 관계
다사다난했던 개인사와 신격호 총괄회장 사후 대비라는 해석도

롯데그룹은 지난 3일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된 이번 인사에서 그룹의 ‘얼굴’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를 비롯해 롯데홈쇼핑, 호텔롯데, 롯데면세점, 롯데제과, 롯데삼강 대표가 모두 신동빈 회장과 비슷한 연배인 50대로 교체됐다. 재계에서는 만1년이 지난 신동빈호가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롯데그룹의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점이다. 신 사장은 롯데복지재단·롯데장학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기로 했다. 근 40년동안 롯데그룹을 이끌던 신 사장이 재야로 떠난 것이다.

롯데그룹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길 원한 본인의 뜻을 존중해 현업에서 한발 물러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몇가지 정황을 근거로 그의 퇴진 배경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남매간 미묘한 입장 차?

먼저 신격호 총괄회장이 그룹 통제체계 일원화를 위해 용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신 사장은 지난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하며 아버지의 회사에 처음 발을 들였다.

1990년 롯데그룹에 입사한 신동빈 회장보다도 17년이나 앞선 것이다.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신 사장은 1980년대 롯데쇼핑 영업부문을 맡으며 최전방에서 롯데백화점을 진두지휘했다.

이 시기 롯데백화점은 국내 제1의 백화점으로 도약했다. 업계 수위를 다투는 롯데마트와 롯데면세점도 신 사장 덕분에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신 사장을 바라보는 신 회장의 감정은 약간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안팎으로 잔뼈가 굵은 신 사장의 존재 자체가 이제 막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 신 회장을 흔드는 요소라는 것.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쇼핑이 그룹에서 차지하고 있는 상징성이나 비중을 감안해 보면 신 회장과 그를 후계자로 낙점한 신 총괄회장 입장에게 신 사장의 퇴진은 더욱 필요했다.

경영수업을 받던 시기부터 이어진 신 회장의 공적이 지난해에도 빛을 보면서 경영권 분쟁설을 치른바 있는 신 사장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해석도 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정책본부 본부장을 맡으며 경영 전면에 나선 2004년 10월 이후 롯데쇼핑을 성공적으로 상장시켰고 롯데홈쇼핑·롯데손해보험·롯데주류BG를 출범시켰다.

‘비전 2018’로 명명된 글로벌 시장 공략도 국내백화점 업계 최초의 러시아·중국 진출, 롯데마트의 중국·동남아 진출 등으로 착착 진행 중이다. 지난 2010년에는 GS리테일의 마트·백화점 부문을 인수했다.

무엇보다 신 총괄회장의 꿈을 이뤘다. 바로 ‘제2롯데월드’. 1998년 최초 허가로부터 12년만이고 토지 매입시기 등을 합치면 무려 16년만이다.

‘특혜 논란’ 속에서도 신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 설득에 나서는 등 의지를 굽히지 않고 줄기차게 공을 들인 게 주효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10년 11월 착공된 ‘제2롯데월드’는 연간 1조6,000억원의 매출이 기대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전망이다. 신 회장은 서울 송파구의 최종허가가 난지 4개월만인 지난해 2월, 20년간 따라다녔던 후계자 꼬리표를 뗐다.

지난해 말에는 직접 이름까지 지어가며 ‘김포공항 롯데몰’을 개장시켰다. 신 회장의 애정이 듬뿍 담긴 ‘김포공항 롯데몰’은 올해 6,000억원의 추가 매출을 선사할 예정이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다사다난한 개인사 혹은 신 총괄회장 사후 대비?

세번째는 신 사장 개인을 휘감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다. ‘삼성가-롯데가 황녀의 전쟁’으로 불렸던 루이비통 유치전에서 패배하고 대기업 2~3세들의 골목상권 진출 논란에 딸과 사위가 사업을 접으면서 심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

지난 2010년 촉발된 인천공항 루이비통 유치전은 막대한 실적이 담보되는 노른자위 사업이었다. 또 콧대 높기로 소문난 루이비통이 공항 면세점에 들어서는 첫 사례였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에게는 무형적 소득까지 있었다.

하지만 롯데면세점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버티고 있는 신라면세점에 패했고 신 사장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신라면세점에 자리잡은 루이비통은 현재 월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사업가가 아니라 자식을 둔 평범한 엄마로서 딸과 사위가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지켜봤다.

신 사장의 딸인 장선윤 씨가 대표로 있는 블리스는 지난달 31일 자사가 운영하던 베이커리 전문점 포숑(Fauchon)을 접었다. 재벌가 자제가 서민들의 생활터전인 골목상권까지 넘본다는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기 때문이었다.

장 대표의 남편 양성욱 브이앤라이프(V&Life) 전 대표도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표이사직을 포기했다. 브이앤라이프는 롯데 측 지분이 전혀 없는 100% 개인회사였지만 이명박 대통령까지 가세한 비판여론은 그가 대표이사직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신 총괄회장의 사후를 대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 총괄회장이 타개할 경우 신 사장이 총괄하게 되는 세 복지재단으로 그의 재산이 상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규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비영리 복지법인이기 때문에 상속세나 증여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도 없다.

물론 롯데를 향한 국민적 관심을 감안해보면 편법증여 의혹을 받을 수 있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롯데 측이 밝힌 신 사장의 의중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산하 복지재단은 과거 사례는 물론 폐쇄적인 운영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부터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싶다는 언급을 해와 이번 인사에 반영된 것이며 제기된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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