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상생의 길”

[파이낸셜투데이=성현 기자] 다사다난(多事多難). 연말연시에 즈음해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흔히들 사용하는 사자성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11년 신묘년(辛卯年)도 여느 해처럼 다사다난했다. 특히 한국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재계는 수장인 전경련 회장 자리를 채우지 못한 채 한해를 시작, 정부의 서민경제 안정화 대책에 진땀을 흘렸고 사정당국의 서슬퍼런 칼날에 어깨를 펴지 못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 여파로 증시도 큰 혼란을 겪었다.
주요 기업별로 살펴보면 재계 1위 삼성은 전세계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으며 ‘튀어나온 못’이 됐고, 전통의 명가 현대도 시아주버니와 제수씨간 뿌리 찾기 등으로 내홍을 치렀다. SK 또한 SK증권 매각, 사촌형제간 계열 분리설, 최태원 회장의 비자금 의혹으로 숨 돌릴 틈 없는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겪은 사건·사고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시작된 2011년 경제계, 최태원 SK 회장 검찰 소환으로 마무리
라이벌간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과 각기 다른 이유로 울상인 기업들…3세 경영 가속화 ‘눈길’


▲ 여의도 증권가
1. 전국민을 불안 속에 빠뜨린 금융권

“신뢰성이 재산이라더니…”

‘서민경제의 근간’이라는 제2금융권은 1월 14일 서울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총 16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되거나 M&A 시장에 내몰리며 문을 닫았다. 25조원에 이르는 고객예금이 사라졌다.

특히 몇몇 저축은행은 자기자본이 완전 잠식되는 위기 속에서도 오너 지인들에게 불법 대출을 해주고 로비에 예금을 탕진하며 대규모 소요 사태를 자초했다.

올해 금융계를 정리하며 빼놓을 수 없는 사건. 바로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태다.

4월 초 현대캐피탈 전산 서버에 저장돼 있던 고객 수십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을 시작으로 북한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지어진 농협 해킹 사태,

직원 단한명에 의해 80만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새어나간 것으로 알려진 삼성카드 사건, 역시나 한명의 직원의 범행을 막지 못한 하나SK카드도 2011년 금융계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2. 대기업 VS 중소상인
“멀고도 험한 상생의 길”

유통거인과 중소상인들의 생존권 다툼은 올 한해 뜨거운 감자였다.


기업형수퍼마켓(SSM)의 신규 입점을 제한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은 부단했지만 대기업들은 이를 무색케 만드는 편법·기습 개점으로 수많은 전통시장 상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도 조례를 통해 시장상권 보호에 앞장섰지만 올해 기업형 슈퍼마켓은 사상 처음으로 1,000개를 넘어섰다.

백화점 입점업체들의 자릿세, 식당, 안경점 등 중소상인들의 신용카드 수수료도 인하되거나 추진 중이다.

특히 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최고 35%가 넘는 치명적인 자릿세를 내왔던 백화점 입점업체들은 해외 명품업체 수수료가 자신들의 절반 이하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현대차그룹의 카드결제 수수료 인하 요구는 응하면서 영세 상인들의 하소연을 외면했던 카드업계도 악화된 여론과 서민경제 안정화에 나선 정부의 입김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3. 오너들의 비자금 조성 의혹
“회삿돈은 모두 내 돈?”

▲ 최태원 SK그룹 회장.
“회사 공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하고 자녀 통학용으로 고급 외제차를 리스했다”
회삿돈을 횡령·유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에게 법원이 한 말이다.

담 회장은 고급빌라 부지 등을 허위·이중 매매하거나 임원 급여·퇴직금를 과다 산정하는 방법으로 회삿돈 300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더욱이 자녀 통학용으로  람보르기니의 수퍼카 ‘가야르도’와 포르셰의 ‘카이엔’ 등 수억원이 넘는 자동차를 회사 자금으로 리스해왔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비상장계열사 법인자금을 무담보 또는 낮은 이자로 빌려 쓰는 수법으로 모두 274억여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그룹의 대우건설 매각 첩보를 입수한 뒤 보유주식을 팔아치워 102억원대 손실을 회피한 의혹도 받고 있다.

2008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은 바 있는 SK 최태원 회장은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그룹 임원들의 성과급을 과다 계상하는 수법으로 20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계열사 대표를 동원해 회삿돈 992억원을 전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4. 재벌가 3세들의 경영권 승계
“회사를 그대 품 안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세 자녀인 조원태 전무, 조현아 전무, 조현민 상무는 비상장계열사 싸이버스카이를 이용해 지난 11월 한 달 동안만 무려 24차례에 걸쳐 대한항공과 한진 주식을 매입했다.


이에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세 자녀가 경영권 승계 작업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사장의 장녀 서민정양은 지난 2006년 서 사장으로부터 회사의 우선주 20만1,448주를 증여받고 우선주 최대주주로 등극해 있다.

또 현재 주식의 시가총액은 586억원에 달하며 4살 아래 동생들이 보유한 회사 지분은 전무하다. 이에 재계에서는 올해부로 성인이 된 민정양을 중심으로 아모레퍼시픽이 재편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씨는 지난 2009년 1월 동부제철 당진공장 차장으로 입사, 3개월 뒤 도쿄지사로 파견됐다. 어학연수(와세다대학)도 병행했다.

2010년 4월 국내로 들어와서는 동부제철의 경영 관련 회의에 참여하는 등 특정 업무에 국한하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 스티브 잡스·박태준 타계
“혁신과 성공의 아이콘, 별이 되다”

▲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와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애플컴퓨터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월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잡스는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양부모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 2001년 아이팟(iPod), 2007년 아이폰(iPhone), 2010년 아이패드(iPad)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포스트 PC’ 시대를 열었다.

잡스는 커다랗고 화려한 회사명 대신 ‘애플’ 마크 하나로도 디자인이 멋질 수 있다는 것, 휴대전화로 전화만 거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등 IT업계에 혁신과 혁명을 몰고 온 풍운아였다.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지난 13일 84년의 삶을 마감했다. 사인은 흉막섬유종에 따른 호흡 곤란.

포스코 창업자인 고 박태준 명예회장은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를 설립, 자산 77조 9347억원을 보유한 현재의 포스코를 만들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1980년 국보위 참여, 1981년 이후 네차례 국회의원 당선, 1991년 집권 민정당 대표, 2000년 국무총리 등 정치적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6. 눈물의 건설업계
“살얼음판 걷는 기분”

지난해 말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비리로 한화건설 국내사업부문 사장 등 대형 건설업체 임직원들은 검찰에 불려갔다.


검경이 60명으로 구성된 전담팀까지 꾸렸던 이 사건으로 브로커 유상봉씨는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비리에 연루돼 있던 국토해양부 장관 출신 임상규 순천대 총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건설업계를 옥죄는 진짜 공포는 따로 있다. 지난 3월 LIG건설을 시작으로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한달새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물론 삼부토건은 법정관리 신청 2개월 뒤 이를 철회했지만 동양건설산업은 여전히 적자난에 빠져있다.

이후 잠시 한숨을 돌렸던 건설업체들은 지난 11월 국내 건설업면허 1호 임광토건마저 법원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며 다시금 ‘줄도산’ 공포에 휩싸여 있다. 모두 침체된 부동산경기와 은행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자제 및 회수 때문이었다.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권의 대출 자제는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라 건설업계의 시름은 더욱 깊다.

7. 그들의 밥그릇 싸움
“너 죽고 나 살자”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컷
매출과 수익 확대를 위한 라이벌 업체간 피 튀기는 경쟁과 견제, 비난이 난무했다. 삼성과 LG는 3DTV 기술 표준을 두고 논쟁을 벌이다 욕설과 비아냥이 오가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이에 ‘진흙탕 싸움’이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CF 때문에 저멀리 남반구에서 소송까지 감행했다.

유통공룡 신세계와 롯데는 백화점·아울렛 시장을 두고 전면전을 진행 중이다. 최대 접전지는 경기도 파주.

양사는 5km를 사이에 두고 프리미엄 아울렛을 각각 오픈했다. 차로는 불과 5분거리다. 특히 신세계는 롯데가 매입 협상 중이던 아울렛 부지 계약허가권을 얻어 롯데를 발끈하게 만들었다.

인천에서는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리모델링 이후 30%대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롯데가 송도 한복판에 1조원을 들여 백화점, 마트 등을 세울 예정이다.

화장품과 정수기. 현재 시점에서 LG그룹과 웅진그룹을 놓고 비교해 본다면 무게감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런 두 그룹이 서로의 시장에 진출하며 마찰을 빗었다.

웅진코웨이가 ‘리엔케이’란 브랜드로 화장품을 출시하자 LG생활건강이 상표권 소송을 제기, 1라운드에서 이겼다.

하지만 웅진코웨이는 즉각 항소했으며 LG전자의 정수기 판촉 행위를 공정위에 제소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8. 한·미FTA 국회 비준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지난달 22일 여야 의원들의 거친 몸싸움 끝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국회를 통과했다. 절차적 하자 논란이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달 29일 14개 이행법안에 서명했다. 한미 양국은 내년 1월1일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이 또한 각 진영간 이견이 있지만 지난 8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가름해 보자.

한미FTA는 생산성 향상과 경제구조 선진화 등을 통해 실질 GDP가 5.66% 증가시켜 줄 것으로 분석됐다.

35만여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무역수지는 향후 15년간 연평균 27.7억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 미 무역수지는 연평균 1.4억달러 흑자가 예상된다. 외국인 투자금도 향후 10년 동안 매해 23~32억달러에 이른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전경련은 FTA가 국회를 통화한 "국익과 국민을 위한 한·미 FTA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며 "우리 기업들은 한미 FTA가 일자리 창출과 서민 생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9. 한진중공업 총파업 사태
“희망 버스, 세상을 움직이다”

지난해 말 경영 악화를 이유로 한진중공업 사측이 직원 수백명을 희망 퇴직시키면서 촉발됐다.

노조 측은 퇴직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고 민주노총 김진숙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50m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가 5개월여간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사측의 반응은 싸늘했고 노조 측은 '1차 희망버스'를 몰고 한진중공업 진입을 시도했지만 사측도 용역업체 직원을 고용해 막아 세워 수십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2차 희망버스’에는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약1만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해산에 나선 경찰도 최루액을 사용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조남호 회장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사태 해결에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였고, 대기업 총수가 국회에 출석해 청문회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사측은 노조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해고한 직원을 1년 안에 재고용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10. 삼성과 애플의 특허권 전쟁
“세계 최고 가리자”

동·서양을 대표하는 IT업체 삼성전자와 애플이 휴대전화 디자인 특허를 두고 세계 곳곳에서 소송을 치렀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좌)와 애플의 아이폰4(우)

지난 4월 애플은 삼성이 스마트폰 갤럭시S와 태블릿PC 갤럭시탭을 생산하면서 자사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디자인을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애플이 삼성으로부터 납품받는 LCD와 반도체 구매비(약 8조7500억원)를 깎기 위한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디자인 특허 특성상 애플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관측.

하지만 애플이 지난 4월 미국 새너제이주에 첫 소송을 제기한 이후 현재까지 알려진 소송건수만 무려 29개에 달한다.

물론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삼성이 조의를 표하며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그 뿐이었다. 지역도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영국, 독일, 네덜란드, 호주 등 시장 규모가 거대한 곳들이며 조만간 세계최대 시장 중국에서도 소가 제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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