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다

[파이낸셜투데이=성현 기자] SK텔레콤(사장 하성민,이하 SKT)의 ‘안하무인’ 태도에 협력업체이 분노하고 있다. SKT는 최근 관계당국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중소기업로부터 실내용 무선 중계기를 납품받으면서 공정하지 못한 계약서를 강요했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로 적지 않은 거래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T는 “시정조치 이전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자체 수정했으며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여러 의혹들을 쏟아내며 SKT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 SK텔레콤 본사


신기술 도입 빌미 하청업체 상대 불공정 계약
공정위 조사 중 상생협약, 물타기 시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SKT에게 시정명령을 내렸다. SKT가 중소기업들에게 자사의 특허 기술이 필요한 실내용 무선 중계기를 납품받으면서 해당 특허가 무효, 취소, 미등록 되는 경우에도 특허 사용료는 지속적으로 납부하도록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과 부당한 거래를 할 수 없다’는 공정거래법 23조 1항 4호를 위반한 것이다.

공정위는 다만 납품업체의 실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SKT가 조사 기간 중 자진 시정한 점을 참작해 과징금 처분은 면제해줬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거래

공정위에 따르면 ‘이전기술과 관련하여 SKT가 등록받거나 출원한 지적재산권이 무효, 취소되거나 등록되지 아니한 사실은 본 계약의 효력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는 SKT의 특허 기술 이전 계약서 14조다.

SKT는 이같은 계약서를 지난 2005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3년 7개월간 총 15개 중소기업에게 제시했고 이들 업체들은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SKT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고 96%에 이를 정도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많아서였다.

이에 대해 조사를 담당한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사 결과 SKT는 처음으로 계약이 체결된 2005년 10월 이후 계약서에 납품업체 이름만 바꿔가며 불공정거래를 요구했다”며 “담당 직원이 바뀌어도 마치 표준 계약서처럼 계속 됐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15개 피해 업체 대부분은 이전부터 SKT와 거래를 해오던 업체였으며 불공정 거래 발생에 즈음해 SKT는 신기술이 적용된 서비스를 출시함으로 말미암아 중계기 모델 교체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성이 없던 기존 계약서에서) 내용이 변경된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SKT가 이 거래에 이용한 특허는 무엇일까. 이 관계자에 따르면 SKT가 불공정 거래에 이용한 특허는 크게 세가지이다.

첫번째는 마이크로웨이브 중계기의 회로 및 설계도면을 개선해 효율을 높인 기술이다. 두 번째는 광중계기 관련 기술로 전기 소모량 등을 크게 절감시킨 특허이며 마지막은 중계기 외형의 크기를 대폭적으로 축소시켜 장착 및 거치가 용이하도록 한 기술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출원번호, 등록번호 등 구체적인 사항은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더 이상 파악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특허청에 확인한 결과 SKT가 이 세가지 부분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거나 심사 신청, 심사를 신청했으나 인정되지 못한 특허는 모두 11개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특허청 통신 담당부서 관계자에 따르면 SKT와 하청업체간 계약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특허는 출원번호 10-2003-0029582, 10-2005-0004712 등 5개였다.

하지만 추측은 그야말로 추측일 뿐,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파이낸셜투데이>는 6~7개 납품업체와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이 업체들 모두 피해를 부인하거나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말 뿐인 상생, 결론은 ‘울며 겨자먹기’

업계 일각에서는 SKT가 불공정 거래를 성사시킨 배경을 두고 또다른 분석을 내놨다. SKT가 중계기 업계 시황을 이용했다는 시각이다.

중계기 제조·납품시장은 1996년 이후 휴대전사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2000년대 초반 생산업체가 100여개에 이를 정도로 유망했다. 정보화 바람과 닷컴기업 열풍을 타고 IT산업이 집중 조명된 당시 시대적 배경도 작용했다.

하지만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동통신사업자들이 계열사 위주로 납품 계약을 맺으면서 2005년경에는 절반인 50여개 업체만이 생존해 있었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몇몇 대형 업체를 제외하면 매출액이 50억원에 못 미치는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즉 매출 비중을 자치한다고 해도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모 중계기 제조업체 고위 관계자도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록 업체 수가 절반이나 감소하기는 했지만 당시 중계기 시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해 그 흔한 협회·협의회 구성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 SK텔레콤은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중계기 납품업체와 상생협약을 맺었다.


고위 임원에서 시작된 거래라는 의혹도 있다. 불법성이 확실한 조항을 15개나 되는 업체에게 제시한 점에 비춰보면 이같은 계약이 실무진 급에서 이뤄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SKT 홍보팀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납품 계약은 모두 실무진들이 책임지고 있다”며 “이 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공정위 발표를 통해 드러난 이중적인 태도도 비판받고 있다.

하청업체들에게는 무조건적인 특허 사용료 납부를 강요했지만 정작 자사가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을 때에는 계약 만료기간을 특허권 효력 만료 시점으로 분명히 한 까닭이다.

특히 특허권은 출원인의 독점적 지위가 상실된 이후부터는 특허명세서에 공지된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게 업계 관례다.

중계기 업체와의 상생협약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SKT는 지난 7월 중계기 납품업체들과 동반성장 협약을 맺었다.

4세대 휴대전화(LTE)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고 있는 SKT가 기존 중계기 납품업체에게 LTE 장비 납품을 맡긴다는 내용이다.

4세대 휴대전화는 중계기가 필요치 않은 까닭에 매출 감소를 우려했던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없는 배려였다.

하지만 공정위가 SKT를 집중 조사하던 시기였기에 일각에서는 SKT가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물 타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떠올랐다.

하지만 SKT 홍보팀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문제가 된 조항을 수정했으며 실제로 피해를 입은 협력업체는 없고 상생협약에 관한 의혹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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