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최악의 ‘스캔들 정권’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만든 시위 피켓(왼쪽)과 박 대통령.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혼용무도(昏庸無道), 지록위마(指鹿爲馬), 도행역시(倒行逆施). 지난 3년 간 박근혜 정부에 대해 학계가 내놓은 평가다. 국가는 길을 잃었고 권력은 농락당했으며 순리는 뒤집어졌다는 뼈아픈 비판이었다. 그런데 올해 한 해에만 이 세 사자성어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올해 대한민국을 평가하고 상징하는 한 마디는 무엇일까.

올해 대한민국은 자연 재해부터 정치 스캔들까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들로 내내 소란스러웠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전국적으로 일어난 수백만명의 평화 촛불집회 같은 일부 사건들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새로운 지평과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일으킨 초대형 국정농단 사태와 정부와 기업들의 욕심, 무책임 속에 벌어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은 국민에게 다시없을 실망과 상처를 새겼다.

1. 박근혜 대통령 탄핵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대한민국 헌정 사상 2번째로 현직에서 탄핵안이 국회 통과된 대통령이 됐다. 탄핵소추안은 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 찬성이라는 압도적 결과 아래 가결됐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결과가 나오면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탄핵된 대통령이 된다. 이 경우 불명예 퇴진은 물론 대통령으로서의 불소추 특권도 상실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탄핵의 시발점이 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박근혜 게이트)’를 수사 중인 특별검찰에 의해 구속될 수도 있다.

▲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의혹으로 구속 수감된 최순실 씨가 지난달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호송차로 걸어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2.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농단’

박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순실 씨가 국정 전반에 개입해 전횡을 저지른 박근혜 게이트는 그 전모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국민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다.

최 씨는 비선인맥을 이용해 이번 정부의 내각 인사부터 문화·외교·경제·국방 등 전 방위에 손길을 뻗쳤다. 여기에는 대통령은 물론 비서실장부터 민정수석·장관·차관·비서관·대통령 주치의·대학교 총장·교수·대벌 총수 등 중요 인사들이 대거 연루됐다.

박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들에게 각종 기밀 문건에 대해 최 씨의 ‘확인’을 받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대기업들이 최 씨 소유 재단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기 전 총수들과 ‘면담’한 정황도 드러났다.

3. 촛불집회

지난 9월부터 시작된 박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는 정치권을 압박해 박 대통령 탄핵가결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10월 말부터 만 단위의 시민들이 주말마다 서울시 광화문광장 중심으로 모였고, 전국에서도 이에 호응해 광역시 중심으로 집회가 열렸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책임 회피와 거짓말, 시간끌기가 이어지면서 집회 규모는 갈수록 커져갔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직후인 지난 3일에는 광화문광장에 주최 측 추산 170만명, 지방은 62만명이 집회에 참가해 전국에서 232만명의 촛불시위가 일어나 헌정 사상 최대 집회로 기록됐다. 집회는 평화적으로 진행돼 경찰과의 충돌은 거의 없었으며 외신의 찬사도 이어졌다. 야당은 촛불집회를 등에 업고 여당 내 비박근혜계를 압박하고 친박근혜계에 균열을 내며 탄핵가결을 유도했다.

▲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 장면. 사진=뉴시스

4. 사드 배치 논란

지난 7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반도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국내와 동아시아에서 첨예한 갈등이 발생했다. 사드 배치 부지로 낙점된 경북 성주군에서는 성주군민들의 강력한 저항이 전개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배치 반대를 일관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대결 국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중국은 사드 레이더의 탐지거리가 약 1500㎞에 달해 한국배치 시 중국 동부의 상당부분이 탐지 범위에 들어가, 안보이익을 침해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경제보복으로 자국민의 한국 방문을 제한하고 한류 스타의 중국 방송 출연 등을 막는 ‘금한령’을 발령했다. 한국기업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조치도 따르고 있다.

한편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후에도 미국은 사드 배치 추진을 주장하고, 중국은 반대 공세를 더 강화해, 사드 파장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촛불민심 승리 ‘탄핵 대통령’ 임박
국민의 힘 촛불집회, 그리고 알파고

5. 경주 지진 사태

경주 지진은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일깨운 사건이다. 지난 9월 12일 오후 7시 44분과 오후 8시 33분 경북 경주시 인근에서 각각 규모 5.1, 5.8의 강진이 일어났다. 규모 5.8의 지진은 1978년 지진 관측 이래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규모다. 두 지진은 전국에서 진동이 감지될 정도였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3명의 부상자, 경주와 울산, 포항 등에서 5120건의 재산 피해가 났다. 지진 발생 후 국민안전처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고 긴급재난발송 문자가 뒤늦게 발송되는 등 부실 대응을 보여 비판을 받았다.

6. 여소야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16년 만에 여소야대를 이룬 선거가 됐다. 선거 전에는 제1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서 안철수 의원을 포함한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새누리당이 개헌선인 180석 이상을 석권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왔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무소속 11석으로 야당이 제1당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본래 새누리당에서 나와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섰던 의원들이 복당해 원내 제1당이 됐지만 여소야대 정국은 박 대통령 탄핵 후에도 이어지는 중이다.

▲ 이세돌 9단이 지난 3월 3일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국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7.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

올해 3월 9일 서울에서 이세돌 9단과 최신 AI 알파고 간 세기의 바둑대결이 펼쳐졌다. 알파고는 구글의 인공지능 전문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전문 AI다.

바둑은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우주 내 원자 수보다 많아 AI가 인간을 이기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영역이었다. 이번 대국도 이세돌 9단이 완승 전망이 우세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알파고는 4 대 1이라는 압승을 거둬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이 승리했던 제4국에서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여 의료 분야에 적용하려면 좀 더 정밀한 완성도를 보여야 한다는 과제도 남았다.

경주지진 공포, 가습기살균제 공분
​필리버스터, 여소야대 촉매제 역할

8.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기업의 욕심과 정부의 태만 아래 벌어진 21세기 최악의 환경 재해 사건으로 꼽힌다. 2006년 영유아들이 폐가 섬유처럼 변하는 정체불명의 폐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후 2011년이 되서야 정부 첫 조사가 이뤄지지만 그동안 사망자와 환자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정부 조사 결과 해당 사망사건의 원인은 유독물질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로 드러났다. 판매사로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글로벌 기업과 국내 대기업이 확인되면서 국민적인 공분이 일어났다.

국회 가습기 특별위원회가 출범해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을 밝혀내고, 최대 가해 기업 옥시 본사에 직접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지만 피해구제와 재발방지 방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 개성공단이 정상 가동 중이던 시기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9. 개성공단 폐쇄

박근혜 정부는 지난 2월 10일 개성공단 폐쇄를 갑작스럽게 결정했다. 이는 1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대북 압박제재였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유리한 끈이었던 개성공단을 닫아버려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제기됐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정부의 급작스런 폐쇄 통보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본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과 협력업체들이었다. 입주 기업 측 피해 추산액은 1조5000억원 이상이며 정부 추산액은 5200억원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입주 기업인들은 폐쇄 전 후속조치를 충분히 고려하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면 이렇게까지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해액 보상을 둔 정부와 입주 기업들 간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근 입주 기업인들은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최 씨 등 비선 개입이 의심된다며 특검에 수사를 요청했다.

▲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

19대 국회에서 벌어진 필리버스터는 20대 국회 여소야대의 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23일~3월 2일 야3당이 협력해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시킨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벌였다. 야당들은 해당 테러방지법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국가정보원에 필요 이상에 권한을 주는 위험한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애초에 필리버스터는 법안 자체를 무산시킬 수는 없지만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무기다. 단 1인당 1회 토론만 가능하며, 토론은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어야 하고 토론자는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규칙이 있다. 이에 연단에 오른 야당 의원들은 1~12시간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다양한 인권, 과거 독재정권 역사, 해외 사례, 경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야당 의원들이 밤낮없이 서서 토론을 하자 많은 시민들이 호응해 국회 방청권이 동이 나거나 국회방송 시청률이 개국 이래 최고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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