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주인은 연락을 받지 않을까?”

지난달 21일부로 전세계약 기간이 끝났다. 집은 임대인 체납으로 압류된 상태고, 보증금은 단돈 1원도 받지 못했다. 나는 ‘내가 전세사기 피해자’가 될지 몰랐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니, 청춘이 이런거라면 청춘이 아니고 싶다.

93년생인 임대인은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자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과 BMW 차와 캠핑을 즐기고 있는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올려둔 사람이다. 그런데 보증금을 줄 돈도, 누수로 인한 집 수리비를 줄 돈도 없다고 한다. 연락은 1년이 넘도록 받지도 않는다.

“보증금 떼먹고는 어디선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겠지? 화가 난다. 화가 난다는 말로는 너무 부족하다”

지난해 전세사기 피해자 7명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모두를 내가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전국에 드러나지 않은 전세사기범들의 양심이라도 찌를 수 있도록 ‘기자의 전세사기 일지’를 써보려고 한다.

지난해 4월 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A씨는 인천 미추홀구의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4월 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A씨는 인천 미추홀구의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다. 사진=연합뉴스  

◆전세가가 높고, 대출이 잘 되던 그 시기...전세 사기꾼도 기승

집을 계약한 건 2022년 2월이었다. 다시 말해 ‘전세사기’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집을 구했다.

당시에는 ‘깡통전세’를 조심하라고 했다. 당시 한국도시연구소는 “전세가율이 높아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든 깡통전세 매물이 있는 지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세를 구하기 위해 나는 주로 ‘직방’,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알아봤다. 주변 복덕방(부동산중개사무소)은 알아본다고만 하고 매물이 없다고 했다. 몇 번을 중개사와 동행해 집을 둘러봤지만 지금 살고있는 집보다 작은데 가격은 너무 높았다. 도배와 장판도 새로 해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높은 전세 보증금과 수리비를 합하면 더욱 비쌌다.

반면, 직방이나 네이버부동산에는 매물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 중개사 사무소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매물이 있다고 하고 올려둔 매물도 너무 많아 수상했다. 

구로 온수동에 살았기 때문에 근처인 개봉동까지도 알아봤다. 그 동네의 중개업자는 3곳의 집을 보여줬는데 하나는 문의한 매물, 하나는 신축빌라를, 하나는 이미 나간 빌라를(아직도 이미 나간 빌라를 왜 보여줬는지 모르겠다) 보여줬다. 신축빌라는 그 규모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는데, 지원금을 매달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 타겟층이 30대였던 것 같다. 그 중개사는 “조금 비싸긴 해도 풀옵션이고 지원금도 매달 나와요. 30대니까 돈도 벌어야 되잖아요. 다들 이렇게 이득보면서 돈 벌어요”라고 꼬셨다. 내가 만났던 중개사가 5명이면 그중 2명은 이런 제안을 했다.

지난해 12월 5일 서울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동시다발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5일 서울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동시다발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1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가 인정된 사례는 총 1만2928건이다. 서울이 3339건, 경기 2746건, 인천 2158건, 대전 1570건, 부산 1410건 등이다. 특히 서울·경기·인천 수도권에 집중됐다. 피해자 연령대는 주로 40대 미만 청년층에 집중됐다. 20대가 3291건(25.4%), 30대 6204건(47.99%)로 피해자의 73.46%가 40세 미만이었다. 10명 중 7명은 청년인 셈이다. 

지원금을 준다는 점은 다소 수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건 전형적인 사기수법이었다.

개그맨인 신규진 씨는 지난달 20일 유튜브 스튜디오수제의 ‘아침먹고가’에 출연해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저도 당했다는 사실을 1년 반이 지난 후에 알았어요”라며 “이사 지원금도 이렇게 주고 선택만 하게끔 하고 해서 저는 믿었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에 친구와 대화 도중 지원금 주는 그런 게 전세사기의 전형적인 수법임을 알았다고 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당시 내가 생각한 조건에 그나마 부합하는 집이었다. 중개사 A씨는 ‘집주인 신용이 괜찮다’, ‘등기부등본도 깨끗하다’고 강조했다. 집도 괜찮으니 계약을 할 의사를 표시하면서 버팀목대출이 가능해야 계약할 것이라고 하자, “버팀목대출이 불가능하면 잘 아는 우리은행 직원을 소개시켜줄 수 있다”고 재차 말하며 회유했다.

그 말을 수상하게 생각하고 계약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자꾸만 자책하게 된다.

지난해 10월 17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다세대주택 앞에서 수원 전세사기 사건의 피의자인 정모 씨가 세입자들을 피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7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다세대주택 앞에서 수원 전세사기 사건의 피의자인 정모 씨가 세입자들을 피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상한 일은 그 후에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전세 계약일에 벌어진 일은 이상했다. 나는 그전까지 집주인과 단 한번의 통화도 못했고,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계약일 이후에도 연락조차 된 적이 없다. 모두 중개사와 연락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지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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