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세사기? 기자도 당한다

지난해 12월 21일,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본청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막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1일,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본청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막혔다. 사진=연합뉴스 

‘촉’이라는 걸 무시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촉’이 와도 이성이 가로막는 일이 생기는 날이 있다. 나에겐 전세 계약하는 날이 그랬다.

계약일을 정할 때 중개사 K씨는 전화로 “제 사무실은 멀어서 그 근처에 아시는 분 사무실 있거든요. 거기서 계약해요. 거기서 해도 별 차이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가 하는 말이니까, 내 느낌은 조금 이상해도 나름의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중개사 사무실에서 계약을 진행했기 때문에 중개사 K씨는 계약서상 아무런 책임이 없게 됐다.

이후, 이사한 지 넉달도 안 된 6월 중순경 K씨는 전화를 통해 집이 팔렸다고 전했다. 그동안 집주인은 전세계약을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고, 매매계약을 하고 서류상 등록을 마치기 전에도 집을 매매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팔렸다고 말했을 때도 매매계약서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 깡통전세사기다. 

◆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의 벽은 높았다...은행에서 ‘허탕’

HUG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진=연합뉴스

불안한 나는 그제서야 주택도시공사(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나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은 쉽게 알 수 없었다. 

HUG 홈페이지에서는 전세대출을 받은 경우에는 해당 은행에 문의하도록 돼 있었다. 은행에 연락해 문의했는데 은행은 서류를 들고 은행을 방문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화가 나는 부분이 몇가지 있는데 은행 일이 그 중 하나다. 서류를 다 가지고 있는 데도 사전 검토를 하지 않고 “평일에 시간을 내서 오라”는 얘기를 너무 쉽게 한다. 

결과적으로 직장인인 나는 휴가를 내서 은행을 방문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건 우리 은행에서 보증보험에 가입을 시켜줄 수가 없어요. 다른 방법은 모르겠어요”였다. 허탕쳤단 얘기다. 

이미 집주인은 집 누수 수리건으로 연락을 몇차례 했지만 “(100만원 상당) 수리비는 나중에 주겠다”고 한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집주인의 중개사라는 B씨도 집주인과 연락이 안 된다고 하고, 나와 거래를 했던 중개사 K씨도 연락을 계속해보라면서도 보증보험 가입을 제안했다. 

나중에서야 관할지역 HUG에 직접 가서 가입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다만, 공시지가가 전세보증금보다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감정평가서를 의뢰해야 했다. 이후 서류를 들고 직접 HUG에 방문해 접수했다. 정말 꽤 많은 금액과 시간이 소요됐다. 

◆ HUG 가입을 못한 사람들, 피해자 인정 절차도 어려워 

지난해 6월 시행된  ‘전세사기피해자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에 따라 여러 이유로 보증보험 가입이 안된 사람들에 대해선 국토부가 일부 요건을 갖추면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하고 지원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해당 집에 대한 경·공매 유예, 해당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임차인 우선매수권’과 한국주택공사(LH)의 해당 주택 매입 후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을 받을 수 있다. 다만,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전입신고·확정일자 등 대항력 확보 ▲보증금 5억원 이하 ▲경·공매가 개시돼 다수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는지 ▲임대인 고의성 확인 등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례 중 상당수가 임대인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선구제 후회수’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보증금 전액이 아니라 최우선변제금 수준으로 회수하는 개정안조차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 세입자들 안심시키는 ‘역할’하는 공인중개사도 문제 

지난해 6월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오피스텔 전세 사기를 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온 임대인과 중개사들이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오피스텔 전세 사기를 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온 임대인과 중개사들이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늦게서야 알게 됐지만, K씨는 공인중개사가 아니라 ‘중개보조원’이었다. 공인중개사는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이자 공범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는 수원에 대규모 전세사기를 저지른 ‘정씨 일가’의 범행에 가담한 36명의 공인중개사와 29명의 중개보조원을 적발했는데, 이들은 여러 수법을 사용해 거래를 성사시키며 성과보수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임차인들에게 ‘건물 전체 시세에 비해 근저당 설정액이 낮으며, 임대인이 수원에만 건물을 수십 채 보유한 재력가라서 보증금을 돌려받는데 문제없다’는 말로 임차인들을 안심시키며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또, 이들은 경기도 수사과정에서 “‘깡통전세’가 될 줄 알면서도 피해자들에게 매물을 중개한 대가로 고액의 성과보수를 챙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5일 부산 강서구 ‘부산 180억원대 최시 일당 전세사기’ 사건의 한 피해자는 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공인중개사 A씨 등은 계약 당시 ‘임대인이 부자라서 괜찮다’거나 ‘근저당이 많이 잡혀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세입자들을 안심시키고 최씨의 건물에 계약을 진행시켰다”고 말했다.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는 “임차인들이 가장 믿는 구석이 공인중개사였다. 이들이 한번이라도 더 임차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현재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지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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