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계, 정부 압박에 가격인상 눈치
가격인상 대신 알코올 도수 낮춰 비용절감
가파른 물가 상승률…식당서 가격인하 효과 없어

지난해 가격인상에 나섰던 주류업체들이 출고가 인하에 이어 리뉴얼(재단장)을 통해 도수를 낮추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 대형마트 소주 매대.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가격인상에 나섰던 주류업체들이 출고가 인하에 이어 리뉴얼(재단장)을 통해 도수를 낮추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 대형마트 소주 매대.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가격인상에 나섰던 주류업체들이 출고가 인하에 이어 리뉴얼(재단장)을 통해 도수를 낮추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높은 도수가 크게 의미가 없는 맥주보다는 소주의 도수를 낮추면서 제조 원가를 낮추는 방법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1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참이슬 후레쉬’ 브랜드를 리뉴얼하면서 제품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5도에서 16도로 낮췄다.

하이트진로는 이번 리뉴얼과 도수 조정에 대해 “저도화 트렌드로 소비자의 도수 선호도가 하향된 점을 주목했다. 지속적인 소비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각적인 테스트와 분석을 진행해 16도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참이슬은 1998년에 알코올 도수 23도로 출시했고 2006년에는 ‘후레쉬’ 브랜드를 달고 19.8도로 나왔다. 이후 출시 26여년만인 올해에는 16도까지 내려왔다.

경쟁사인 롯데칠성음료도 올해 1분기 중으로 주력제품 ‘처음처럼’의 리뉴얼에 나설 계획이다. 유통업계가 경쟁사의 방향성에 맞춰 대응한다는 점에서 롯데칠성도 소주 도수를 낮추는 방향이 유력하다.

다만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리뉴얼 계획은 있지만 구체적인 방향성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이트진로가 도수를 낮춘 이유로 저도화 트렌드를 들었지만 이보다는 알코올 도수를 낮춰 비용 절감을 의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력 소주 제품들은 희석식 소주로 전분을 발효시키고 연속 증류해 얻은 ‘주정’을 물로 희석해 감미료를 첨가해 만든다.

도수를 낮추면 주정이 기존보다 줄게 돼 비용이 줄어들고 이익도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대략적으로 도수를 0.5도 내리면 한 병당 주정값이 3원 안팎으로 줄어든다고 본다.

이같은 주류업계의 저도수 경쟁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건강을 중요시 여기는 소비 트렌드의 영향도 있다. 롯데칠성이 2022년 9월에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소주 ‘새로’를 선보이면서 돌풍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또다른 주류업체 맥키스컴퍼니가 14.9도 제품까지 출시할 정도다.

다만 이보다는 갈수록 거세지는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 탓이 크다. 주정 판매처인 대한주정판매는 지난해에 주정 가격을 평균 9.8% 인상했다. 이에 맞춰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2월 가격인상에 나섰다가 정부가 주류업계 실태조사라는 강수를 두자 물러섰다.

이후 국세청이 올해부터 국산 증류주에 세금 할인 성격의 기준판매비율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소주 등의 공장 출고가격은 낮아졌다. 기준판매비율이 커질수록 내야 하는 세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류 출고가 인하 폭도 커진다. 다만 그 전에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이 지난해 소주가격을 인상하면서 세금 반영시 실질적으로 가격은 인하되는 방향이 마련됐다.

지난해 소주(외식) 물가 상승률이 7.3%에 달해 2016년(11.7%)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기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다. 지난해 주류업체들의 맥주, 소주 가격 인상 등을 계기로 상당수 식당의 맥주와 소주 가격이 4000원에서 5000원 수준으로 올랐고 6000원까지 상승한 곳도 많다.

올해에는 소주 등의 출고가 인하가 이뤄졌지만 서울 지역의 식당 대부분에서는 소주 1병당 가격이 5000~6000원대를 유지할 정도로 가파른 물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주류업체와 일선식당 간 주류를 공급하는 주류 도매상의 문제라고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주류 도매상들도 지난해 지난해에 일제히 공급가격을 내렸다.

주류업체가 출고가격을 낮추면 납품가도 낮아진다. 그러나 올해부터 나타난 주류업체 출고 가격 인하가 일선 식당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모양새다. 고물가에 음식 가격을 많이 올리지 않는 대신 주류 가격을 인상해 이윤을 내려는 식당이 많기 때문이다. 또 식음료 업계 특성상 한번 올린 가격을 다시 낮추기는 힘든 가격 하방경징석이 주류 쪽에서 뚜렷하다는 이유도 있다.

즉 주류업계 입장에서는 일선 식당의 가격 인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가격인상을 다시 나설 수도 없어 대신 이익을 늘리는 저도수 정책을 펼치는 상황이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에 맞춰 가격인상을 최대한 피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면서 “다만 정부의 정책이 바로 일선식당에서 적용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낮아진 것이 아니기에 납품가 인하만으로 주류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신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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