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채승혁 기자
산업부 채승혁 기자

<페르시아 신화> 속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드로스 3세) 이야기는 우리가 오늘날 익히 알고 있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유래 중 하나다. 대왕은 유일하게 본인의 귀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이발사에게 침묵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병을 앓을 정도로 입이 근질근질했던 이발사는 끝내 우물에 임금의 비밀을 외쳤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알렉산더 대왕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이 세상 전역에 소문났으나, 대왕은 이발사를 문책하지 않고 되레 용서했다고 한다. 5일 데브시스터즈의 인기 모바일게임 ‘쿠키런: 킹덤’을 뒤덮은 해프닝은 해당 설화의 일부분을 연상케한다.

사건의 개요는 애플이 앱스토어 인앱결제를 기습적으로 인상하면서 시작됐다. 국내 대표 게임사인 3N(넥슨·NC·넷마블)과 튼튼한 중견 게임 기업들은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유저들에게 피해를 전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규모가 작은 게임사들은 해당 여파를 온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쿠키런 IP(지적재산권)를 성공시킨 데브시스터즈도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오랜 기간 적자 행보를 면치 못하다가 작년에 겨우 흑자 전환했기 때문이다.

‘쿠키런: 킹덤’의 앱스토어 인상 관련 대책이 발표되자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 불만이 빗발쳤다. 여기에 할 말이 많았던 한 직원은 본인의 생각을 ‘부계정’을 통해 밝히고자 했다. 문제는 해당 직원이 소리쳤던 우물이 알고 보니 임금님의 처소와 연결된 비밀 통로였던 것이다.

직원이 부계정으로 쓰고자 했던 게시글은 공식 카페의 매니저 아이디로 5일 오후 4시, 70만여명의 ‘쿠키런: 킹덤’ 카페 멤버들에게 전체 공개됐다. 사측은 빠르게 게시글을 삭제했으나, 전문은 삽시간에 일파만파 퍼졌다.

일각에서는 ‘평소에도 운영진들이 여론조작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다만 사측의 해명과 함께 어제의 사건은 ‘입이 너무나도 근질했던 직원 개인의 단순 실수’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직원이 올렸던 게시글이 데브시스터즈를 지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적하고 조언하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팩트는 데브가 적자 기업이라는 것’이라는 제목에 가려졌으나 본문은 ‘오히려 이건 왜 선택 안 했는지 모르겠고’ ‘구성품만 가격에 맞게 올리는 성의를 보여라 데브야’ ‘인게임 재화를 걍 뿌리던가 회수를 좀 하고 공지를 해라’와 같이 회사를 꾸짖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본문을 보며 웃음이 터져나왔던 기자도 처음에는 직원 개인의 단순 실수와 해프닝에 그칠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섰다’라고 생각되던 유저들의 의혹과 불만들이 점차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유저들은 게임을 즐길 때 단순 플레이에 그치지 않고 ‘밈(Meme)’이나 2차 창작물을 만들어 이를 유포하곤 한다. 게임사와 쌍방향적 소통을 이어가면서 주도적인 플레이어이자, 명예 개발진이자, 명예 홍보팀의 역할도 수행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밈을 만들고 유포하는 충성 유저들이 선두에 나서 규탄 시위에 참석할 정도로, 오늘날 게임업계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사 불신이 이처럼 뿌리 깊지 않았더라면 이번 사태는 오히려 유저들이 먼저 웃으며 넘길 해프닝이 아니었을까.

이를 지켜본 여타 국내 게임사들도 단순히 직원들을 한 번 더 교육하거나 ‘우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반응에 그치지 말았으면 한다. 왜 해프닝이 해프닝으로 여겨질 수 없게 된 것인지, 몇 번이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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