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반지하(Banjiha)로 불리는 지면 아래 주택의 위험성은 2020 오스카 수상작인 영화 <기생충> 속 홍수 씬으로 묘사됐었다. (2022.8.11. 로이터)

대한민국 내 사회 계층 간의 격차를 조명한 영화 <기생충>의 주요 배경은 기택(송강호 역) 가족이 살고 있는 반지하였다. 이번 폭우사태 속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반지하 주택에서 발생하자, 일부 외신들은 소식을 전하며 <기생충>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숨진 여성의 빈소가 마련됐다. 어머니와 발달장애가 있는 언니, 그리고 딸을 책임 지던 가장의 비보에 전국에서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서울 동작구 반지하 빌라에서 살던 또 다른 여성도 주택 침수로 생을 달리했다. 고령의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던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있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자 서울시는 10일 안전대책을 발표하며 ‘지하·반지하 주택 주거 목적 용도 전면 불허’를 천명했다. 시는 현재 허가된 주거용 지하 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의 유예 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나가기로 했다.

이와 같은 서울시의 발표에 네티즌들은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일찍 그랬어야 했다, 당장 없애자”라는 호응이 있는 반면 “살고 싶어서 반지하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라는 비판도 있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국토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2020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가구중 5.9%가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가구 반지하 거주율(1.4%)과 단순 비교하면 4배 넘게 차이나는 수준이다. ‘직전에 살던 주택’을 묻는 질문에도 기초생활수급가구 중 10.4%가 ‘반지하’라고 답했다.

또한 ‘202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32만7000가구에 달하는 지하(반지하) 가구 중 51.1%가 월세를 내고 있다. 이들 중 22.8%가 전세였으며 자기집은 21.1%에 불과했다. 지상가구의 월세 비율이 22.4%, 전세 15.4%, 자기집이 58.0%인 것과 비교하면 월세 세입자 비율이 큰 것을 알 수있다.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경실련)은 10일 ‘반지하 주거공간’에 대해 “고시원 등 준주거 시설과 더불어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선택하는 마지막 주거 수단”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면서 “반지하에 거주하는 세대에 대해서는 지방정부가 중앙의 지원하에 주거 이전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주거 취약 계층이 ‘주거 상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주거 사다리’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통계청
2020년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통계청

이에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주택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안전대책을 발표하면서 ‘반지하에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이주 대책 추진 계획도 밝혔다.

우선 이달 내 ‘3분의 2 이상’이 지하에 묻혀있는 반지하 주택 약 1만7000호의 현황을 파악한다. 이후 시내 전체에 있는 지하·반지하 주택 20만호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실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위험단계를 구분해 관리할 계획이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기존 지하·반지하 주택 세입자들에겐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거나 주거바우처 등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세입자가 나간 지하·반지하 주택 건물주에겐 리모델링 지원이나 용적률 혜택 등을 부여할 예정이다.

다만 저소득층 주거 문제 전반을 관통하는 정교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서울시의 대책도 마찬가지로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1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과거 반지하를 없앤다고 하니 고시원이 엄청 늘었다. 무조건 없애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저소득층 주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라면서 서울시가 발표한 대책들은 일종의 ‘방향 제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서울시 주택바우처는 1인 기준 8만원을 제공하는데 이 돈으로 주거 상향이 이뤄지진 않는다. 지금 나오는 대책들의 실효성을 판단하려면 ‘얼마를 지원하겠다’ 등의 구체적인 금액 차원의 논의가 나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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