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진성 기자
사진=정진성 기자

최근 반도체 업계를 달궜던 美 상무부의 ‘반도체 정보 요구’ 사건이 일단락됐다. 타깃이 됐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은 제출 기한인 지난 8일 민감한 정보를 제외한 채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美 정부가 요청한 자료는 민감한 정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업계의 우려를 산 바있다.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등과 같은 내부 정보 제출을 요구했던 것. 문제는 해당 요청을 거부하기에는 미국이라는 산이 너무 거대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고객정보와 재고량 등 내부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제외함과 동시에, 제출 자료 모두 일반에 공개되지 않도록 기밀로 표시했으며, SK하이닉스 또한 민감한 자료는 제외하고 일부 자료를 기밀 표시했다고 전해졌다.

이번 美 정부의 요구에 TSMC를 비롯해 UMC, ASE 등 대만기업과 함께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자료를 제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지만, 기업 수준의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보 제출 요구가 있었을 당시, 업계에서는 “국가와 국가간의 문제로 번질 수 있는 내용이기에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 없다”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기에도, 그렇다고 한 국가를 상대로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나오는 이야기는 ‘정부의 역할론’이었다. 대한민국은 ‘수출 강국’으로써 각 기술력에 기반한 제품의 생산과 기술력 격차를 통한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반도체 분야는 기술력의 미세한 격차가 시장 선도 여부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만약 기밀이 유출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중국의 기업들은 국내 유수 대기업 임원들을 포섭해 관련 정보와 기술력을 빼내갔다. 물론 이는 기업과 기업, 기업과 개인의 문제로 무마됐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국가의 기술 경쟁력과도 연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번 미국의 정보요구와 같은 상황이 중국과 일본, 타국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번 정보요구가 반도체 시장의 자국 독점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부족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유통망 정보를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 이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문승욱 산업통상부 장관의 행보는 가장 합당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문승욱 장관은 방미를 통해 양국 통상 현안을 논의하고 “이번 국내 반도체 기업의 공급망 자료 제출이 미국과의 공감대 속에 이뤄졌다”며 미국 정부의 추가 조치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이번 정보 요구건은 타깃이 된 개별 기업들이 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영역이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문 장관 등 정부가 마무리를 지었지만, 그 과정에서는 경제계의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 등 국가 간 분쟁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은 이제 경쟁에서 빠질 수 없다. 국내 기업들은 반도체 뿐만 아니라 이차전지와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언제 어떤 국가가 어떠한 자료를 국내 개별 기업에 요구해 압박을 해올지 모른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말이 있다. 4차산업혁명, 코로나19 팬데믹 등 여러 격변이 이뤄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막연히 평화만을 바란다면 빼앗기고 뒤쳐질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 국내 기업들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대비가 항시 돼있어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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