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신경영’을 내세운 故 이건희 회장, 기업 모토로
신경영 28주년 맞은 삼성, 총수 부재 속 별도의 행사는 없어
문재인 대통령과 4대 그룹 오찬, 김부겸 총리 간담회 등 사면 가능성 대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가석방 가능해”…박범계 법무장관 “의미있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7일 故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내세워 삼성의 모토로 삼은 지도 28주년이 흘렀다. 삼성은 매년 6월 7일마다 이를 기념해 왔으나, 올해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조용히 지나가는 듯하다.

삼성은 이 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전까지는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특히 2013년에는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 등 핵심 경영진이 국정농단 사건 등에 연루돼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행사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사내방송 등으로 신경영 선언일 자체는 기념해왔다.

28주년인 올해 신경영 선언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으로 인해 재수감 중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현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가 신경영 선포 기념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신경영 선언 이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올해는 총수 부재 상황으로 인해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즉각적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총수의 부재로 인해, 투자와 M&A 등에서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TSMC 등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초격차를 추진하는 것에 반해 삼성전자는 그 격차를 좁히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의 수성,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투자 등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영업이익률은 17.7%로 TSMC가 기록한 41.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현재진행형인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흐름에는 편승해 단기적인 호황은 누릴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 가능성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면서 긍정적인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과 4대 그룹 총수가 만난 오찬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이 언급된 것이다.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의 회장)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앞으로의 2~3년이 중요하다”며 이 부회장의 사면론에 힘을 실었으며, 이어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또한 “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 결정 과정에서는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라고 답변했다. 이후 다음 날인 3일에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등 경제5단체장과 간담회를 가지며, 재차 이 부회장의 사면 요청에 대해 경청했다.

지난 6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이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해 “사면으로 한정될 것이 아니고, 가석방으로도 풀 수 있다”라고 전했으며, 이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7일 “당 대표가 말한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가석방은 남은 형기 동안 재범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임시로 석방해주는 것을 뜻한다. 현재 이 부회장은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1년 5개월의 형기를 채워 가석방 형기 조건은 갖춘 상태다.

앞서 정부·여당이 여러 경제·종교 단체들의 이 부회장 사면 건의에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펼쳐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지난 4월 경제5단체의 사면 건의에 청와대는 “현재까지 검토한 바 없으며, 계획도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반도체, 백신 등 혼란한 여러 글로벌 시장 상황 속에서 삼성전자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한미정상회담에서 삼성 등 4대 그룹의 역할이 컸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여당의 기류 변화 속, 이 부회장에게 사면이 내려진다면 오는 8월 15일 광복절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가석방의 경우에는 시일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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