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NCR 나왔는데 구NCR 왜 계속 쓸까
업계 관계자 “낡은 평가 방식 안 버리는 것”
정부 관계자 “신NCR이 현 공식 기준…새로운 기준 필요성은 제기돼”

한국신용평가가 증권사들의 재무건전성을 분석하는 새로운 지표(신NCR)가 나왔음에도 과거 지표(구NCR)를 주 분석도구로 활용하고 있어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금융사들의 신용등급 등을 평가하는 기관 중 하나다.

지난 4월 10일 한국신용평가가 발간한 ‘증권:시험대에 오른 대형증권사‘  보고서에서 구NCR(영업용순자본비율)을 활용한 그래프 이미지. 사진=한국산용평가  
지난 4월 10일 한국신용평가가 발간한 ‘증권:시험대에 오른 대형증권사‘  보고서에서 구NCR(영업용순자본비율)을 활용한 그래프 이미지. 사진=한국산용평가  

이 때문에 업계에선 과거 증권사들이 리테일 영업을 많이 할 때 쓰던 평가 방식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며 일부 불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신용평가사는 이런 업계에 대해 이해는 하나, 현재로선 보완 지표로서 구NCR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금융당국도 공식적으론 신NCR을 인정하지만, 내부적으로 구NCR을 일부 적용해 참고하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들 주체는 NCR 지표의 한계를 알기에 두 지표를 모두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대두되고 있다.

◆ 증권사 건전성 규제, ‘구NCR’에서 ‘신NCR’로

NCR은 Net Capital Ratio의 약자로 증권사들의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주는 지표다. 이는 은행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업계 특성에 따른 차이가 있다. 증권사의 NCR은 “회사가 파산할 경우 즉시 갚을 수 있는 현금화 능럭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기 위해 등장했다면, 은행의 BIS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기 시 대출상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개발됐다.

NCR 제도는 증권회사가 파산할 시 고객 및 이해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1997년 4월 1일부터 도입됐다. 감독당국이 IMF 이후 부실증권사들을 퇴출·정리하려는 배경에서였다. 이에 따라 증권감독원은 증권사들에게 영업용 순자본비율을 150% 유지하도록 했다. 해당 기준에 미달한 곳은 감독당국으로부터 부실자산 처분 등 경영개선 권고를, 120% 미만이면 합병이나 영업 양도 등의 처분을 받게 됐다.

당시 도입된 NCR은 영업용순자본비율로, 증권사의 유동성 자기자본인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비율로 계산된다. 영업용순자본은 전체 자본에서 유동성이 없는 고정자산을 제외하고 후순위차입금과 증권거래준비금을 더한 금액이다. 총위험액은 개별기업의 자체적인 요인에 의한 가격변동과 정치·경제·사회적 요인에 의한 시장 위험액을 더한 값이다. 계산 공식으로 보면, 자기자산이 높고 위험액이 낮을수록 NCR 비율은 높아지는데, 이는 재무상태가 양호한 수준임을 나타낸다.

이같은 NCR은 2016년 새로운 개념의 NCR이 도입되면서 신·구 NCR로 나뉘게 됐다. 신NCR은 ‘순자본비율’로 그 개념이 변경됐다. 이에 따라 계산식도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값을 인가단위별 필요 유지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바뀌었다. 이 신NCR은 증권사 인수합병(M&A) 등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시장 변화에 따라 영업환경에 제약을 주지 않기 위한 배경에서 도입됐다.

한편 해외의 경우 일본은 2015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구NCR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오랜 변천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형사나 포트폴리오에 맞춰 2개 기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제도의 유연성을 높였다.

2019년 기준 국내 증권사별 수익구조. 사진=한국신용평가 
2019년 기준 국내 증권사별 수익구조. 사진=한국신용평가 

◆ 증권사 “구NCR 평가는 과거로 후퇴하는 것” VS 신용평가 “신NCR 보완하는 차원”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3월 ‘리스크 확대 속 증권사 대응능력 점검’ 보고서와 지난 4월 ‘증권: 시험대에 오른 대형증권사’ 보고서에서 구NCR인 영업용순자본비율 자료 등을 통해 대형사들의 리스크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대형사들이 정책적 지원과 자본 확충에 힘입어 글로벌IB 전략을 추구하는 가운데 포트폴리오에서 IB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자본 대비 위험노출액이 과거 대비 크게 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구NCR 지표는 권고수준인 150%에 근접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일부 증권사들은 구NCR이 과거 리테일 영업 위주였던 시장 흐름에서 나왔던 규제인 만큼 구NCR로 평가가 나오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구NCR은 증권사가 자기자본을 투자하면 영업용순자본이 줄어들어 비율이 큰 폭으로 하락해 자본을 인위적으로라도 늘려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이 신NCR의 도입과 함께 2016년 초대형 IB육성이라는 정책으로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을 장려해왔단 점에서도 구NCR의 잣대가 다시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양새다. 신NCR은 증권사의 업무 단위별로 정해진 법정 필요자본금액 대비 보유하고 있는 잉여자본을 나타내기 때문에 자본이 많을수록 투자 활용도가 높다. IB정책을 활발히 추진하며 사업 확장을 추진 중인 증권사가 이를 선호하는 이유다. 

증권사 관계자는 “구NCR 기준은 예전 리테일 방식으로 후퇴하는 것”이라며 “이 기준까지 고려하면 투자 시 150% 규제에 맞춰 자본을 더 늘려야 되는데, 신NCR로 보면 결국 자본이 과도하게 1000% 넘게 늘어나 자본이 남아도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NCR로 규제가 바뀌었는데 신용평가사가 구NCR로 건선성을 평가하니 회사 입장에선 부담스럽다”며 “기준에 보완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는 쪽으로 연구해야지 낡은 평가방식을 안 버리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금융통계정보시스템 
사진=금융통계정보시스템 

이에 대해 한국신용평가는 신NCR이 도입된 것은 맞지만, 대형 증권사를 비교·분석할 때는 한계가 따르는 만큼 현재로선 보완 지표로서 구NCR도 필요하단 설명이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에 따르면, 대형사의 경우 위험투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지표 자체에선 중형사가 소형사보다 신NCR이 높게 나타나 건전성이 양호한 상태로 해석된다.

증권사와 평가사가 말하는 대로, 신NCR의 적기시정조치 기준은 100%인데 대형사들은 이보다 10배 가량 높은 1000%대로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 3조 이상의 대형 증권사인 KB증권(1198.74%), 신한금융투자(1217.37%), NH투자증권(1307.65%), 미래에셋대우( 1770.32%), 하나금융투자(1021.73%), 한국투자증권(1260.08%) 등이 1000%대를 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 연구원은 “구NCR의 경우 비율지표이기 때문에 비교가 용이한 반면, 신NCR 지표는 비율처럼 보이지만 분모가 고정돼있어 실제로는 양지표”라며 “자본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좋게 나오게 돼 있어 대형사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대형사가 위험투자를 한다고 해도 신NCR 기준으로 비교하기 어려워 분석에 애로사항이 있다는 게 김 연구원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대형사일수록 현NCR은 산식 자체가 구NCR과 비교해 괴리가 크게 나올 수밖에 없다. 중형사는 의외로 두 지표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원은 “구NCR로 보면 현 대형사들의 영업환경에선 한계가 보일 수 있다”면서도 “규제지표가 아닌데 계속 쓰니까 저희도 부담이 있지만, 신자본비율로만 설명하긴 어렵다는 건 증권사들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금융당국 “평가는 자유…새로운 지표 도입은 필요할 것”

구NCR이 평가지표로 자주 사용되면서 업계에선 이중규제가 아니냐는 불만도 일부 제기돼온 바 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2016년 이후 신NCR만 공식적인 자본규제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신NCR은 연결기준 재무재표를 사용하기 때문에 금융그룹 내 개별 계열사 점검에선 내부적으로 구NCR을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구NCR과 신NCR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각각 개별기준, 연결기준 재무재표를 따른다는 것”이라며 “그렇다 보니 금융그룹 전체 감독 차원에서는 계열에 속해있는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따질 때 내부적으로 구NCR을 사용하는 것이지 공식적으로 두 지표를 동시에 쓰는 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평가기관들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국가에선 신NCR로 하는 게 맞지만, 시장참여자들이 건전성을 평가할 때 제3의 기준으로 하는 것은 강요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금감원도 현 NCR이 위험요소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고 시장의 변화된 흐름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학계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현 NCR비율이 1000%까지 가는 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계산식 상으로 인가업무가 추가되면 최저 법정자본도 늘어나기 때문에 비즈니스 범위가 넓어질수록 규모가 커지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위험 자산이 덩달아 늘어나는 부분이다.

구NCR도 완전한 지표는 아닌 만큼 문제점도 많다. 실제로 가중치에 따라 비중을 달리 둔 위험값이 실제 수준과 다른 문제 등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 PF의 경우에는 강한 위험 가중치를 두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더 위험하다기보다는 부동산에 대한 전체적인 정부의 규제에 발맞춘 것이기 때문에 위험분석엔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게 김 연구원의 설명이다. 신용평가 시 이러한 점 등을 보완하기 위해 평가사들은 조정지표나 자산의 구성 등도 활용하고 있다.

증권사의 NCR은 애초 목적 자체가 은행과 달리 ‘당장 파산했을 때 얼마나 현금을 회수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위험성을 보수적으로 측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구NCR을 고려한 결과 신NCR이 과도하게 높아져 ‘자본이 놀게 된다’는 논리가 여기서 나왔다. 문제는 현재 증권사들은 옛날처럼 단순하게 주식 ‘브로커’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대출은 물론 수신 발행 업무도 하는 등 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자산건전성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이에 맞는 새로운 규제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가 즉시 회수 가능한 자산을 따졌다면 은행은 만기까지의 기간을 고려해 자산 건전성을 측정했다는 점에서 규제철학의 차이를 보여왔지만, 현재 증권사도 업무의 성격이 많이 달라져 자본규제를 개편해야 한단 주장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초등학교 때 입던 옷을 대학생이 못 입듯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당장 논의되고 있는 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신용평가도 새로운 지표 도입에 관해선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방법론 개정을 통해 여러 가지 지표를 손볼 계획은 있다”면서도 “아직 연구 중이라 답변은 어렵지만, 현재 지표만을 쓰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건 공감한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자료에서도 개별기준을 사용하는 영업용순자본비율(구NCR) 산식에 연결기준 수치를 적용한 조정NCR을 사용한 바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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